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가 되찾을 시간들
2018년 10월 3일, 시인 허수경이 독일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상경, 방송국에서 스크립터로 일하다 어느 날 문득 독일로 떠났다.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동방문헌학을 공부하며 시집 네 권과 소설 세 권, 에세이 네 권 등을 더 펴냈다. 정처 없는 몸을, 누추하고 스러지는 마음을, 상처를 특유의 애잔하고도 물기 어린 목소리로 어루만져주었던 시인 허수경.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외로웠고, 쓸쓸했고, 머나먼 곳으로 떠난 시인 허수경. 그의 노마드적 감성은 일찍이 한국문학에서 볼 수 없었기에 신선함으로 가득했고, 쓸쓸함의 이면에 묻어나는 고유의 따스함은 위로의 문장이 되어 독자들에게 다가왔다.
첫 장편소설 『모래도시』를 22년 만에 문학동네에서 다시 펴낸다. 2018년 11월 20일, 시인의 49재에 바치는 헌화이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리운 목소리를 되새기고자 하는 작은 모뉴먼트라고 소개하고자 한다. 발표 당시 서른셋의 젊은 나이, ‘처음’이기에 가득한 에너지와 그래서 더욱 생생한 문장이 『모래도시』에는 살아 숨쉰다. 시간과 삶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의 기원이자 시인이 시로 다 풀어내지 못한 삶과 기억의 편린을 우리는 바로 이 소설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세 명의 화자가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마치 시인처럼 고향과 가족을 떠난 세 사람의 만남과 회상, 각자의 모래도시 속에서 난분분 흩어져내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미지와 목소리로 포착해 눈앞에 펼쳐 보인다. 난마 악수의 바둑판과도 같은 서울을 떠나 독일로 유학을 간 ‘나’, 천체망원경으로만 보이는 머나먼 곳을 꿈꾸는 ‘슈테판’, 내전중인 레바논을 떠나 기원전의 사람들이 동경했던 이상향 딜문을 지금-이곳에서 그려보는 ‘파델’. 머나먼 곳을 꿈꾸는 세 명의 젊은이들이 독일의 한 대학에서 만나 이어지고 스치며 마음과 기억이 교차한다.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서 저런 사무친 얼굴을 가지게 되었는가. 너의 시간, 내가 너에게서 너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나는 너를, 너의 지나온 시간을 해독할 수 있겠는가. _142쪽
나는 그때 이 세상에는 이해라는 방식을 통하지 않고도 그냥 전해져오는 사람들 사이의 느낌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 커튼이 내어놓은 아주 작은 틈으로 들어온 햇빛이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얼굴 위로 잠시 잠시 스쳐지나갔다. 그때마다 그의 주름 사이로 햇빛은 마른 건초를 말리는 가을빛처럼 스며들었다. 그 빛은 그를 조금씩 조금씩 말리고 저러다 그는 다 말라 가루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한 일은 그는 마르지만 내 마음은 우윳빛 은하수가 가득 차오르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_24쪽
“내가 이 먼 여행을 한 것은
‘머나먼 곳’이라 불리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은 뚜렷한 줄거리 없이 이미지와 회상, 파편적인 삽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시인이 추구해온 유목의 삶이 문득 떠오르고 사라지는 이미지-기억들과 닮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성적 구조라고 말할 수 있을 기승전결의 서사가 아닌 방사형으로 촘촘하게 직조한 글쓰기를 선보이는 까닭이기도 할 터이다. 기존의 서사가 하나의 굵은 줄기를 따라 이루어져 있다면, 허수경 시인의 첫 장편소설은 까만 잉크가 여기저기 떨어져내리고 거기에 물기가 스며 천천히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모습으로 상상해볼 수 있다.
