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트에 가보고 싶다. 특별한 곳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세상에 서툴고, 사랑에 실패하고, 뜻하지 않게 미움을 받고, 철길 위에서 외로운 유년을 걷는 사람들이. 하지만 그런 때에도 곁에 누군가 머물고 있음을 깨닫는 사람들이 산다. 그들의 시간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른다. 켄트 하루프 소설에서 삶은 불행 속에 마모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닿으면서 담담히 연마되어 빛난다. 삶이 그대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이야기는 놀랍도록 삶과 닮아 있다. 켄트 하루프만큼 이 진실을 잘 보여주는 작가는 없다.” 편혜영(소설가)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작가 켄트 하루프. 『축복』과 『밤에 우리 영혼은』으로 한국 독자에게도 커다란 사랑을 받아온 그의 대표작 『플레인송』을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번역과 장정으로 선보인다. 1999년 출간된 이 작품은 삼십여 년간 단 여섯 편의 소설만을 발표한 켄트 하루프의 세번째 소설로, 이후 출간된 『이븐타이드』 『축복』과 함께 ‘3부작’으로 불리며 동시대 미국을 그린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출간 당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며 평단과 독자의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이후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하게 사랑을 받으며 미국에서만 백만 부 이상 판매되고 TV영화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켄트 하루프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가상의 마을 홀트를 배경으로 하며, 상실을 겪고 결핍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낼 힘을 얻는 과정을 소박하지만 우아함이 깃든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철길 위에서 외로운 유년을 걷고
인생의 기나긴 저녁나절을 보내는 이들의 삶
그 속에서 줄곧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빛
콜로라도주의 작은 마을 홀트.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이곳에 각자의 상실과 외로움을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고등학교 교사인 거스리는 아내가 우울증에 시달리며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아, 혼자 두 아들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헤쳐나간다. 열 살과 아홉 살인 두 아들 아이크와 보비는 침대에만 머물던 엄마가 결국 집을 떠난 후 엄마 없는 일상을 견디는 법을 배워간다. 형제는 매일 아침 신문 배달을 하다가 혼자 사는 노부인 스턴스와 알고 지내게 되고, 나중에는 부인의 집 열쇠를 받고 함께 쿠키를 만들 정도로 친분을 쌓는다.
고등학생인 빅토리아는 지난여름 댄스파티에서 만난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아이 아빠와는 이제 연락조차 되지 않고, 연락이 된다 해도 그가 아이를 받아들일지 확신할 수 없다. 빅토리아의 엄마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딸을 집에서 쫓아내고, 빅토리아는 학교 교사인 매기 존스의 집을 찾아간다. 매기는 일단 빅토리아를 집에 머물게 하지만,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가 빅토리아를 침입자로 오인해 때리는 일이 발생한다. 매기는 더이상 빅토리아를 집에 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녀를 맥퍼런 형제에게 부탁한다.
맥퍼런 형제는 홀트에서 17마일 떨어진 농장에 사는 노인들로, 한 번도 결혼을 하거나 가정을 꾸려본 적 없이 단둘이서만 지금껏 살아왔다. 소를 키우거나 농장일을 하는 데는 전문가지만 인간관계에는 서툴고 여자(게다가 임신한 십대 소녀)와는 어떤 종류든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 빅토리아에게 지낼 곳이 필요하다는 매기 존스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은 고민 끝에 빅토리아와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그 어떤 판단 없이 담담하게 펼쳐지는,
그저 타자가 아닌 이들의 삶의 모습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후 서로를 제외한 타인과 평생 함께 살아본 적 없는 맥퍼런 형제는 자신들에 대해 냉정하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까다롭고 무식하고 외롭고 독립적으로” 살아왔고 모든 일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하는 데 익숙한 “늙고 기운 빠진 노총각들”. 그러나 그 나이에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두 사람은 빅토리아를 받아들인다. 이들이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는 소설에서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어쩌면 맥퍼런 형제 자신들조차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지만―그럼에도 이야기는 작위적이라는 느낌 없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리고 <뉴욕 타임스>는 바로 이 점을 『플레인송』이 굉장한 작품인 이유로 꼽는다. 왜 그러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삶에 변화를 주려는 맥퍼런 형제의 분명한 의도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면서, 만약 홀트라는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곳에서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일이 돌아가겠구나, 하고 납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납득의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보여주는 삶의 다양성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함으로써 지금 읽고 있는 것이 그저 타자의 삶만이 아님을 깨닫게 만드는 켄트 하루프의 탁월함 덕분에 가능할 것이다. 켄트 하루프는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에 대해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선과 악을 갈라 어느 한쪽 편에 서지도 않고, 어설프게 비판하거나 훈계하는 일도 없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인데도 함부로 개입하거나 지나치게 속속들이 파고들지 않고 그저 그 삶의 모습들을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상실에 적응하고 죽음을 마주하며 성장해나가는 어린아이부터 인생의 저녁나절을 외로이 보내는 노인까지 각기 다른 평범한 불행을 품고 살아가던 인물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교차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켄트 하루프는 이들이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느낌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과잉된 감정이나 과장 없이, 그러나 애정이 깃든 시선으로 써내려간다.
