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사료에서부터 현대 미술의 중심에 선 현재까지
한국사진의 역사를 총망라하는 기념비적 역작
한국사진의 아키비스트로, 한국사진을 발굴하고 또 널리 알리는 큐레이터로 활동해온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이자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주석의 『한국사진사』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집필에서 완성까지 30년, 수록 도판 총 300여 점, 원고지 약 3,000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나라의 사진 도입에서부터 현대미술의 중심에 선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진의 역사를 총망라한 역작이다. 오늘날 사진은 문화사적·미술사적 관점에서 다분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그 유통과 소비는 끊이지 않으나, 정작 ‘한국사진’의 역사적 연구와 조망은 《한국사진역사전》(1998)과 최인진의 『한국사진사 1631-1945』(1999)를 끝으로 아직 20여 년 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한국사진사의 지체 현상을 타개하고, 지난 세기를 잇고 다가올 시대를 열고자 사진 연구자 박주석이 반평생을 쏟아부어 『한국사진사』를 완성하였다.
이 책은 한국사진의 역사를 통시적·공시적으로 정리한 최인진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기존 연구의 사각(死角)을 밝히고 박주석만의 사관(史觀/寫觀)으로 새로이 써내려갔다. 한국사진의 미적가치에 관한 연구가 부재하고, 서양 사진과는 다른 한국사진만의 연구 방법론이 합의-정립되지 못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저자는 다양한 사관을 바탕으로 한 종합적 기준으로 사료를 수집하고, 사진이 가지는 미적·역사적·사회적 의미망을 집요하게 추적해 이 한 권에 오롯이 담아냈다. 『한국사진사』는 한국사진의 역사가 곧 한국 근현대사가 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물론, 과거와 현재가 동양과 서양이 미시와 거시가 끊임없이 교통하며 이룩해낸 사진의 다층적 의미를 분석하며 한국사진의 독자적인 존재론으로까지 나아간다.
한국 작가들과 작품들에 관한 연구는 단순한 기술비평이나 인상비평, 미학적 비평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 가치를 품은 역사성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진은 서양에서 발명되었고,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 성과들이 증명하듯이 인간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개인의 차원으로 수렴하고 축소하는 르네상스 이래 일반화된 인간 중심 이데올로기를 완벽하게 실현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카메라와 사진의 원리가 서양과 전혀 다른 가치체계 속에 살고 있었던 우리에게 소개되어 어떻게 이용되어왔고 어떤 문화적 충돌을 일으켰으며 소화되어왔는지를 파악하고 연구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서구 문화의 수용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를 밝히는 첩경이며, 한국사진사의 연구와 정립은 카메라의 원리가 처음 도입되고 연구되기 시작한 실학 시대부터 오늘날 현대인의 삶을 직간접으로 지배하는 우리나라 사진 영상 문화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중요한 길목이다. _「서론」에서(26쪽)
『한국사진사』는 총 12개의 주제를 통시적으로 배열해 한국사진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장마다 부록을 두어 동시대의 흐름이나 주류에서는 비켜나 있으나 한국사진의 미학에 큰 영향을 준 선각자들,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단체와 사건 등을 다루었다. 토픽의 중간중간 도판을 수록함으로써 이해를 돕는 물론 각 도판은 빈티지 프린트(촬영 후 10년 이내 작가가 직접 인화)를 최우선으로, 그다음으로 오리지널 프린트(촬영 후 10년 이상 경과 후 작가가 직접 인화하거나 다른 전문가가 원필름이나 유리 원판으로부터 인화)를, 둘 다 없는 경우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한 복제본을 실어 최대한 당시에 생산되고 유통된 모습으로 독자들께 선보이고자 했다.
한국사진의 역사에서 헌사로
한국사진사 노정을 위한 유일하고도 최선의 선택
제1장 「조선과 사진의 만남」은 1860년대 청나라 북경에서 서양의 신기술인 ‘포토그라피’를 접하고 체험한 이항억의 일화를 『연행일기』와 연행사절단의 사진 사료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사진을 만나고 찍은 사건을 규명한다. 제2장 「‘사진’으로 칭한 포토그라피」에서는 이항억이 포토그라피를 ‘사진’으로 칭한 이유를 분석해본다. 베낀다는 뜻의 사(寫)와 참된 모습이라는 진(眞)의 결합어 ‘사진’을 동양미술의 전신사조 미학과 연결 짓고, 사진이 포토그라피의 번역어가 아니라 고려시대의 이기이원론과 조선 후기 사실주의 정신에서 온 것임을 증명해낸다. 부록 ‘칠실파려안과 조선의 사진이미지 이론 수용’에서는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에 의해 실험되고 연구된 광학 이론의 결실들을 살핀다.
