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은 불행이 어떻게 오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확률 너머의 세계에서 밀어닥친다.”
발 둔 곳이 무너져내려 향할 곳은 아래뿐일 때,
그럼에도 잿빛 너머의 희미한 빛을 본다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군더더기 없는 활달한 힘, 소통의 문제를 다루는 시선과 방식에 있어서의 개성과 건강성”(소설가 오정희, 전상국)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과 통찰”(문학평론가 김미현)을 지녔다는 평과 함께 제13회 김유정소설문학상, 제2회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 이경의 두번째 소설집 『비둘기에게 미소를』이 출간되었다. 화려한 도시의 응달에 도사린 불온과 비참을 강렬하게 묘파한 첫 소설집 『표범기사』(민음사, 2011) 이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대의 변화된 모습을 공들여 관찰해온 이경은 이번 소설집을 통해 청년 홈리스, 배달 플랫폼 노동자, 미혼모 등 오늘날의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내며 그 바탕을 이루는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한다.
부러진 날개를 움켜쥐고
아래로 아래로 걸어내려가는 인물들
이경의 소설 속 인물들은 제각기 자리할 곳을 찾지 못하고 낭떠러지까지 내몰려 있다. 표제작이자 소설집의 문을 여는 「비둘기에게 미소를」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병원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 달로 치면 평균 임금에 훨씬 못 미쳤지만 최저시급보다는 높”(11쪽)은 시급을 받는 자리를 구한 것을 ‘나’는 ‘행운’이라 여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공간 낭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지하로 쫓겨나듯 내몰리고, 그곳에서도 더욱 좁은 곳으로 떠밀리며 ‘숨쉴 공기’마저 빼앗긴 듯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옆 사무실의 ‘류계장’이 ‘나’에게 비둘기 한 마리를 떠맡긴다. 날개 다친 비둘기를 몰래 거둬 치료하는 중인데, 자신의 사무실 천장을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때문에 비둘기가 겁을 먹어 치료가 늦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비둘기를 돌보기 시작하지만, 금방 찾아간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류계장 때문에 점점 곤혹스러워진다.
이어지는 「스튜디오 베이비」에서 ‘신우’와 ‘영안’의 처지 역시 별다를 바가 없다. 사대보험 혜택조차 없는 박봉의 베이비 스튜디오에서 사진작가로 일하는 신우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도록 흔적없이 지내는 조건으로 스튜디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생활한다. 어시로 일하는 영안 또한 “어딜 가도 최저임금에 계약직이니까 그게 그거예요. 한두 해 일하고 잘릴까 조마조마한 것보다 여기 있는 게 낫죠”(45쪽)라고 말하며 열악한 처우를 감내한다. 이런 그들이 일하는 스튜디오 한편에는 “남들 사는 것처럼 세트장에서 사진이라도 찍어보”(53쪽)고 싶었던 부모들이 촬영을 마치고도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찾아가지 않은 앨범과 액자들이 쌓여 있다.
「재난 수령인」의 ‘나’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배달 플랫폼 노동자로 일한다. 국가장학금을 받으려면 가족구성원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데, 서류상에만 존재할 뿐 오 년 전 가출하고 없는 아버지의 동의를 구할 길이 요원한 탓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가에서는 의료급여를 신청한 아버지의 부양의무자, 즉 ‘나’에게 가족관계 해체 사유서까지 요구한다. 그 ‘사유’를 물으러 찾아간 아버지의 병실에서 구청 관계자는 “자식 된 도리로 부양의 책임이 있지 않겠”(100쪽)느냐고 묻는다. 문학평론가 김녕이 짚은 것처럼, 국가는 “완전무결한 단절이나 완전무결한 부양, 둘 중에 하나를 택하기를 강요”(해설, 201쪽)할 뿐, 그 사이의 가능성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이경은 이처럼 개인을 보호하고 포용해야 할 시스템이 외려 개인을 떠밀고 배척하는 부조리의 면면을 사실적인 필치로 드러내 보인다. 이 속에서 개인의 존재는 ‘낭비’로 여겨지고, ‘사람 냄새’는 지워야 마땅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시스템은 그저 개인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받아들일지 내칠지 가늠할 뿐이다.
