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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23)

원서명
WORLD WAR 2
저자
게르하르트 L. 와인버그
역자
박수민
출판사
교유서가
발행일
2018-03-22
사양
212쪽 | 128*188 | 무선
ISBN
978-89-546-5066-3
분야
역사
정가
13,000원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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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적 우행, 현대 세계의 재편

왜 1차대전 후 불과 20여 년 만에 또다른 전쟁이 벌어졌을까
독일의 우세에도 어떻게 연합국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을까
6000만 명이 죽은 사상 최대의 전쟁, 그 압축적 통사


전세계는 제1차세계대전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와 물리적 파괴를 겪은 뒤 불과 21년 만에 그보다 두 배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전쟁에 휩싸였다. 저자 게르하르트 L. 와인버그는 제2차세계대전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설명을 제시한다. 전쟁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상세하게 설명한 다음, 유럽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된 전략적 상황 전개, 주요 사건, 주요 기술 발달을 다룬다. 2차대전이 참전 군인과 민간인들에게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 지금까지의 지속적인 충격을 고찰한다. 1차대전이라는 끔찍한 전쟁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한 상황에서 어떻게 또다른 전쟁이 벌어졌을까? 독일이 이길 것처럼 보인 전쟁에서 어떻게 연합국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을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소소한 에피소드나 인물평, 무기체계에 대한 이야기는 최소화한다. 대신에 파리강화회의와 그 결과에 불만을 품은 독일에서 히틀러가 떠오르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서부 전선, 동부 전선, 아시아·태평양으로 전쟁이 점차 확대되고 결국 연합국이 승리하는 큰 그림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

2차대전은 독일이 먼저 불을 붙였다
개전 주체와 관련하여, 1차대전의 경우에는 그 촉발 책임을 놓고 논쟁이 계속되어왔지만 독일이 2차대전을 시작했다는 데 이견을 보인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저자는 우선 전제한다. 또 한 가지, 1939년 독일이 일으킨 전쟁에 1941년 12월 일본이 의도적으로 합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그런 결정이 사전에 이루어진 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개전 직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연합국으로서 참전했고 얼마 안 가서 남아프리카연방이 합류했다. 프랑스 및 영국의 식민지 국가도 처음부터 참전했다. 바다에서의 전쟁도 시작부터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폴란드 점령을 프랑스와 영국을 공격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으로 본 히틀러는 먼저 폴란드만을 상대로 싸우려 했다.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 일정을 가을로 잡았기 때문에 서방 국가의 본격적인 반격은 겨울을 넘기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이탈리아와의 공개적인 동맹이나 일본과의 협상이야말로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 의지를 꺾는 길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만주괴뢰국이나 노몬한 사건 등으로 일본은 다른 일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독일 입장에서 일본과의 협상을 대신할 명백한 대상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폴란드에서 대규모 영토를 확보하려 했고, 또 독일이 서방 열강과 전쟁을 벌일 때 봉쇄를 우회하도록 지원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영국 본토 항공전, 독일의 첫 대규모 패배
훗날 영국 본토 항공전이라고 불린 싸움은 1940년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실시되었다. 독일로서는 처음 겪는 대규모 패배였다. 양쪽 모두 큰 피해를 입었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영국 공군은 지나친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성급하게 평화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독일 공군은 겨울 내내 영국 도시들을 공습했지만 영국인의 사기를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조직을 가다듬고 재무장하던 영국군의 전의를 북돋았다. 영국군은 독일군이 장악한 해안을 급습하기 위해 코만도 부대를 창설하기도 했다. 한편, 1940년에 히틀러는 급기야 소련 침공을 미루게 되었다. 대규모 독일군 병력이 서부에서 독일 동부와 이미 점령된 폴란드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고, 장비는 수리하고 추가로 확보해야 했고,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고 동쪽으로 진격할 군대에 물자를 공급할 동부 지역에서는 운송 및 저장 시설을 꼭 개선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1940년 7월 말에 이런 필수적 준비가 완료되었지만 그 시점에 침공을 실행하기에는 겨울이 임박했기 때문에 히틀러는 1941년 봄으로 미루게 되었다.

포츠담에서 연합국이 일본에 항복 요구
1945년 7월, 포츠담에서 연합국은 일본 정부에 항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요구가 거부되자, 영국 및 소련 정부의 사전 동의를 얻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일본에 원자 폭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본토 방어에서 2000만 명의 사상자 발생을 감수할 의지를 내비치면 연합국이 항복 요구를 철회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한편, 소련이 종전 협상을 지지하고 추축국 편에 서도록 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일본 수뇌부는 주로 마리아나제도에서 이륙한 미군 항공기의 대규모 공습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공습으로 일본의 주요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고 특히 도쿄에서 사상자가 대거 발생했는데, 두번째 핵공격이 벌어지자 어전회의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연합국측은 이 핵폭탄으로 일본 본토에 사는 사람 전부 또는 거의 전부를 죽일 수 있고 따라서 굳이 공략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일본 정부는 끝내 항복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방어 계획을 포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동요의 가능성과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 가능성을 우려하는 조언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히로히토 일왕은 직접 항복 지시를 내렸다."

핵폭탄의 등장, 대규모 인구 이동
저자는 2차대전에서 약 6000만 명이 죽었는데 대부분 민간인이었다고 본다. 소련에서 2500만 명, 중국에서 최소한 1500만 명이 죽었다. 그러나 폴란드만큼 많이 파괴되고 약탈당하고 대량 살상이 벌어진 나라도 없었다. 세계 곳곳에서 대량 파괴와 경제적 혼란이 벌어졌다. 새로 개발된 독일의 탄도 미사일 V-2와 미국의 핵폭탄 같은 신무기는 이후의 열강 간 전쟁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았다. 2차대전은 대규모 인구 이동을 초래했다. 동유럽인들 일부는 소련이 장악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귀향이 달갑지 않게 여겨지거나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폴란드의 유대인 생존자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를 선호했다. 전승국이 그어놓은 새 국경선에 따라 추가로 수백만 명의 유럽인이 강제 이주를 했다. 한편으로 연합국은 전범 처리 문제에 직면했고, 새로 해방된 나라들은 대규모 재건 문제뿐 아니라 점령군에 부역한 사람들을 처리하는 문제에도 직면했다. 2차대전은 또 항공 운송 수단으로서 이후의 교통 상황을 바꿔놓은 제트엔진뿐 아니라 새로운 의약품 개발도 가져왔고, 탈식민지화 과정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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