‘회상’과 ‘또다른 회상’으로 진행되는 목차 역시, 삶과 기억과 시간은 단선적으로 직진하는 것이 아니라 굴절하고 번복하며 때로는 난데없고 켜켜이 쌓이고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옴을 반영하고 있다. 나, 슈테판, 파델 모두 가족과 시대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망막한 폐허와도 같은 모래도시 속에서 반짝이는 파편을 쥐고 생을 감각한다. 생의 아름다움과 고통은 저마다 다르기에 시인은 자신과 자신의 삶을 닮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아, 아, 나는 지독히도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 도시에서.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에도 지쳐버린 그 도시에서, 나는 희망이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며 살고 싶었다. 희망이 있다, 나에게, 그 도시에서 사는 나에게 희망이 있다…… 진심으로 말하며 나는 살고 싶었다. 내가 원한 새로운 문장…… 그것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문장이었다. _72쪽
『모래도시』는 끝없이 유랑하는 청춘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지만, 모래로 덮인 표층을 조심스럽게 걷어내보면, 이 세상으로 왔다 저곳으로 떠나는 삶의 본질을 포착해 그려낸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명의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은 모두 시인 허수경의 분신이기에 뒤미처 더욱 반갑다. 언제나 우리보다 조금 더 아팠고, 알았고, 조금 더 앞서 걸었던 시인 허수경. 마치 시인이 몰두해온 작업처럼 우리 역시 오래된 시간의 더께를 걷어내고, 머나먼 곳으로 떠난 그를, 처음으로 되돌아가, 천천히 그리고 아주 길게 만나보자. 다시 한번 허수경을 만날 시간이다.
내가 타고 있는 기차는 지금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나는 그곳에서 아마도, 한참을 쓸쓸하게 걸어다니리라. 그녀는 없고 나는 혼자 남아 있으므로. 그녀와 나의 미래는 이런 것, 이런 것이었는가. 이런 미래라면, 난, 미래로 가는 것이 두렵다. 이 기차가 나를 데려다놓을 그곳에서 나는 내 최근의 꿈처럼, 그런 움직이는 그림이 되지는 않을까, 그리고, _233~234쪽
■ 작가의 말
또 허술한 집을 지었다. 나는 단단하고 따뜻한 집을 짓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단단한 집이 필요한가 하면 허술한 집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것이다. 필요한 사람들이 잠시 깃들어 초라한 마음을 이 허술한 집에서 쉬어갔으면 한다. 허술하므로 단단한 집보다 더 위로가 되는 집이었으면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일 것이다.
■ 목차
自序
슈테판의 회상
나의 회상
파델의 회상
슈테판의 또다른 회상
나의 또다른 회상
파델의 또다른 회상
우리들의 모래도시
■ 책 속에서
닫힌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나는 이상하리만치 신뢰를 하는데 그것은 할머니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아주 조금 받아들이며 조금 받아들인 것을 일생을 통하여 씹고 되씹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묘한 감동을 준다. 그들은 받아들인 아주 조그마한 것들을 마음속에서 삭이고 삭여 황홀한 것들을 만들어낸다. 할머니가 구운 케이크 위에 있던 것들, 일테면 버터와 밀가루를 섞어 불에 얼마만큼 올려두었다가 몽게몽게한 작은 덩이를 만들어 빵반죽에 올려놓고 구우면 황금색으로 향기를 내는 것들. 닫혔다는 것은 내부로의 집중과 몰입이라는 말에 다름아닐 것이다. _29쪽
안개 속에 환한 가로등이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가로등 빛은 안개 속에서 빛을 다 떨구고 어디론가 갈 것처럼 무참하게 서 있었고 그 빛은 무참해서 아름다웠고 그래서 그는 금방 가버릴 것 같은 빛을 향하여 애소하며 가지 말라고 붙들고 싶었다. 가지 마라, 제발 빛들은 나를 버리고 가지 마라. _172쪽
……그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여름이었고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서는 기숙사 화단에서 자라는 페퍼민트가 가는 팔을 흔들며 제 향기를 보내주었고 아이들은 오랜만에 난 햇빛 아래에 벗고 누워 일광욕을 했고 사자 이빨이라고 게르만들이 이름 지어 부르는 민들레가 푸른 하늘에 날아다니고 있었고 ……기억이라니, 그 한철이 이렇게 많은 그림과 향기로 남다니. 그리고 그 한철이 또한 어딘가에 두고 온 낙원 같다니. _183~184쪽
난, 이 지상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 거야.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 저녁식사를 따뜻하게 할 수 있을 만큼만. 그리고. 연필을 깎고, 천천히 천천히 배운 것을 소리내서 읽으면서 적을 거야. 따뜻한, 그 기에 의지해서. 따뜻한 거에는 빛이 나거든. 빛이 정말 나거든. 천천히 천천히,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고. _232~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