울타리도, 파수꾼도 부재한
그 낭떠러지를 걸을 때
「기부 왕」과 「수태고지」는 국가 시스템의 연장선상에서 가정 내의 질서, 즉 가부장제의 실패를 조명한다. 「기부 왕」의 ‘나’는 자식을 돌보기는커녕 비상식적인 기부만을 거듭하는 ‘기부 왕’ 아버지를 떠나 독립해 살고 있다. 재수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구해보지만 그 벌이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모자란다. 결국 공부를 그만둔 ‘나’에게 어느 날 피차일반인 친구 ‘창새기’가 “사람이 그래도 미래가 있어야”(115쪽) 한다며 클럽의 푸싱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것은 미래를 보장해줄 수 없고, ‘나’는 ‘가정’에 대한 희망의 끄나풀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하는 건 완전히 무너져내린 ‘가장’의 모습뿐이다.
가부장제의 실패는 「수태고지」에서 더욱 통렬하게 묘사된다. 어느 날 불쑥 임신해온 열일곱 살 ‘소마’는 채근하는 아버지에게 “홀로 잉태를 했”(136쪽)다며 아무렇게나 둘러댄다. 그런데 이토록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들은 아버지는 소마를 ‘성모 마리아’로 내세워 부흥회를 열고 신도를 모은다. 그는 소마와 관계를 맺은 장본인이 나타난 뒤에도 끝내 진실을 외면한다.
앞의 작품들과 달리 「당연히」는 중산층의 삶에 편입해본 적 있는 인물들을 화자로 내세운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리할 곳을 찾지 못한 처지이기는 마찬가지다. ‘수빈’과 ‘제영’ 부부는 투자의 담보로 살고 있던 아파트를 내놓고 임시 거처를 얻는다. 좁아진 집에 둘 수 없는 짐은 이삿짐 업체에 임시로 맡겨둔다. 그러나 투자는 실패하고, 석 달 뒤 찾아가려던 짐은 삼 년이 지나도록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보관료를 지불하며 현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예한다. 짐이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던 그들의 믿음은 이삿짐 업체의 트럭을 실은 배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소식과 함께 무너진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 결말은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 붕괴된 시스템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약한 날갯짓에 일기 시작하는 바람처럼
저 너머에서 비쳐오는 희미하고도 분명한 빛
이처럼 내몰린 인물들이 마지막으로 향할 곳은 어디일까. 소설집의 끝에 놓인「A28」에서 ‘그녀’는 개발에 대한 풍문에 전 재산을 끌어모아 K지구로 향한다. 포클레인만 가득한 살풍경한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는 어린 시절 공사 현장에서 생활하다시피 하던 아버지와 그의 밑에서 포클레인을 몰던 ‘천기사’를 떠올린다. 과거 둘은 한 여자에게 나란히 마음을 빼앗겼지만 여자는 천기사에게 마음을 내주었고, 아버지는 곧 “알맹이가 홀랑 빠져”(186쪽)버리고 말았다. 어린 ‘그녀’는 아버지의 집채만한 포클레인을 움직이려 천기사에게서 열쇠를 훔쳐내고, 그것을 끝내 지켜야만 한다고, 포클레인을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경의 소설은 “좁은 틈 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애쓰는, 쓸쓸한 존재들”(‘작가의 말’, 213쪽)을 내버려두지 않고 그들 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간다. 「비둘기에게 미소를」의 ‘나’는 병원에 비상 상황이 발생하자 혹처럼 여기던 날개 다친 비둘기를 품에 안고 움직인다. 「스튜디오 베이비」의 신우는 아이의 사진을 보기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한 아이 엄마의 전화를 받은 날 밤, 미출고 사진이 쌓여 있는 창고 벽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틈을 발견한다. 「당연히」의 수빈과 제영 부부는 배가 가라앉는 사건 이후 광장에 나가 인파 속에서 촛불을 밝힌다. 이경의 소설은 이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빛을 그려 보인다.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잿빛 너머의 희미한 빛을 본다면, 이야기는 결코 낭떠러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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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도록 시의적이고 또 서늘하리만치 예리하게 작금의 시대를 포착해낸 이경의 소설을 읽는 일은, 그래서 곧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과 맞닿는다. (…) 그렇게 패닉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나면 그 너머를 상상하게 된다. 이경의 소설이 우리의 손에 쥐여주는 건, 어쩌면 작디작은 그 ‘상상’의 조각이리라. ‘너머’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너머’의 시스템은 어떤 모양일까. 그것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당신과 내가, 우리가 상상하지 않으면 그것은 미미한 ‘가능성’으로서조차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니 희망한다. 우리가 이경의 소설과 함께, 이 낭떠러지의 끝에서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기를. _김녕(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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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는 복잡한 구조물로 이뤄져 있다. 욕망의 구조물일 수도 있겠고, 이미 모든 게 결정된 거대한 세계의 일부인지도 모르겠다.
