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망楚亡』에 대하여
『초망』은 『진붕秦崩』이라는 책과 한 세트를 이룬다. 하지만 한 세트라고 해도 각각은 독립성이 강하기 때문에 꼭 『진붕』을 읽고 나서『초망』을 읽어야 한다거나, 『초망』을 읽기 위해 반드시 먼저 『진붕』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어느 한 권만 읽는 것으로 그친다면 뭔가 허전한 느낌을 감추기 어려울 듯하다. 『진붕』과 『초망』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교묘한 이중주다.
한신의 한수漢水와 제갈량의 한수는 다르다
저자 리카이위안은 『초망』에서도 적극적인 역사적, 문학적 상상력으로 고대사가 안고 있는 구체적 서술의 공백을 메우려 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료와 현지답사가 반드시 동원된다. 리카이위안은 한신이 거짓으로 자오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도로 나가 관중을 평정하는 과정을 현지답사하고, 고대의 한수가 한나라 초기에 지진으로 끊기기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상류까지 연결되어 있었음을 증명한다.
그에 따르면 후대의 제갈량은 한신의 경로를 따라 관중으로 진출하여 한나라를 부흥하려 했지만 이미 물길이 끊긴 한수 상류는 제갈량의 출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리적 조건에서 제갈량은 이미 실패를 안고 있었던 셈이다.
자신의 근거지인 팽성을 유방에게 뺏긴 항우가 다시 팽성을 함락하고 유방을 거의 망국 지경으로 몰아넣은 팽성대전의 공백도 저자는 세밀한 현지답사를 통해 성공적으로 복원한다. 흔히 역대 사가들은 항우가 지금의 산둥성 허쩌시荷澤市 부근에서 출발했거나 이수이沂水강 물길을 따라 바로 팽성으로 접근한 것으로 분석해왔지만, 리카이위안은 항우가 이수이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중간 지점인 지금의 치양啓陽에서 서북 방향으로 낮은 둔덕을 넘어 페이청費城과 볜현卞縣을 거친 후 쓰허泗河강 물길을 따라 내려와 팽성을 기습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3만의 소수 정예병을 이끌고 60만 대군이 지키는 팽성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유방 군사의 이목에 노출되는 공개 노선을 따랐을 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기』에서 항우의 자결 장면이 생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밖에도 리카이위안은 한중시를 탐방하고 소하가 한신을 추격한 유적지를 확인하여 바로잡는가 하면 정형도井陘道 일대를 답사하여 한신의 배수진 전장을 확인하는 등 곳곳의 역사 흔적을 직접 찾아가서 의심스러운 사서史書의 행간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그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딸이 한 선제 때 승상을 지낸 양창楊敞의 부인이고, 양창의 증조부가 초나라 항우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 양희楊喜라는 점에 착안하여, 『사기』 「항우세가」의 마지막 대목인 해하 전투와 오강 전투의 기록이 매우 생생한 것은 바로 양희의 집안에 전해 내려온 전쟁 승리담을 사마천이 자신의 사위 양창에게서 직접 들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게다가 저자는 초나라 고열왕의 서자 창평군 웅계熊啓가 기실 진시황의 부친인 진나라 장양왕의 고종사촌임을 증명하면서, 장신후 노애의 반란을 진압하고 어린 진시황을 보좌한 창평군이 항우의 숙부 항량에 의해 초나라 마지막 왕으로 추대된 내막을 설득력 있게 밝혀낸다.
리카이위안이 새로운 역사서 쓰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는 진시황, 유방, 항우가 남긴 자취의 공백을 메우며, 우리 현실을 비춰보는 거울로서의 역사에 글쓰기의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리카이위안은 당시 천하의 형세를 외면하고 자신의 고향 근처인 팽성으로 도성을 옮긴 항우의 행적을 새롭게 분석하면서, 정치인이 대다수 민심을 어기고 자신의 욕망과 권력 구현에만 혈안이 되면, 결국 패가망신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초한전쟁에 대한 천고 절창을 남겼다. 항우는 숙부 항량을 따라 회계에 들어갔을 때 24세였고, 오강에서 31세의 나이로 자결했다. 8년 동안 전개된 이 역사의 희극은 눈물겨웠고, 진나라 붕괴, 초나라의 멸망, 한나라의 성립이라는 일련의 중대한 전환기를 거쳤으며, 마침내 500여 년 동안의 혼전 정벌은 안정으로 돌아섰고, 중국 역사는 전한의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저자 리카이위안은 이 역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문헌 사적과 출토 유물을 결합하고, 지상의 유적을 답사해 그 미스터리를 풀어냈다. 한신, 장량, 진평과 같은 영웅호걸의 진면모가 그려져 있으며 역사서에서 생략된 장면들을 현장 답사를 통해 종이 위에 풍부하게 부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