제3장 「사진의 도입과 수용」에서는 일본과 중국을 통해 사진술을 습득해 와 사진의 시대를 열어젖힌 김용원, 지운영, 황철의 활동을 다룬다. 1880년대 초반, 한국인이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을 찍은 진정한 의미의 ‘한국사진’의 개막 시기를 분석하며, 기존의 사진 도입 연구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정확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이 시기, 사진의 도입이 예술적 맥락이 아닌 근대 과학기술의 하나로 도입되었다는 주장을 긍정하더라도 조선 회화의 사실주의적 경향의 연속선상에서 사진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오늘날의 사진의 위상과 위기를 재인하도록 한다. 제4장 「조선을 향한 제국의 시선」은 19세기 말 서구 제국주의 확산과 침탈 현장의 첨병으로 기능하던 사진이 구한말 우리 땅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었는지 정치적‧외교적 맥락에서 고찰한다. 이어 부록에서는 일제 제국주의의 시선으로 광범위하게 수행된 사진을 통한 조선 침략의 과정을 살펴본다.
제5장 「천연당사진관과 사진관의 시대」에서는 황실 사진가이자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이 설립한 천연당사진관과 당대의 한국인 사진관의 활동을 탐색한다. 민중과 사진을 더욱 친밀하게 이은 초상사진의 유행과 더불어 초기 사진관들의 영업 동향을 당시의 신문과 영수증 등을 통해 그려보고, 북촌과 남촌으로 양분된 사진관 문화와 여성 사진사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부록에서는 한국인 사진사의 산실인 YMCA 사진과 설립 과정과 그곳에서 배출한 민충식의 작품을 담았다. 제6장 「신낙균과 사진의 시대」에서는 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사진의 제도적‧미학적 기초를 다진 선구자 신낙균의 삶에 대해 소상히 다루었다. 그는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학 학자로, 사진이 오락과 취미에 그치지 않게끔 체계적인 학술로 정립하는 데 큰 힘을 쏟아부었다. 신낙균이 집필한 『사진학강의』 『채광학대의』 등의 저서와 YMCA 사진과의 교육과정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진 교육의 뿌리가 되었다.
“사진은 이미 포토그라피(寫)를 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진(眞)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진(眞)은 무엇인가?”
제7장 「예술사진의 유행-예술로 진화한 사진」에서는 사진이 하나의 표현 수단이자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잡은 시기의 이른바 ‘예술사진’의 유행과 미학적 양식을 다룬다. 부록에서는 이러한 예술사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 개인전람회를 개최한 정해창의 사진 미학과 작품을 다룬다. 참고로 『한국사진사』의 표지에 사용된 사진은 정해창의 것으로, 입체를 강조하는 서양의 글래머 포트레이트 원리에서 벗어나 평면적인 라이팅을 사용한 독자적이고도 한국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제8장 「해방공간-사진의 새로운 가치 모색」에서는 광복을 맞아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던 시기의 사진가들의 활동을 알아본다. 사진 분야 역시 좌우익의 갈등이 존재했으며 사조로는 ‘사회주의리얼리즘 사진’과 ‘살롱 사진’으로 양분되어 치열한 이념 논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또한 임응식, 성두경의 사진을 통해 해방 직후의 사회상을 이 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제9장 「생활주의리얼리즘 사진의 등장과 전개」는 격변의 시대를 관통해 한국사진의 주류로 자리잡은 ‘생활주의리얼리즘 사진’의 등장과 전개를 다룬다. 이 시기는 사진이 역사의 기록이자 시각예술의 정수로 자리잡는 때이기도 했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인간가족전》이 한국에서도 열리며 생활주의리얼리즘은 한국사진의 주류로 급부상한다. 그러나 생활주의리얼리즘 작가의 자기모순과 공모전용 걸작 사진의 범람, 뜻밖의 획일화라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제10장 「기록사진의 등장과 전개」에서는 앞선 시기의 생활주의리얼리즘 사진의 한계를 벗어나 이를 창조적으로 배반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기록사진’의 성과를 다룬다. 우리나라의 기록사진은 기록학에서 말하는 사진 기록물의 한 범주인 동시에 작가의 감정과 세계관과 서사가 혼융된 독자적인 사진 장르이다. 전몽각의 ‘윤미네 집’ 연작은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적실함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족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한국 기록사진의 전범이다. 부록에서는 당대에는 참다운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독보적인 작품세계와 사진가적 삶을 일구어온 현일영의 인생유전과 작품을 다룬다.
제11장 「기록사진을 이끈 잡지의 시대」는 산업화, 군사정부로 인해 급변하는 한국 사회를 『월간중앙』과 『신동아』와 같은 시사잡지 속에 담아내며 활동을 이어간 사진작가의 활약상을 다룬다. 특히 주명덕의 ‘한국의 이방’과 ‘한국의 가족’ 시리즈는 잡지사진의 형태이지만 형식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상과 교감하며 탄생한 연작으로, 기록사진의 가치를 선구적으로 실현한 작업이다. 제12장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 한국 현대 사진」은 한국 현대 사진을 이끌고 있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배병우, 민병헌의 작업에서부터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불리는 강용석, 이상일, 이갑철 등의 작품에서 보다 진화한 미학의 등장과 전개를 살펴본다. 또한 미술작품으로서 한국사진의 첨단에 위치한 구본창, 이상현, 고명근의 작품을 비평하며 사진이 오늘날 현대 미술의 중심에 서게 된 배경을 알아보고, 매체 환경의 변화가 불러올 사진의 미래를 분석-예측하며 갈무리한다.
