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들이 영국 의회를 장악했다?!
카프카의 『변신』 모티프로 그린 이언 매큐언의 신랄한 풍자극
그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짐 샘스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바퀴벌레』는 자기 잇속을 챙기기에 급급한 정치꾼들로 들끓는 정치판을 비꼬는, 어느 사회에나 적용이 가능한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첫 문장은 카프카의 『변신』을 강하게 환기하지만, 『변신』에서는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반면 『바퀴벌레』에서는 바퀴벌레가 사람, 그중에서도 영국의 총리로 변신한다. 지난밤까지 바퀴벌레였던 짐 샘스는 곤충으로서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뒤집힌, 똑바로 누운 자세로 잠에서 깨어나 아연실색한다. 다리가 네 개뿐이고 잘 움직여지지도 않으며, 소름끼치게도 살이 골격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바퀴벌레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의 몸이 독자에게도 흉측하게 느껴지게 하는 매큐언의 ‘낯설게 하기’ 기법은 대가의 솜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잠시 당혹감에 빠져 있던 짐 샘스는 자신이 종족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임무를 수행중임을 기억해내고 새로운 몸에 익숙해지려고 애쓴다. 곧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각료회의에 참석한 샘스는 놀라운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회의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정무장관, 내무장관, 법무장관, 원내대표, 통상부장관, 교통부장관 등이 그와 같은 존재, 바퀴벌레라는 것이었다! 외무장관 베네딕트만이 예외였다. 베네딕트의 몸에 들어갈 예정이던 바퀴벌레가 국회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까닭이었다. 인간의 몸을 훔쳐 영국 수뇌부를 장악한 최정예 바퀴벌레 군단의 신념은 단 하나다. 바로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 그것이 바퀴벌레가 번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이제 바퀴벌레들은 장대한 사명을 실현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다. 일단 계획에 걸림돌이 되는 저 외무장관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이 작품은 『변신』과 더불어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도 닮았다. 스위프트의 평행우주처럼 느껴지는 『바퀴벌레』의 세상에서는 정치가들의 바보짓이 사소한 불합리로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어리석음으로 확대된다. 샘스는 미국 대통령 아치 터퍼를 보고 트위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터퍼도 혹시 자신과 같은 종족이 아닌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들은 영국 사회를 영영 바꾸어버릴 ‘역방향주의’ 정책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데 성공한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내세우나 실상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매큐언의 신랄한 풍자를 통해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바로 바퀴벌레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첫 문장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환기하지만, 실상 이 작품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더 닮았다. 스위프트가 창조한 평행우주처럼 느껴지는 『바퀴벌레』의 세상에서는 정치가와 지식인들의 바보짓이 사소한 불합리로 축소되기보다 거대한 어리석음으로 확대된다. 멋진 문체와 유머러스하면서도 위풍당당한 스타일. 옵서버
가장 까다로운 독자까지 만족시킬, 매우 재미있는 작품. 신선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이 소설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장르를 확장시킨다. 런던 매거진
암울하면서도 흥미를 끄는 효과가 대단한 읽을거리. 검처럼 날카롭고 창처럼 뾰족하게 정곡을 찌른다. 커커스 리뷰
매큐언은 문학적 점묘화의 예술가다. 하나하나의 글자를 통제해 창조해낸 작고 정밀한 걸작이 언어적 기량을 맛보는 기쁨을 안긴다. 아찔한 기교로 예측 불허의, 심지어 기괴해 보이는 스토리라인을 지휘해 독자를 도발한다. 오프라 매거진
▶ 책 속에서
복잡한 첫날 일정이 끝난 후 총리는 관저 꼭대기층의 작은 거처로 물러나 트위터를 익히느라 분주했다. 그는 트위터가 페로몬적 무의식의 원시 형태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치 터퍼의 최근 트윗을 읽자 어쩌면 미국 대통령도 ‘우리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74쪽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믿는 것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하겠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것이 국민들이 원한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나는 구원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110쪽
우리 종의 역사는 최소 삼억 년입니다. 불과 사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이 도시에서 소외집단으로 멸시당했으며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최선의 경우가 무시당하는 것이었고, 최악의 경우엔 혐오에 시달렸지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원칙에 충실했고 우리의 신념은 처음엔 아주 느리게, 하지만 점점 가속도가 붙으며 굳어졌습니다. 122쪽
우리는 번성할 것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보통 사람들이 그동안 속았고 앞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다른 착하고 성실한 보통의 존재인 우리가 더 번성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되리란 사실을 알게 되면 커다란 위안을 받을 것입니다. 전 세계적 행복의 총량은 줄지 않을 테니까요. 정의는 불변하는 것입니다. 123쪽
이제 여러분도 알게 되었겠지만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 사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욕망은 너무도 빈번히 그들의 지성과 충돌합니다. 완전체인 우리와는 달리요. 여러분은 각자 한 사람씩 맡아서 그들이 전력을 다해 포퓰리즘의 수레바퀴를 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으니 여러분은 노고의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