켄트 하루프가 탄생시킨 홀트라는 작은 우주
소설의 제목인 ‘플레인송’은 꾸밈없고 단순한 선율과 곡조를 특징으로 하는 단선율의 성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제목처럼, 이 작품에서 작가는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화려한 수사나 특별한 기교를 전혀 부리지 않는다. 이야기는 구불구불 흘러가는 잔잔한 강처럼 수면에 파문이 이는 일 없이 느릿느릿 진행되고, 빅토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초가을부터 이듬해 늦봄까지 계절과 함께 변화하는 홀트의 모습은 묵묵하게 배경이 되어준다.
소설을 읽다보면 켄트 하루프가 탄생시킨 홀트라는 작은 우주가 마치 어딘가에 정말로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온통 평평한 모랫빛 땅이 펼쳐지고, 외따로 떨어진 농장에서는 암소들이 갓 태어난 송아지를 데리고 풀을 뜯고, 시내로 들어가 철로를 가로지르면 집집마다 포치에 달린 등이 거리 위로 평평하고 푸른 빛 웅덩이를 만드는 곳. 그 속에서 저마다의 상처를 견디며 일상을 살아내는 인물들은 외로움의 끝에서 곁에 있는 서로를 찾아낸다. 불행 속에 그저 닳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맞닿으면서 더 단단해지는 그들의 삶은 소설이 끝난 뒤에도 독자의 마음에 남아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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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트에 가보고 싶다. 특별한 곳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세상에 서툴고, 사랑에 실패하고, 뜻하지 않게 미움을 받고, 철길 위에서 외로운 유년을 걷는 사람들이. 하지만 그런 때에도 곁에 누군가 머물고 있음을 깨닫는 사람들이 산다. 그들의 시간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른다. 켄트 하루프 소설에서 삶은 불행 속에 마모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닿으면서 담담히 연마되어 빛난다. 삶이 그대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이야기는 놀랍도록 삶과 닮아 있다. 켄트 하루프만큼 이 진실을 잘 보여주는 작가는 없다. 편혜영(소설가)
일상적 형태의 사랑―계속되는 좌절, 충실함에 드는 장기적인 노력, 매일의 애정이 주는 편안함―을 탐구하는 용기와 성취로는 내가 아는 그 어떤 동시대 소설도 하루프의 작품을 능가할 수 없다. 어슐러 K. 르 귄(소설가)
임신한 고등학생, 외로운 교사, 엄마에게 버림받은 형제, 농장에 사는 무뚝뚝한 노인 둘. 켄트 하루프는 이들의 삶을 하나로 엮어냄으로써 야심적이나 절대 그런 면을 드러내지는 않는 방식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보여준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지혜와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책 속의 목소리는 마치 합창곡을 부르듯 독자를 황홀하게 감싸안으며 붕 떠오르게 만들고, 내러티브는 점점 견고해지며 감정을 쌓아간다.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 선정 이유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 이 책의 인물들은 앞이 보이지 않아 더듬거릴지언정 공동체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감으로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실수를 만회하며 외로움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그들의 삶을 기리는 송가 같은 작품. 워싱턴 포스트
너무나도 견고하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 작품은 독자의 마음을 고양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켄트 하루프는 뛰어난 이야기꾼의 기질을 십분 발휘해 공동체 전체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독자는 작가가 펼쳐 보이는 드라마에 완전히 몰두하게 된다. 뉴욕 타임스
포나 체호프의 단편처럼 하나의 흠결도 없이 완벽하게 통일성 있는 작품. 시카고 트리뷴
소설가가 세상 하나를 창조한다면 켄트 하루프는 굉장한 선량함이 깃든 장소를 만들어냈다. 월 스트리트 저널
하루프는 지독히 무심하게 일상에 끼어드는 잔혹함을 예리한 시선으로 잡아내며, 친절함은 궁극적으로 보상받는다는 것을 믿는다. 바로 이런 낙관주의와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기교 덕에 작가는 등장인물의 사생활을 파고들지 않으면서도 속마음을 꿰뚫어본다. 살롱
