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작은 공화국들은 계몽사상에 어떤 빛을 비추었나
제노바, 베네치아, 루카의 정신이 프랑스혁명에 깃들기까지
책 소개
20세기의 위대한 역사가인 프랑코 벤투리는 이 짧은 책에서 역사학자로서 그가 지닌 탁월함을 입증한다. 벤투리는 18세기 유럽 전반의 계몽사상에 덧씌워져 있던 철학적·마르크스적 해석의 옷을 벗겨내고 계몽사상이 실제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밝힌다. 계몽사상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유혹, 즉 유구한 로마와 그리스의 영광을 빌려오려는 욕구에 저항하고, 역사를 수치화하려는 경향에서도 벗어나 계몽사상의 진정한 출발점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벤투리는 정치와 역사의 관점에 서서 실제 공화국들의 경험이 계몽개혁가들에게 어떤 자양분을 주었는지, 이 개혁가들이 유럽 대륙에서 교류하며 어떻게 ‘계몽된’ 새 시대의 정신을 만들어나갔는지 보여준다.
철학이 아닌 역사의 관점
“철학자들은 수원지에 이를 때까지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려는
유혹을 느낀다. 역사가들은 그 강이 어떤 장애물과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길을 트고 흐르는지 우리에게 말해줘야만 한다.”
이 책은 프랑코 벤투리의 1969년 조지 매콜리 트리벨리언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이 강연은 케임브리지대학의 유서 깊은 강연으로 E. H. 카가 맡은 1961년 강연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출간돼 널리 읽힌 바 있다. 벤투리는 ‘17·18세기의 왕들과 공화국들’ ‘영국 공화주의자들’ ‘몽테스키외에서 혁명까지’ ‘처벌할 권리’ ‘계몽사상의 연대기와 지리적 분포’ 등 총 다섯 가지 테마로 이루어진 이 강연에서 18세기 유럽의 공화주의 전통과 계몽사상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그가 지적하는 사상사 연구의 잘못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잘못은 계몽사상에 대한 철학적인 해석에서 기인한다. 계몽사상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종종 18세기 현실에서 사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보다 그 시작점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리하여 위대한 철학 체계들을 받침대 삼고 유구한 로마의 고대세계로 회귀해 근원을 찾았으며 여기에 신화적 가치를 덧씌워버렸다. 이런 ‘근원’에 대한 욕망은 지성사에서 오래된 것이지만 철학 체계 자체와 철학 체계의 유효성을 거부하던 계몽사상의 근본 성격과 맞지 않을뿐더러 당시 18세기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벤투리는 당시 계몽사상은 먼 로마나 고대세계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었던 공화국들, 즉 베네치아 공화국, 루카 공화국, 제네바 공화국 등으로부터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18세기 군주국들과 공화국들이 짠 국제관계의 판 속에서 계몽사상이 어떻게 교류하고 발전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마르크스적 해석에 있다. 이런 해석들은 계몽사상을 이해하기보다 계몽사상을 마르크스주의적 전망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곤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추종자들은 계몽사상과 그 역사를 그들의 도식에 끼워 맞추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계몽사상에 관여했던 결코 동질적이지 않은 여러 집단과 세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들의 계급적 관점은 중앙 집권 정책에 반대하는 귀족들이 벌인 ‘프롱드의 난’이나 밀라노 귀족들이 주축이 된 ‘주먹학회’의 계몽사상 등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계몽사상의 중요한 지식인 세력이었던 백과전서파를 비롯해서 당시 중요한 주체들이 했던 힘겹고 심지어 극적인 선택,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서사를 숫자 및 도식으로 단순화해버린다.
