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샤 만화상 수상, NHK 드라마로 방영된 화제작
작가가 직접 겪은 산부인과의 현실을 그리다
1990년대 일본 산부인과의 명과 암을 다룬 이 이야기는 2021년 한국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을 떠나는 생명과 괴로워하는 산모, 매일같이 그들과 마주해야만 하는 간호사들에게 슬픔에 젖어 있을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직업적 소명을 가지고 환자들을 대한다. 유산 직후 슬픔에 잠긴 여성을 병원 앞까지 배웅하는 것. 성폭력 피해를 입은 초등학생이 나중에라도 가해자를 고소할 수 있도록 최대한 꼼꼼히 피해 기록을 남기는 것. 남자친구가 도망간 뒤 홀로 남은 산모에게 대처 방안을 알려주는 것. 이 작품은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투명한’ 존재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내고자 하는 간호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편, ‘엄마’라는 존재는 으레 임신한 순간부터 태어날 아이를 사랑하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생명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엄마들에게, ‘모성’은 과연 당연한 것일까. 사랑받은 기억이 없어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그들이, 자신과 몸을 공유하는 작고 어린 생명에게 온전히 사랑만을 쏟을 수 있을까. 극악무도한 엄마처럼 보이는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선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투명한 요람』은 저자가 고등학교 시절 산부인과에서 직접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진 만화다. ‘인공임신중절(낙태)’ ‘유산’ ‘친족 성폭력’ ‘아동학대’ ‘영아 유기’까지. 이 작품에서 다루는 소재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들에게 주어진 슬픔과 절망이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암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보이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자 한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이 작품은 많은 이들의 공감과 찬사를 받으며 제42회 고단샤 만화상 소녀부문을 수상했고, 2018년에는 NHK TV 드라마로 제작 및 방영되기도 했다.
◉본문 중에서
“빛나는 생명과 투명한 생명—그 둘의 무게는 같다고 생각한다.”_28쪽
“자기가 그리던 꿈이 산산조각나도 멍하니 있을 시간은 없다. 남자는 도망칠 수 있지만 여자는 그걸 온전히 짊어져야만 한다. 설령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해도…결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_87쪽
“성학대를 당한 아이는 한없이 자기 자신을 탓하곤 한다.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거다’라고. 아무 지식이 없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방법도 모른 채 괴로워한다. 그것을 이상하다고 눈치챌 수 있는 것은 어른뿐이다.”_127쪽
“엄마에게 사랑받은 기억이 없는 딸은, 자기 아이에게 어떻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나도 엄마처럼 아이를 괴롭히는 게 아닐까? 내가 언제나 두려워하는 것이다.”_166쪽
“엄마를 용서하진 못하겠어…하지만 완전히 미워지지도 않아. 엄마가 되면…그 사람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까?”_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