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에 가까운 발효음식의 다양성
저자는 장인의 손길이 빚어낸 ‘작품’을 포함해 다양한 홈메이드 발효음식을 맛보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듣는 특권을 오랫동안 누려왔다. 강연에서 만나는 많은 이가 대대로 내려오는 발효음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민자들은 모국에서 즐기던 발효음식을 열띤 목소리로 설명해주었으며, 여행자들은 그동안 경험한 발효음식의 맛을 전해주었다. 스스로 터득한 레시피를 공유하는 실험가도 있었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의 사례 공유도 무수히 이루어졌다. 이로써 개인이 손수 발효음식을 만들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각양각색의 ‘변주’에 대해 경험하고 숙고한 상태에서 책을 저술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수집한 발효의 지혜를 총체적으로 담아낸 결과물이다. 바흐친 식으로 말하면 책 곳곳에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공명하면서 빚어내는 ‘다성성’이 울리고 있으며, 발효에 관한 내용을 총망라했지만 백과사전과는 거리가 있으며 철학적·문학적이기도 한 게 이 책의 묘미다. 발효과정 그 자체와 책이 닮아 있다.
발효란 무엇인가: 발효가 인간을 창조
발효가 사람이 먹는 음식에 작용하는 것보다 훨씬 폭넓은 자연현상임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례로 우리 몸속의 세포들조차 발효능력을 갖추고 있다. 바꿔 말하면, 사람이 발효를 처음 발명한 것이 아니며 발효가 사람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발효는 공생관계이며 공진화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하고 20억 년 동안, 박테리아는 행성의 표면과 대기층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모든 생명에 필수적인 화학적 체계를 창출했다. 그리고 발효에 관계하는 박테리아와 초기 단세포 생명체 사이에 공생관계가 생겨났다. 피식자(박테리아)는 유산소성 포식자들에 대한 내성을 발달시켰고, 그래서 먹을 것이 풍부한 포식자의 몸속에서 얼마든지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두 종류의 유기체는 상대방 신진대사의 산물을 서로 이용했다. 피식자들이 침입해 들어간 세포들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번식하자, 포식자들 역시 독립적인 생존 방식을 포기하고 영원한 공생을 선택한 것이다. 많은 생물학자가 발효에 관여하는 박테리아와 여타 초기 단세포 생명체 사이의 공생관계가 식물과 동물과 곰팡이를 구성하는 진핵세포들을 최초로 탄생시켰다고 확신한다. 무수한 박테리아 유전자의 공생발생은 진핵생물의 제한적인 신진대사 잠재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예기치 못한 돌연변이만으로 이룩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적응을 가속화하고 촉진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재생산 또한 발효를 필요로 한다. 여성의 질에서는 젖산균이라는 토착 박테리아 집단을 돕는 신비한 글리코겐이 발견되었다. 젖산균은 이 글리코겐을 젖산으로 발효시켜 병원성 박테리아의 침입으로부터 질을 보호한다. 이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발효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생명 현상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발효의 이점: 보존, 건강, 에너지 절약, 맛
발효는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첫째, 우리가 배양한 미생물은 음식 안에서 지배자로 군림하며 여타 수많은 박테리아의 성장을 막거나 밖으로 내쫓는다. 병원성 미생물의 생성 가능성을 줄여주며, 수확해서 소비하기 전까지 음식을 상당한 수준으로 보존하고, 구성 요소의 맛에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영양가를 높여주곤 한다. 산성화를 통한 보존은 식초, 피클, 사워크라우트, 김치, 요구르트, 치즈, 살라미 등 지구촌 사람들이 먹는 모든 종류의 발효음식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최근 상당수 질병이 생채소가 박테리아에 오염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발효음식이 원재료보다 안전하다고 말해야 옳다고 본다. 발효과정에서는, 심지어 원재료가 오염된 경우라도, 산성화 박테리아가 영양분이 대단히 풍부한 환경에 특별히 적응해서 산을 비롯한 보호 물질을 분비하며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므로 독성 박테리아가 생존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살모넬라, 대장균, 리스테리아, 파상풍균처럼 음식에서 발생한 병원균은 결국 살아남을 수가 없다.
발효음식은 대체로 영양가가 높고 소화가 잘된다. 발효는 음식을 소화하기 용이한 상태로 변화시켜 인체가 영양소를 생물학적으로 이용하기 쉽게 만든다. 아울러 새로운 영양소를 생성하거나 건강에 해로운 성분 또는 독소를 제거하곤 한다. 발효음식은 젖산을 활발하게 생성하는 박테리아를 함유하고 있어서 소화 기능과 면역 기능을 비롯한 건강 전반에 대단히 이롭다. 장내 박테리아는 멀리 떨어진 다른 장기의 면역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에 대응하는 “허파의 생산적 면역반응”과 관련 있어서 “호흡기 점막의 면역력을 조절하는 데 공생자인 미생물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창자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프로바이오틱 보충제를 비롯한) 음식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에 의해서 그 잠재력을 증강시킬 경우 인체의 건강에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오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발효와 문화, 공동체의 부활
저자가 발효에 대한 탐구와 사색을 이어가는 동안 거듭해서 고개를 내미는 한 단어가 있었다. 바로 컬처culture라는 말이다. 발효는 이 중요한 단어가 지니는, 미생물학의 ‘세균 배양’부터 훨씬 광범위한 ‘문화’까지 다층적 의미만큼이나 무수한 방식으로 컬처와 연관을 맺는다. 요구르트를 발효시키기 위해서 우유에 첨가하는 종균種菌을 컬처culture라고 부른다. 동시에 언어와 음악, 미술, 문학, 과학, 종교는 물론 농작물 재배와 조리법 등 인류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문화culture라고 한다.
