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말풀이식으로
사방에서 너를 훑고 가는 머리말들이 가득한 방안에서
마주잡은 친구의 손길은 차라리 따뜻한 빵이었지만
밤새워 되짚어도 손가락은 열 개 하지만
더이상 친구가 없어
이름 붙일 수 없는 도무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니?
‘알 수 없는 곳에 가득해지는 도무지들’ _「도무지들」 부분
너희들은 아름다웠다. 잔디 위에는 항상 물방울들이 접착제처럼 붙어 있고
수족을 한데 모은 동그란 몸으로 어딘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가는
나는 꿈속에서나 간신히 너희들의 정면을 마주한다. _「공소년의 무한 질주」 부분
당신을 처음 만난 수원지였어. 물은 팔당, 팔당 고동치고 당신은 흔들리고 있었지. 먼 곳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내 눈에 당신은 일현금을 타는 먼 나라의 악공이었어. 그래 낚싯대를 잡은 당신의 팔이 현이라면 그 소리 내 목에 스며 피가 될 테지. _「악공, 일현금」 부분
2001년 『시와반시』를 통해 등단한 신동옥 시인의 첫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를 문학동네포에지 30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2008년 2월 랜덤시선 38번으로 첫 시집을 묶었으니 그로부터 꼬박 13년 만이다. 개정판 작업중 54편을 엮어 만든 초판을 그대로 되살리려 노력했으나 지금의 눈으로 살피려 해도, 그때의 마음으로 품으려 해도 쉬이 보아 넘기기 힘든 5편은 버렸다. 나머지 49편을 초판의 구성과 순서 그대로 실었다(개정판 시인의 말). 김언 시인에 따르면 신동옥은 이 시집에서 이항대립의 허물어짐을 견디는 방식으로, 무의미를 묵묵히 건너가는 방식으로 다시, 윤리를 언급하고 있다. 무언가를 세우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화되는 지점을 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존재하는 윤리를(「Electric Lady Land를 유영하는 낯선 토종어들」). “‘중독된 고독’이 빚어내는 ‘흑요석’처럼 빛나는 노래를 들어보라. 아직도 그대들 가슴속에 고독의 현으로 팽팽히 당겨진 심금이 남아 있다면”(박정대).
당분간은 당신의 죄악을 노끈으로 동여매 집밖으로 내놓으십시오.
쥐들이 돌아가는 길마다 슬픔이 창궐합니다.
쓰러진 자들을 짓밟고 춤추며 교회당으로 몰려가는 무리를 보십시오.
새벽입니다. 손을 맞잡고 이마를 맞대고 육식에 힘쓰는 시간입니다.
마지막 날
이윽고 스테인드글라스 위로 빛이 스미겠지요.
누구고 이 성스러운 병(病)의 벽을 깨부술 수는 없습니다
_「사육제의 나날」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