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정통한 뼛속까지 ‘이공계’인 사람이 문자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대만 국립 타이베이상업기술대학의 부교수 겸 도서관장인 저자 랴오원하오(廖文豪)는 이공계 출신임에도 지난 10여 년 동안 갑골문이나 금문(金文) 등 중국 고문자에 심취해 연구해왔다.
저자는 지금까지 쌓인 중국 고문자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따라가며 공부했지만, 하면 할수록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일례로 부수(部首)는 한자를 구성하는 일부분이자 대부분의 한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자를 분류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부수가 똑같더라도 반드시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다른 한자이지만 그 변천과정을 보면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들도 많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주특기인 컴퓨터의 정보처리 기능을 활용해 한자들 사이의 관계를 계통화하면서 한자의 기원을 쉽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 결과 ‘한자나무’라는 한자의 파생 관계도를 만들어냈다. ‘한자나무’ 파생 관계도는 저자가 갑골문 및 금문 등 고문자를 토대로 새롭게 만든 ‘그림 문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그림 문자는 현대 한자를 쉽게 연상시켜 한자 학습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의 10여 년간의 중국 고문자 연구결과를 엮은 것으로, 특별히 ‘사람〔人〕’과 관련 있는 한자 500자의 기원을 정리했다. 『한자나무』는 대만에서 2012년도에 1권이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 시리즈로 5권까지 출간될 만큼 대만과 중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나무 모양의 그림으로 한자의 파생 관계를 알려준다. 이 관계도를 이용하면 외국인이나 아이에게 한자가 파생되어 만들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할 수 있다. 이 책은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한자의 발전 맥락은 물론 부수까지 배울 수 있는 도구이고, 더불어 중국 문화의 정수까지 맛보게 해준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모든 한자의 부수가 가지는 뜻을 알 수 있고, 또한 한자에 숨어 있는 고대 문명을 이해할 수 있다. _20쪽에서
그림 문자로 풀어내는 사람의 오묘한 비밀
이 책은 사람의 성장과정과 자세변화, 성별에 따라 책을 총 4장(章)으로 나눠 한자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중국 고문자 세계의 색다른 재미와 함께 중국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읽을거리와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파생 관계에 맞게 한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예컨대 ‘繁(번잡할 번)’의 파생 경로는 이렇다. 한자를 만든 사람은 먼저 옆으로 서 있는 사람, ‘人(사람 인)’을 만들었다. 이후 이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모습에서 단정한 여인 ‘女(여자 녀)’가 파생되었다. 그리고 ‘女’의 가슴에 두 개의 점을 더해 젖 먹이는 능력이 있는 어머니 ‘母(어미 모)’를 파생시켰다. 어머니의 머리에 세 가닥 머리카락을 더하면 ‘每(매양 매)’가 되어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뜻하고, 여기에서 ‘모든’이라는 의미가 생겼다. ‘每’ 옆에 한 손과 빗이 더해지면 ‘敏(민첩할 민)’이 되고, 빠른 속도로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손, 즉 민첩함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敏’ 밑에 땋은 머리 ‘糸(실 사)’를 더하면 ‘繁(번잡할 번)’이 되고, 교차시켜 땋은 머리가 된다.
또한 한자 기원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위해 5가지 검증 원칙을 세웠다. ①갑골문, 금문의 자형에 부합해야 한다. ②역사적인 사실이나 선진시대의 서적 기록에 부합해야 한다. ③모든 한자 부호에 대한 해석은 일치해서 그 한자 부호를 포함한 다른 한자에서도 똑같이 쓰여야 한다. ④파생된 뜻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⑤자형과 뜻이 일관성 있게 변화해야 한다.
幸(다행 행)의 원래 뜻은 ‘죄인이 차고 있던 수갑’이었다?!
이 책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한자에 대한 상식을 송두리째 깨는 내용이 많다. 예를 들면 ‘幸’(다행 행)의 갑골문과 금문을 살펴보면 ‘幸’의 원래 뜻이 죄인들에게 채우던 나무수갑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현재의 자형과 뜻을 갖게 된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고문자 ‘幸’자의 변화를 살펴보면 갑골문 및 금문을 지나 전서(篆書)에 이르면 나무수갑의 형상을 딴 상형문자에서 ‘夭’(일찍 죽을 요, 원래 뜻은 ‘큰 보폭으로 걷는 사람’이다_본문 239쪽 참고)와 ‘逆’(거스를 역)이 합쳐진 회의문자로 변화한다. 즉 ‘(운 좋게) 거꾸로 도망치는 사람’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죄인들이 탈출하는 사건이 많았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자형을 가지게 되었고 ‘액운에서 벗어나다’라는 뜻까지 파생돼 나온 것이다. ‘幸’이 포함된 한자는 ‘幸’의 원뜻인 ‘수갑을 찬 죄인’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執’(잡을 집)은 범인을 체포하는 광경을 표현한 것이고, ‘圉’(마부·감옥 어)는 죄인에게 수갑을 채운 뒤 감옥에 넣은 것이며, ‘擇’(가릴 택)은 수갑〔幸〕을 들고 사방을 둘러보며〔目〕 수색하다가 손〔手〕으로 용의자를 잡는 것을 나타낸다.
夷(오랑캐 이)는 큰大 활弓을 잘 다루는 민족으로 해석될 수 없다?!
‘큰 대(大)’자에 대한 설명도 우리의 상식을 깬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 중국인들은 사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한자로 사람의 옆모습을 표현한 ‘人’(사람 인)자와 정면을 표현한 ‘大’(큰 대)자를 만들었다. ‘大’의 갑골문과 금문 및 전서는 모두 두 팔과 다리를 벌린 사람으로 성숙한 어른을 상징한다. 이는 곧 ‘大’자가 포함된 한자들은 사람이나 성인(成人)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大’자에서 파생된 한자 ‘오랑캐 이(夷)’는 큰〔大〕 활〔弓〕을 맨 민족이라는 의미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夷’를 ‘포승줄에 꽁꽁 묶인 사람〔大〕’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옛 중국인들은 중국을 둘러싼 이민족들을 문명화가 안 된 오랑캐로 일관적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아름다울 미(美)’자에 대한 기존 상식도 깨진다. 흔히들 알고 있는 것처럼 ‘큰〔大〕 양(羊)이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니라 ‘양(羊)가죽 외투를 입은 사람〔大〕’이라는 뜻이 된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주나라 왕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양가죽 외투를 입었는데, 이는 양가죽 외투를 입음으로써 완전히 순종적인 양이 되어 하늘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옛 사람들은 하늘의 뜻에 완전히 순복하는 사람을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