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원나라 지치(1321-1323) 연간에 중국 남부 복건성 건안에서 발간된 지은이 미상의 『삼국지평화』를 우리말로 옮긴 완역본이다. 현존하는 소설 『삼국지』의 최초 텍스트로, 『삼국지연의』보다 170여 년 앞선다. 당시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이라는 뜻의 ‘평화’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묘사가 다소 거친 감이 있지만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간략하다. 또한 공연 대본에서 장회소설로 바뀌어가는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상·중·하 3권이 1책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모든 쪽마다 삽화가 들어가 있는 원전에 충실하도록 지면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본문 내용과 일치되게 구성했다. 그 밖에도 인물화, 계보도, 지도 등을 삽입하여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정사 『삼국지』나 소설 『삼국지연의』와 비교하여 ‘삼국 이야기’의 원류와 그 형성과정, 변화과정을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아울러 ‘초한 이야기’와 ‘삼국 이야기’의 밀접한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환난 피하여 떠도는 일 일어나지 않았다면(不因躲難身漂泊)
재산 나누며 의리 중시한 일 어떻게 만났으랴?(怎遇分金重義知)
‘삼국 이야기’의 원류, 『삼국지연의』 이전의 텍스트
『삼국지평화』는 원나라 지치 연간에 간행되어 명나라 홍치 갑인년에 초간본이 나온 『삼국지연의』보다 170여 년 앞선다. 이러한 삼국 이야기는 대대로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으며 당·송 시대에도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 이전의 소설 『삼국지』의 현존하는 텍스트는 『삼국지평화』가 유일하다. 『삼국지평화』 이전의 삼국 이야기 텍스트가 전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내용과 체제가 어떤지 알 수 없었으나 『삼국지평화』 판본이 전함으로써 정사 『삼국지』에서 출발하여 각종 민간 공연 장르를 거쳐 『삼국지연의』에 이르는 ‘삼국 이야기’의 변화과정을 그려볼 수 있다.
조자룡이 창을 들고 출전했다. 장비는 대로하여 장팔신모를 휘두르며 조자룡을 죽이려 했다. 두 말이 교차하는 순간 두 장수의 창이 이무기처럼 꿈틀댔다. 격전이 30합이나 지속되었다. 장비는 분노를 터뜨렸다.
“일찍이 창을 잘 쓰는 자를 본 적이 있지만 이놈은 정말 강하구나!”
기존의 소설 『삼국지』는 잊어라!
『삼국지연의』와는 다른 ‘삼국 이야기’
『삼국지』와 관련된 국내 저서만 하더라도 실로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저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소설 『삼국지』 텍스트 중 최초인 『삼국지평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도입부다. 한 고조 유방에게 원한을 품고 죽은 한신·팽월·영포가 저승의 재판을 통해 다시 이승의 조조·유비·손권으로 환생하여 한나라 마지막 임금 헌제로 환생한 유방에게 복수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또한 ‘장비 『삼국지』’라 불러도 좋을 만큼 장비의 활약이 눈부시다. 도원결의를 주도하거나 호뢰관에서 여포와 싸워 물리치거나 소패성에서 여포의 포위망을 뚫고 조조에게 원군을 청하러 가거나 서주를 잃고 유비·관우와 헤어져 고성으로 들어가 무성대왕이라 부르며 쾌활이라는 연호를 쓰는 등 제갈량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반부에서는 장비가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도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역할이나 등장인물을 묘사한 장면의 디테일을 『삼국지연의』와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삼국이 천하 나누어 전쟁을 치를 때, 영용한 관우 장군 장한 뜻 많았네.
뼈를 깎고 상처 치료 질병을 제거했고, 강철 칼로 살을 저며 고질병을 막았네.
말과 안색 바꾸지 않고 손님을 맞았고, 용모도 의연하게 술잔을 기울였네.
이 또한 신선이 감춘 비법일 터이니, 천고의 명의를 화타라고 부른다네.
한 편의 흥미진진한 공연을 읽다
강사에서 평화, 장회소설로!
『삼국지평화』는 장편 역사 이야기 공연 ‘강사(講史)’에서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인 평화(平話)를 거쳐 장편소설 장르로 완성되어 발전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명나라 이후의 장회소설에 비하면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장회소설의 형식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야기가 두 갈래로 나뉜다’와 같이 당시 이야기꾼의 상투어가 쓰였는가 하면 중요한 대목마다 앞의 내용을 축약하고 논평해놓은 시를 배치하고, 후대 장회소설의 장 제목 역할을 하는 표제어를 삽입하고, 내용을 축약해놓은 본문 속 제목 등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묘사가 다소 거친 감이 있지만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간략하다. 이런 특징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는다면 장편 역사 이야기 공연을 보듯 이야기꾼의 융통성과 즉흥성을 경험할 수 있는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