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히로, 독자와 문단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목할 신인 작가
혼란, 흥분, 탐구욕을 불러일으키는 오묘한 분위기의 데뷔작 『탱고 인 더 다크』
사쿠라 히로는 『탱고 인 더 다크』로 제33회 다자이 오사무 상을 수상하고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일본의 신인 작가다. 미야모토 테루, 이마무라 나쓰코 등 걸출한 작가를 배출해낸 이 신인문학상의 최종후보에 올랐다가 고배를 마시고 이듬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국내에는 『탱고 인 더 다크』로 처음 소개된다.
『탱고 인 더 다크』는 어느 날 집안 지하실에 들어가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메신저로만 연락하는 아내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방황하는 남편의 오묘한 일상과 이면의 진실을 쫓는 이야기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시키듯 시작해 에도가와 란포처럼 물들어가는 전개가 매우 빼어난 소설.”(사이토 미나코, 『문단 아이돌론』 『요술봉과 분홍 제복』), “읽기 쉬운데 불가사의한 작품이다. 갈수록 ‘정말 이상한 건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해 이후 전개가 점점 궁금해진다.”(나카지마 교코, 다자이 오사무 상 심사위원)와 같은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은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다의적 해석을 가능케 해 읽는 이에게 혼란과 흥분을 일으키고 탐구욕을 자극한다.
사쿠라 히로는 이 작품에서 언뜻 건조해 보이는 일상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스며나오는 기이한 분위기 속에서 인간에 관한 다양한 물음을 펼쳐놓는다. 더불어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소설 『탱고 인 더 다크』를 마무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볍고 엉뚱한 스핀오프 격의 단편 「히노의 우아한 하루」를 등장시켜 작가적 재치와 기발함을 보여준다.
모습을 숨기고 남편을 시험하는 아내, 그런 아내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남편
빛과 어둠이 교란하는 일상 속 한 부부의 미스터리한 숨바꼭질
서로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며 합리적이고 개인적인 삶을 추구해온 젊은 부부. 요리를 하다 살짝 화상 입은 얼굴을 보이기 싫다는 이유로 당분간 집 지하실에서 지내겠다던 아내 K가 몇 달째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소통은 메시지나 통화로 하고, 남편인 내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매번 성실히 저녁식사가 차려져 있긴 하다. 독신으로 돌아간 듯 홀가분한 기분도 들고, 이런 해프닝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는다. 그러는 동시에 묘하게 K의 얼굴이 선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얼굴을 보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지만 돌아오는 답변이 엉뚱하다.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인 그녀가 만든 모바일게임 ‘오르페우스’에서 랭킹 10위 안에 들면 남편을 만나주겠다는 것.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유료 결제 안 하면 이길 수 없는 게임은 아니겠지? / 걱정하지 마. 무료 어플리케이션이니까. 캐릭터나 배경화면을 바꾸려면 유료 결제가 필요하지만 그걸로 게임에서 유리해지진 않아. 나는 돈 쓴 사람이 이기는 게임 같은 거 싫어하니까. / 좋아. 그 승부 받아들이지. (63p)
그렇지, 사진을 보면 돼. 나는 의자를 걷어찰 듯한 기세로 일어섰다 바로 맥없이 앉는다. 우리집에 앨범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개 가정에 결혼식 사진쯤은 있기 마련이지만 공교롭게도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K가 사진 찍기를 대단히 싫어해 여행지에서도 나만 사진을 찍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마트폰의 사진 폴더를 열어봤으나 역시 K의 얼굴이 찍힌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식은 할 걸 그랬다. (…) 애초에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기 위해 사진을 찾는다는 행위 자체가 비정상이다. 그런 짓을 하는 남편이 대체 어디 있겠나. 오늘 나는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56p)
그후로도 K는 지하로 내려오려는 남편에게 미션이나 조건을 내건다. 나는 이 숨바꼭질 같은 일상 속에서 아내의 제안들에 휘말려 점점 현실감각을 잃어가고, 아내가 숨어버린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한다. K가 숨어버린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나는 아내를 만날 수 있을까?
“서로의 소리를 똑바로 듣지 않으면 안 돼.”
타자와 소통한다는 일의 어려움과 그 가능성에 대하여
지하에서 올라오지 않는 K의 마음을 움직여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건 ‘탱고’다. 결혼 전부터 K는 기타를, 나는 플루트를 취미로 연주해 둘이서 합주를 즐겼고, 취향이 다른 서로가 공통으로 좋아한 것이 아르헨티나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였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지하에 들어간 내가 플루트를 불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K가 기타 연주로 화답한다. 그런 희망적인 순간도 잠시, 내가 음정을 틀릴 때마다 어둠 속 어디선가 날카로운 것이 날아와 손가락과 귀 따위를 베어버린다. “서로의 소리를 똑바로 듣지 않으면 안 돼.”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K는 다정히 말했지만, 그 순간 나는 공포심에 떨면서도 차갑게 깨닫는다. 숨바꼭질 같은 기묘한 일상 속에서 오히려 이 통증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감각이라는 것을. 이제는 자신도 이렇게 어둠이 계속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는 것을.
한순간 동시에 서로가 바라는 음을 내는 것. 단지 그뿐인 행위가 폭발적인 환희를 안겨준다. (…) 우리는 평소 귀에 들리지 않는 저마다의 ‘음악’—가령 사고나 감정, 몸놀림도 포함될지 모르겠다—을 연주하며 생활한다. 장르도 템포도 전혀 다른 ‘음악’이 동시에 울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소란스럽고 불협화음으로 가득차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따금 우연히 자신과 비슷한 음을 연주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을 만난 순간 온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퍼진다. 우리가 음악을 연주하거나 듣는 이유는 그런 순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가 아닐까? (169p)
가족의 최소 단위인 부부 사이조차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는 것을, 고대신화를 비롯해 백 년 전 소설인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를 다시 읽으며 새삼 확인했다. 사랑과 미움과 체념이 뒤섞인 복잡한 심리 묘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이 전해지지 않아 생기는 절망감은 인류 보편의 감정인 것 같다. 타자와 소통하는 어려움과 그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탱고 인 더 다크』를 썼다. (작가 수상 소감에서)
사쿠라 히로는 다자이 오사무 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가족의 최소 단위인 부부 사이조차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는 것” “타자와 소통하는 어려움과 그 가능성”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작중에는 오르페우스 신화, 일본의 이자나기 신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공통적으로 ‘죽은 아내를 구하러 지하세계로 간 남편’ ‘빛과 어둠의 대비’ 모티프를 지닌 이야기들이다. 지상과 지하, 빛과 어둠, 화음과 불협화음이 공존하는 일상과 그 속에서 다양한 말들이 오가는 모습을 그리며 작가는 이렇게 묻는 듯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결국 암흑 같은 존재인데, 과연 서로의 소리를 얼마나 똑바로 듣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