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 강을 건너면 누가 나에게 저 푸르름에 대해 설명해줄까…… 날지 않는 새처럼 나는 법도 잊어버리고 울지 않는 새처럼 우는 법도 잊어버렸는데 새라면 좋겠네.
날개 없이도 날 수 있는 그런 새라면 새라면 좋겠네.
목 없이도 울 수 있는 그런 새라면 아— 그러나
저 설명 없는 푸른 강이라면 더욱 좋겠네. _「날지 않고 울지 않는 새처럼」 부분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며 죽음을 연습하고
잎은 떨어지는 힘으로 삶을 연습한다.
헝클어진 뿌리들도 자세히 보면
그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그 어느 잔뿌리 하나 쓸모없는 게 있던가. _「나의 떨켜」 부분
이 웃기는 공범들의 집행유예는 언제나 끝날까?
하지만 공판은 언제나 다시 시작되었고
우리는 모두 ‘꿈 깨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였지만
익명의 벽 속으로 거세된 친구들은 우리들을 향해
이 개새끼들아, 웃지 말고 방구석에 처박혀 꿈이나 꿔!
아—
그러나 1980년 겨울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나에겐 차마 꿈꾸는 짓은 못했으니
꿈꾸면서 물방울처럼 숨쉴 수는 더욱 없었으니…… _「구토 1」 부분
1982년 이륭이라는 필명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를 발표하며 시단에 나온 이산하 시인의 첫 시집 『존재의 놀이』를 문학동네포에지 24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1999년 8월 문학동네에서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로 첫 선을 보였으나 편집자와의 착오로 제목이 바뀌어 출간되었다. 시집의 제목을 22년 만에 『존재의 놀이』로 바로잡는다. 41편을 수록한 초판에서 몇 편을 덜어내고 2부 구성에 34편을 실었다. 1987년 이산하 시인은 제주 4‧3사건을 다룬 장편서사시 「한라산」의 최종 원고인 서시를 1987년 3월 『녹두서평』 창간호에 발표한다. 당시까지 4·3사건은 남로당과 불순세력이 일으킨 ‘폭동’이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은 정당했다는 것이 국가의 공식 입장이었다. 이러한 국가의 언어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한라산」은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몰고 왔다. 출판사는 ‘초상집’이 되고 해당 잡지의 다른 필자들 역시 대부분 수배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같은 해 11월 이산하 시인은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절필하였다가 11년 만인 1998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날지 않고 울지 않는 새처럼」 외 4편을 발표하면서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의 1부는 1998년 봄에서 1999년 봄에 이르는 잔잔한 시기에 쓰인 시들을 묶었고 2부는 자신이 출렁거렸던 1977년 봄부터 1985년 봄에 쓴 시들이라고 시인은 밝힌다. 그 잔잔함과 출렁거림의 사이가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처럼 너무 아득하다고(시인의 말). 도정일 평론가는 “80년대와 90년대라는 두 시간대 사이의 높고 어지러운 낙차로부터 나오는 소리, 그것이 이산하의 시”라고 말하며 “그의 시에서 우리는 열정적 영혼들이 걸어온 한 시대의 정신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문재 시인은 『존재의 놀이』 속 대부분의 시편들이 80년대 후반, 한국 시문학사에 충격을 던진 미완의 장시 「한라산」 이후 십수 년 동안의 공백기를 거친 다음에 쓰여진 것임을 언급하며 작고 사소한 것에서 크고 거룩한 것들, 죽음에서 신생을 찾아내 끌어안는 시인의 크고 넉넉한 품에서 “한 알의 밀알을 태어나게 하는 한 알의 밀알”로서의 ‘순교’를 본다. “‘꿈을 깨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되는 80년대적 상황”에서 이산하 시인의 절망은 절대적 부정으로 자기 긍정을 시도하는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최동호).
『시작』 2020년 여름호 홍용희 평론가와의 대담에서 이산하 시인은 등단작 「존재의 놀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삼중 구조로 이루어진 이 시는 노란 테니스공이 네트를 넘어가 낙하하는 그 짧은 순간을 묘사한 것으로 그 짧은 순간에 테니스공은 현상과 본질, 존재와 의식, 현실과 이상, 개인과 집단, 창조와 진화 등의 경계에서 양 극점을 넘나들며 자기를 버리기 위해 맹렬히 성찰한다. 결국 자기 자신이 단지 하나의 ‘고무 제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테니스코트 바닥으로 뚝 떨어져버린다. 시인은 말을 잇는다. 글을 쓸 때 늘 기대는 2개의 슬로건이 있다고. ‘모든 사유는 뒤늦은 사유(afterthoutght)’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과 ‘언제나 이미(always already)’라는 데리다의 말로 이산하는 이것이 예술가가 중력과 광속에 굴신하지 않는 출발점이라고 본다. “사진을 빛이 찍듯 시도 빛이 쓰는 것을 시인이란 도구가 대필해요. 늘 실패하면서도 난 그 빛을 이용해 중력을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지요. 그것이 존재의 극점입니다.”(「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시작』 2020년 여름)
포도주 한 병씩 들고 할아버지와 나는 포도밭으로 갔다.
포도나무 뿌리는 아직도 바다로 뻗어 등대까지 이르고
그것은 지난해보다 더 크게 굽어 있었다.
저녁이 내릴 무렵 등대지기가 보내온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포도주를 마셨다.
할아버지는 포도송이만 바라보며 따기를 멈췄던 예전처럼
조용히 병을 내려놓고 점점 깊어가는 어둠만 뚫어지게 보았다.
하지만 우리를 덮고 있는 이 어둠은
포도를 따기 전에도 이미 내려와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끝내 입이 열리지 않았다.
깊어가는 파도소리와 함께 어둠이 조금씩 짙어가지만
한동안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 그해 초가을
파도가 등대를 덮자 황소는 포도밭으로 달아났다.
황소 발자국만한 포도송이들이 터져
포도밭이 온통 발효시킨 포도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물방울은 땀방울을 흘리고 땀방울은 핏방울을 흘려
포도나무 뿌리들은 서로 땅을 움켜쥔 채 소용돌이쳤다.
온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할아버지의 흐느끼는 목소리 위로 무수히 잎이 내리고
그 잎 사이로 아이들이 촛불을 켜고 뛰어다닐 동안
나는 그의 기억의 강 끝에 이르는 푸른 물줄기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이제 겨울 포도밭은 불 꺼진 성당처럼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할아버지와 난 아직 조금 남은 포도주를 바다에 뿌린 다음
어둠 밖으로 걸어나오지만 결코 지난해의 그 어둠은 아닐 것이다.
_「겨울 포도밭」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