프랑코 벤투리는 위의 두 가지 관점으로는 포괄하지 못하는 부분이 계몽사상에 분명히 있다고 여겼다. 철학적 관점이나 마르크스적 관점의 문제는 결국 당대의 투쟁과 역사를 하나의 거대한 체계 속으로, 혹은 총체적인 사상이나 방법론 속으로 환원한다는 데 있었다. 벤투리는 역사가로서 이 시기의 역사를 철학이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경제학과 결합시키기보다는 역사 그 자체와 경제 및 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그렇게 하여 이 관점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선명한 주제로 채택된 것은 유럽의 ‘공화주의 전통’ 혹은 ‘공화국들’과 계몽사상의 관계다. 이 문제를 포함해 이 결국 이 책의 논의는 ‘계몽사상의 정치경제사’로 수렴한다.
벤투리의 이 강연이 선보인 계몽사상의 짧지만 거대한 서사는 후속 세대의 학문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18세기 지성사를 다루는 학계는 당대의 정치경제학적 논쟁에 더 주목하는가 하면 개혁가들의 국제적 움직임과 조응을 그려내고자 노력했다.
유럽 공화국들의 정신이 계몽사상의 고향 프랑스에 도달하기까지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하고 있다. 종교적·도덕적 문제가
경제적 문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철학적 체계가 실험에 자리를 내주고,
피론 회의주의가 자연에 대한 새로운 믿음에 자리를 내주었다.”
벤투리가 그 스스로 비판한 ‘사회경제적 설명’ 혹은 ‘철학적 근원을 찾는 설명’으로부터 벗어나 제시하는 관점은 그럼 어떤 모습일까. 벤투리는 18세기 유럽이 공화주의·경제학·개혁이라는 파도에 직면하고 있었다고 보고 이를 통해서 전 유럽적인 변화를 읽어내려고 했다. 그가 본 18세기 유럽에서는 종교적·도덕적 관심이 사회적·정치적 관심으로 전이되고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새롭게 떠올랐으며 현실 개혁적 기획들이 주목받았다. 이는 이전 세기들과는 다른 18세기만의 독자적인 특징이었다. 이 파도는 정치적 변화로 이어졌으며 그 파장은 전 유럽으로 확대되었다.
벤투리가 이 파장의 확산을 그리며 펼쳐 보이는 ‘유럽적인 시야’도 주목해볼 만하다. 그가 말하는 ‘계몽사상의 정치경제사’는 뚜렷하게 유럽 중심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전 르네상스의 피렌체-17세기 잉글랜드-18세기 미국으로 이어지는 ‘대서양 공화주의 전통’과는 뚜렷하게 대별되는 시각이다. 벤투리는 네덜란드, 제네바,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공화주의 전통의 중심에 놓았다. 물론 이들 지역은 각각 고립적이지 않다. 18세기 당대까지 살아남은 유럽의 고대 공화국들이 자신의 생존을 놓고 근대 군주국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백과전서파가 펼쳐 보인 새 시대의 정신은 유럽 각 지역에서 자생하던 움직임과 어떻게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통해 18세기 유럽사와 각국사가 단절적이지 않게 드러난다. 그 마지막은 코르시카에서 시작된 혁명의 고리가 미국 독립전쟁, 네덜란드 연합주 반란을 거쳐 혁명을 앞둔 계몽사상의 고향 프랑스에 도착한 경로를 그려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계몽사상의 유토피아와 개혁』에서 ‘유토피아와 개혁’은 ‘유토피아에서 개혁으로’로 볼 수도 있다. 이 짧은 책이 보여주는 투쟁이며 교류의 서사는 결국 18세기 유럽의 빼어난 지성들이 유토피아를 현실 땅에 개혁으로 옮겨심기 위해 고민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벤투리는 현실에 맞닥뜨려 개혁을 구상하던 이들의 목소리를 사상적 토대를 비교해 무시하는 학계의 관행에 반대 목소리를 냈으며 이 다양하고 발산하며 교유하는 목소리들을 하나의 구조 아래 환원하기를 거부했다. 그 결과 이 책은 그의 말대로 계몽사상이라는 강의 “수원지”를 살피기보다는 “그 강이 어떤 장애물과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길을 트고 흐르는지” 알려주는 더욱 생생한 역사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