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속과 증오에 대하여」에서는 농민, 공장 노동자, 수공업 노동자, 공장주, 상인, 공무원, 부자와 부르주아 등의 계층이 저마다의 환경에서 경험하는 억압에 대해 서술한다. 거대한 기계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 그들이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데서 증오와 경멸이 싹틈을 지적하고 계층들 간의 연대와 결속의 방법과 가능성을 고민한다.
2부 「사랑을 통한 해방: 자연」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민중의 본능을 밝히는 데 집중한다. 가령 미슐레는 귀족이나 예술가들이 아니라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낭만주의의 얼굴을 발견하는데, 성당에 동물을 데려가 함께 구원받으려 한 농부들의 모습이야말로 낭만주의의 밑바탕이며 동물뿐 아니라 식물까지도 인간의 형제라고 말한다. 또한 자연적인 삶을 사는 어린이의 본능이야말로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을 희망임을 일관되게 역설한다.
3부 「사랑을 통한 해방: 조국」에서는 자기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면서 인류의 공영에도 기여할 수 있는 민족주의에 대해 서술한다. 모성으로서의 조국은 민중의 영혼에 활력적인 출발점이 되고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거점이 된다고 보면서, 최종적으로 그러한 민족주의를 위해 교육이 기여해야 하는 바를 제시하고 있다.
혁명을 복원하기 위해 민중을 소환하다
세계사는 크게 프랑스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자유, 평등, 박애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운 프랑스혁명의 정신은 권력이 왕과 귀족에게서 민중에게로 넘어온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다른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그러했듯 미슐레도 프랑스혁명에 긍지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혁명이 인류 보편을 위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확립해놓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혁명이 그렇듯 프랑스혁명도 처음의 신념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유럽을 깜짝 놀라게 한 혁명이 일어난 뒤로 기존과 전혀 다른 새 헌법과 제도, 조직이 갖춰지고 성이나 계층에 대한 관점이나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했지만,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당시 미슐레가 목격한 프랑스의 현실은 참담한 것이었다. 2월혁명 이후 대통령으로 선출된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로 등극하는 바람에 또다시 프랑스는 제정시대로 퇴보한 상황이었고, 국민들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대중은 산업혁명을 일찍 개시하여 경제적 강국으로 떠오른 영국을 선망했다. 여론을 선도한다는 위치에 있는 당대의 많은 프랑스 지식인들은 마치 프랑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진보적인 면모를 보이며 애국하는 길인 것처럼 허위의식에 빠져 모든 것을 까발리기에 바빴다.
역사가 미슐레는 프랑스가 옛 영광을 되찾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프랑스라는 한 국가를 위하는 일이자 동시에 인류를 위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프랑스의 영광을 복원한다는 것은 곧 보편적 인권을 위한 프랑스혁명의 신념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과거를 복원함으로써 자신의 조국은 물론이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여정에 나설 선봉대로서 공감과 헌신의 능력이 가장 뛰어난 민중을 그는 소환했던 것이다.
어리석은 이기주의! 두려워하는 부자와 부르주아계급은 어느 쪽을 바라보는가? 그들은 어디로 동맹을 찾아 연계하러 갈 것인가? 가장 변화가 심한 그들에게 곧바로 갈 것이다. 이 나라에서 왔다가 가버린 정치적 세력, 혁명의 날에 돈과 서류 가방을 들고 해협을 넘어 영국으로 도피했던 자본가들에게로 갈 것이다. 재산가들이여, 땅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결코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민중이다. 그들을 지지하라. _본문 168쪽
오늘날 프랑스대혁명은 궁극적으로 부르주아혁명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부르주아가 혁명을 주도했으며 이후에도 부르주아의 전반적 성장을 위한 길을 여는 데 초점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에서 농민들의 봉기와 도시 민중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부르주아는 귀족계급 타도에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슐레는 이와 관련하여 행동하지 않고 잡담과 논쟁만 일삼는 상층계급 지식인들의 태도를 꼬집는 한편, 용기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인 민중의 본성을 긍정하며 그들의 목소리가 곧 신의 목소리라고 힘주어 말한다.
인간이 주체가 되는 역사를 기록하다
역사가의 중요한 덕목이 사료를 광범위하게 판독하고 그것을 인간 본성과 사회시스템의 교집합 속에서 정치하게 읽어내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그 결과를 삶의 전망과 연결시키는 것이라면 미슐레야말로 그에 걸맞은 사람일 것이다. 미슐레는 고문서에 파묻혀 고고하게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지식인이었다. 그에게 역사란 숙명에 대한 인간 자유의 끊임없는 투쟁이었고, 그것은 역사 형성에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한 잠바티스타 비코의 목소리와도 닿아 있었다. 크고 작은 농민궐기가 불씨가 되어 촉발된 프랑스혁명의 순수한 의의를 회복하는 데 골몰한 그는 늘 민중의 입장에 굳건히 서서 역사를 바라보았는데, 그 결과가 바로 『미슐레의 민중』이다. 정확한 사료와 개성적인 서술 방식, 시인적 직관을 중시한 그의 문장은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미슐레는 핍박받고 소외된 계층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역사 서술로 실천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