한국사진은 21세기의 문턱에 들어서서 지난 세기의 어떤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진이 예술 담론의 중심으로 다뤄지고 실제 전시나 출판의 영역에서도 다른 매체에 비해 압도적인 양으로 등장하는 미술계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고, 1980년대 이후 한국사진의 역량이 대폭 강화된 측면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다. 이런 현상은 분명 한국사진에는 하나의 기회이며 동시에 압박이기도 하다. (…) 예술이란 자아와 자아를 둘러싼 세계에 반응하고 이를 해석하는 인간 행위이다. 즉 자아에 대한 성찰이며, 세계에 대한 발언이다. 적어도 현대 예술의 정의는 그렇다. (…) 디지털을 넘어 AI 시대의 환경 속에 한국사진은 서 있고, 미래의 문화를 주도할 책임이 주어졌다. 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_제12장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 한국 현대 사진」에서(536~537쪽)
■ 작가의 말
척박한 사진 문화의 현장인 한국 땅에서 제대로 된 대접 한번 받지 못하면서도 사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오신 선배 작가와 비평가 그리고 기관 활동가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한국사진의 역사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사진의 역사는 바로 이분들이 만들어온 이야기이고 살아온 흔적에 다름 아니다. 역사의 주인공이신 한국의 사진인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이 책을 바친다.
책에서 거론한 작가들과 단체, 기관들 이외에도 사진을 업으로 삼고 활동했거나 하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있다. 사진관의 주인으로, 기사로, 수정사로 활동한 분도 있고, 광고 분야에서 첨단의 대중 친화적 사진이미지를 만들어온 분도 있고, 사진기자로 사건의 현장에서 뉴스를 생산해온 분들도 있다. 직접 사진을 찍지는 않지만 카메라와 감광유제를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산업 분야에 계신 분도 있고, 사진 전문 잡지와 단행본 출판계에서 활동하는 편집자나 평론가도 있다. 사진 전문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사진의 시장가치와 역사가치를 만들기 위해 일해온 큐레이터 분도 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사진 교육을 통해 미래의 사진가를 양성하는 교육자도 있다. 모두 한국사진사의 주역들이고 식구들이다.
■ 책 속에서
일반적인 미술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 매체의 역사 연구는 작품 자체에 대한 발굴과 분석에서 시작해야 하고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 자체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한국사진사 연구 또한 우선은 과거의 사진 작품을 발굴하고 분석, 정리하며 이를 토대로 작품의 양식과 내용의 시대적 변화 과정을 탐색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대에 쓰인 문헌과 사료의 연구를 통해 작품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런 사진들이 나온 사회·문화적 배경을 살피는 일을 해야 한다. 역사를 구성할 사료의 선택 과정은 그다음이다. _19쪽, 「서론」에서
우리에게는 진(眞)을 사(寫)하는 ‘사진’의 전통과 철학이 있다. 한편 가시적 세계를 그 어떤 방법보다 신속하고 정교하게 복제하는 ‘포토그라피’라는 기술 친화적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사진은 근대화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상호의존적인 양자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과제를 안고 있다. 포토그라피는 사(寫)다. 사진은 이미 포토그라피를 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진眞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진(眞)은 무엇인가? _71쪽, 제2장 「'사진'으로 칭한 포토그라피」에서
비록 사진이 예술적 맥락이 아닌 근대 과학기술의 하나로 도입되었다는 주장을 긍정한다고 할지라도 사진은 한국 미술 역사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근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근대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매체였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17~18세기 조선 회화의 사실주의적 경향의 연속선상에서 사진은 받아들여졌고, 그런 의미에서 사진의 도입과 수용은 근대성(modernity)의 핵심인 ‘사실성(reality)’의 개념을 한국 사회에 정착시킨 과정의 하나였다._101쪽, 제3장 「사진의 도입과 수용」에서
‘기록사진’은 기록학적 의미(증거, 정보 가치)와 예술사적 의미(미학적, 사진사적) 그리고 사회사적 의미(사회에서 설득과 소통)를 포괄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동시대의 흐름을 직시하고, 시대를 표상하는 대상을 발굴하며, 여기에 개인의 비평적 세계관을 담아내고 미학 및 형식적 완성도를 높일 때 사회적, 역사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 나아가 인류 사회의 더 나은 변화를 끌어내는 의제 설정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기록사진은 문화사적 의미를 획득한다. _409쪽, 제10장 「기록사진의 등장과 전개」에서
새로운 사진 형식의 등장은 외부 형식의 차용에서 가능한 것이거나 지나친 형식주의의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대상과 사진가의 인식이 관객에게 시각적인 감동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_465쪽, 제11장 「기록사진을 이끈 잡지의 시대」에서
미술의 역사가 알려주듯 사진의 등장은 결코 우연한 과학적 발명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자기표현의 방식이며, 미술이라는 거대한 맥락에서 하나의 표현 양식으로 나타난 도구적 가치인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체계였다. 다시 말해 사진은 객관적이고 고정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하며, 실재를 그대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착색되고 역사적으로 각인되고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이미지인 셈이다. _520쪽, 제12장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 한국 현대 사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