켄트 하루프의 문장들은 콜로라도의 어느 공동체 안에서 한데 얽힌 삶을 통해 두고두고 잊지 못할 곡조를 읊조린다.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에 관한 소박한 이야기. 타임스
슬픔과 사별, 외로움, 분노뿐 아니라 자상함과 선의, 사랑, 그리고 낯설게 구성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 퍼블리셔스 위클리
이 조용한 소설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요동친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의 울림처럼 깊이 있는 목소리를 지닌 작품.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여백이 있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이다. 소설이 이야기하는 세계만큼이나 스타일이 자연스럽고 젠체하지 않는다. NPR
『플레인송』은 하나의 계시 그 자체다. 올해, 어쩌면 내년까지도 이보다 나은 작품을 읽게 될 것 같지 않다. 리처드 루소(소설가)
▶ 본문에서
매기 존스는 잠시 빅토리아를 살펴보았다. 지치고 슬픈 얼굴에 모포로 어깨를 감싼 채 앉아 있는 빅토리아는 흡사 열차 사고나 대홍수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처럼 보였다. 휩쓸고 지나가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망가뜨리는, 여전히 진행중인 재난에서 겨우 살아남은 슬픈 사람처럼. 57쪽
아이들은 노파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녀가 무슨 말인가 더 하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런 삶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아이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노파는 더이상 그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72쪽
빅토리아는 소리 내지 않고 조금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자 머리카락이 얼굴로 흘러내렸다. 늙은 의사가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두 손 안에 잠시 따뜻하게 쥐고 있었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 같은 차분한 표정으로 빅토리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녀와 함께 침묵을 나누었다. 존중과 친절, 그리고 오랫동안 진찰실에서 환자를 대해온 경험에서 나온 배려를 모두 동원해서. 120~121쪽
앞으로 몇 달 동안 그애에게는 자기 집처럼 살 집이 필요해요. 그리고 두 분도.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두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늙고 외로운 두 무법자에게도 누군가 필요하고요. 늙어빠진 붉은 암소 말고 챙기고 걱정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요. 이곳은 너무 쓸쓸해요. 지금 두 분의 모습 좀 보세요. 두 분은 평생 별다른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실지도 몰라요. 어쨌든 좋은 의미에서의 그런 어려움 말이에요. 이건 두 분에게 좋은 기회예요. 168~169쪽
내가 하려는 말은 말이야. 젠장, 우리 꼴을 좀 보라는 거야. 외로운 두 늙은이를 말이야. 가장 가까운 도시라고 해봤자 그나마 별 볼 일도 없지만, 어쨌든 그 도시에서도 17마일이나 떨어진 여기 이 시골에서 살고 있는 늙고 기운 빠진 노총각들을 말이야. 우리 생각을 좀 해봐. 우리는 까다롭고 무식하고 외롭고 독립적으로 살아왔잖아. 모든 걸 우리 방식으로 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 그런데 지금 이 나이에 어떻게 달라질 수 있겠어?
레이먼드가 대답했다. 확신은 없어. 하지만 난 달라질 거야. 난 그걸 알아. 172쪽
당신도 상처가 있나요?
상처는 내 안에 있어요.
그래요?
물론이죠.
당신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은데.
일부러 씩씩하게 행동하려고 하는 거예요. 상처 입은 걸 드러내서 좋을 게 없잖아요, 안 그래요? 288쪽
당신은 삶에 겁을 먹거나 삶에 진 적이 없는 사람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 자신을 잃지 않죠. 3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