그 세계의 내부엔 정교하게 분리된 복도와 깊숙한 지하층이 있다. 파이프는 천장과 바닥에 파묻혀 있거나 허술하게 밖으로 드러나 있다. 주인공들은 파이프 속을 기어다니거나 밀실을 드나든다. (…)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좁은 틈 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애쓰는, 쓸쓸한 존재들을 위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_‘작가의 말’에서
■ 책 속에서
직원들에겐 특유의 미소가 있었다. 희미하고 온유한, 환자를 대하는 미소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밤낮없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환멸의 순간에도 미소 지어야 했다. 환멸을 피막처럼 감싼 그 미소는 손톱 밑 거스러미만 닿아도 찢길 것 같았지만, 주삿바늘이 혈관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 환자는 그 미소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직원들은 병원에 채용될 때 특별히 훈련받는지도 몰랐다. 내겐 그것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비둘기에게 미소를」, 12쪽)
비둘기는 매서운 발톱으로 이마를 할퀴고 공중으로 차올랐다. 미간이 얼얼했다. 통증인지, 충격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오물로 얼룩진 붕대가 정수리 위로 펄럭였다. 말라 바스러진 배설물이 비듬처럼 공중에 날렸다. 주체할 수 없는 환멸이 온몸을 우그러뜨렸다. 비둘기가 아니라, 류가 아니라, 간호사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환멸이었다.
이제 아무도 내게 미소 짓지 않을 것이다.(「비둘기에게 미소를」, 30쪽)
지하 가장 깊숙한 곳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덜컹덜컹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비둘기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고양이는 더 아래로 내려오지 않을 거야.(「비둘기에게 미소를」, 32쪽)
남미 여행에 동행한 사진작가는 신우의 사진이 프레임 바깥을 상상하게 만든다고 했다.
‘여기, 아이가 풍선을 놓쳐서 하늘을 보고 있는 이 사진을 봐요. 힘껏 뻗은 손끝에 줄이 살짝 보이잖아요. 프레임 바깥의 풍선을 상상하게 만들죠.’
지금의 신우라면 그런 말에 우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프레임 밖을 서성였을 뿐인데 오갈 곳 없는 처지가 됐다. 의미는 프레임 안에서만 구성된다고 딱 잘라 말해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스튜디오 베이비」, 51쪽)
어쩌면 신우는 프레임 안으로 영영 진입할 수 없을 것이다. 딱 한 번 꿈꿨을 뿐인데 이렇게 밀려난 건 너무 억울했다. 사람 냄새를 지우며 살다간 모멸감마저 잊게 될까 두려웠다.(「스튜디오 베이비」, 55쪽)
일부러 전화까지 해놓고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럴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수빈은 불행이 어떻게 오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확률 너머의 세계에서 밀어닥친다.(「당연히」, 75쪽)
아버지는 올해도 기부 왕이 되겠지. 죽을 때도 기부 왕으로 죽겠지. 아버지가 기부를 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죄책감을 덜어낼 곳이 필요할 뿐이다. 그 사실을 안다는 게 나의 약점이었다.(「기부 왕」, 127쪽)
아버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는 대로 몸을 부풀렸다. 몸은 점점 커지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쭈그러드는 느낌이었다. 새집을 지을 때 엄마는 마당의 덩굴장미와 라일락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창고를 지었다. 창고에 연탄과 쌀을 들여놓고 팔았다. 연탄 배달도 쌀 배달도 엄마 혼자 해냈다. 종일 연탄을 나르다보면 발톱까지 까맣게 물들었다. 엄마는 밤이면 손톱 발톱을 잘랐다. 까만 발톱이 튕겨 날아가면 그녀는 무릎걸음으로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찾아냈다. 가끔 이불을 들추고 아버지의 발톱을 깎았다. 깎아낸 발톱은 아버지에게 꼭 보여줬다. 아버지, 보세요. 이만큼 자랐어요. 그때마다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눈을 돌렸다.(「A28」, 183~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