실제로 컬처culture라는 말은 라틴어 colere의 명사형 cultura에서 왔는데, 이는 “경작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땅을 일구는 행위와 그 덕분에 생명을 얻은 존재들(식물, 동물, 곰팡이, 박테리아 등등)이야말로 문화의 핵심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식재료를 직접 기르고 손수 요리하는 행위는 개인을 어린애처럼 의존적인 소비자로 규정하는 사회 구조를 깨부수고 생산자와 창조자로서 존엄과 권력을 되찾을 수 있는 문화적 회복의 수단이 된다.
발효음식의 부활은 공동체의 부활을 의미한다. 노동의 세분화와 전문화를 통해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협동하게 만든다는 뜻에서다. 쉽게 말하면, 우리 동네에서 어떤 작물을 구할 수 있는지 파악해 그걸로 발효음식을 만들고 이웃과 나눠 먹자는 말이다. 어떤 물건을 전 세계 곳곳으로 나르려면 엄청난 자원을 소모해야 한다. 이는 환경에 크나큰 해악을 끼친다. 해외에서 수입한 음식이 짜릿한 맛을 선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온전한 삶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부적절하고 파괴적이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식품 대부분은 숲을 파괴하고 자급용 농작물의 다양성을 희생시킨 방대한 단일경작지에서 나온다. 게다가 전 지구적 무역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자연재해와 자원 고갈 등 여러 위협에 대단히 취약한 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발효는 경제 부흥의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음식의 지역화는 농업의 개혁, 나아가 농산물을 빵이나 치즈, 맥주처럼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것으로 변화시켜 보존하는 과정의 개혁을 의미한다. 지역에서 음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일상의 기본 욕구를 거의 모두 충족시키는 중요한 자원을 적극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
천연발효와 배양발효
발효과정이란 대체로 환경적 조건을 조절함으로써 원하는 미생물을 살리고 원치 않는 미생물은 억누른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양배추 한 포기가 저절로 사워크라우트가 되는 법은 없다. 양배추, 아니 어떤 채소도 상온에 놓아두면 결국 표면에 곰팡이가 시커멓게 슬어버리고 만다. 더 오래 내버려두면 산소를 좋아하는 이 미생물이 양배추 한 포기를 아삭아삭하고 새콤달콤한 사워크라우트와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는 흉측한 점액질로 만들 것이다. 모든 채소는 젖산균, 곰팡이균 등 무수한 미생물의 서식지다. 끈적한 점액질이 아니라 맛있는 사워크라우트가 탄생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려면 양배추를 액체에 담가서 산소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발효음식은 이처럼 간단한 방법으로 만든다.
사워크라우트를 만들 때는 양배추 등 생채소에 원래 서식하는 박테리아에 의존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재료 자체 또는 주위 환경에 존재하는 미생물로 발효시키는 방식을 천연발효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되는 발효법은 별도의 미생물 또는 그 집단을 외부에서 기질로 공급해 발효를 촉발시키는 것으로, 배양이라 칭한다. 이스트, 누룩, 효모 등으로 불리는 대다수 종균은 활동적이고 성숙한 소량의 효소를 원재료의 신선한 영양소 안으로 집어넣는 단순한 역할을 맡는다. 요구르트와 사워크라우트 역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백슬로핑이라 한다. 사람들은 종균이 만족스러운 변화를 저절로 이루어내는 천연발효균과 동일한 결과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했고, 수많은 시도 끝에 최적의 조건을 깨우쳤으며, 이렇게 만든 발효음식을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기술도 발전시켰다.
동유럽 사람들의 피클 레시피를 보면 호밀빵 한 쪽을 소금물에 띄우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나처럼 피클을 사랑하는 아이러 와이즈는 1950년대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성장했다. 건널목을 세 번 건널 때마다 한 번꼴로 피클을 파는 노점상과 마주치던 시절이었다. 그는 헝가리 태생의 어머니가 피클을 담글 때면 호밀빵 한 조각을 소금물에 띄우곤 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아이러는 수많은 실험 끝에 호밀빵의 첨가 여부가 최종 결과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결론짓고 더 이상 전통을 계승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_ 266쪽
크바스의 주재료는 빵이다. 대개 오래 묵혀두어서 단단하게 말라붙은 빵을 쓴다. 빵이 바싹 마르면, 항아리나 냄비에 넣고 말린 박하 같은 허브를 조금 첨가한다. 그리고 내용물이 잠길 정도로 끓는 물을 넉넉히 붓는다. 파리가 안 들어가도록 주둥이를 천으로 막고 하룻밤을 기다린다. 다음 날 아침, 빵 덩어리들을 건져서 액체를 짜낸다. 이어서 체를 받치고 그 위에 무명천을 몇 겹으로 깔아 한 번 걸러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크바스에서 거품이 마구 솟기 시작하면 병에 넣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완성된 크바스는 상쾌한 탄산음료로 그냥 즐겨도 좋고, 오크로슈카okroshka처럼 여름철에 시원한 수프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_ 317~319쪽
크렘 프레슈는 크림만 가지고 하루나 이틀 발효시킨 것이다. 걸쭉하고 맛이 진하며 아주 부드럽다. 요즘 레시피를 보면 대부분 크림에 버터밀크를 종균으로 조금 넣으라고 나온다. 저온살균한 크림을 쓴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생크림이라면 발효균을 첨가할 필요가 없다. 따뜻한 냄비에 넣고 24시간 정도 발효시켜서 걸쭉한 상태가 되면 냉장고로 옮긴다. 냉장고 속에서 더 걸쭉해지고 맛도 좋아질 것이다. 소스나 수프, 디저트로 즐기자. _ 4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