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들어가는 어머니의 몸뚱어리를 견디자면 오르가슴이 필요했다
어머니의 모습을 지우자면 죽도록 섹스해야 했다
카사노바 호텔과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이 어렴풋이 겹쳐졌다……
표제작 「카사노바 호텔」은 에르노가 평생에 걸쳐 천착한 주제인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다루는 수작으로, 『단순한 열정』 『집착』 『탐닉』과 궤를 함께한다. 작품은 에르노가 1980년대의 영수증 더미에서 P의 편지를 발견하며 시작된다. P가 에르노에게 남긴 유일한 물건인 정액으로 얼룩진 편지는 에르노의 어머니가 중증 정신질환에 걸려 입원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하루아침에 용변도 가리지 못하는 노인이 되어버린 어머니를 지켜보다가 에르노는 충격으로 멍한 상태에 빠진다.
그러다 마침 업무상 만난 P와 오페라대로 근처의 ‘카사노바 호텔’로 향한다. 아픈 어머니를 문병하러 가서 앞뒤가 맞지 않는 헛소리를 하는 모습을 울면서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어떻게든 현실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녀를 불러주는 호텔, 기껏해야 러브호텔, 그가 창녀들과 이미 들렀으리라 의심되는 장소”—그곳이 카사노바 호텔이었다.
어머니의 병이 나날이 심해지던 그해 봄, 에르노는 P와 카사노바 호텔에서 대실한 한 시간 동안 탐욕스럽게, 미친듯이 섹스했다. 빠르게 쇠퇴해가는 어머니의 몸, 배설물로 더러워진 속옷의 기억을 견디고 홀로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어머니의 고독을 잠깐이라도 잊어버리려면 “죽도록 섹스하기”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후로도 P와 여러 번 만났지만 언제 어떻게 그 만남이 끝났는지 에르노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한 거부감이 사그라졌고, 어머니의 쪼그라든 몸을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페라역 승강장 맞은편에 서 있는 P를 알아본다. 머리가 하얗게 센 모습이었다. 에르노는 그를 통해 “육체적 사랑의 가없음과 불가해함을, 그 연민의 층위를 느꼈다”고 쓴다. “몸짓 하나하나에, 그리고 포옹 하나하나에, 결코 서로 만날 일 없을 남자와 여자를 결합시키는 비가시적 물질처럼 그와 카사노바 호텔에는 뭔가가 있었다.” (17쪽)
1999년 발표작 「금세기 저편에서」에서 에르노는 20세기가 완결되며 많은 이들이 공유하던 이미지와 정서, 인물과 사건이 잊히게 될 것이라고 썼다. 세기말, 자신의 시대가 역사와 연표로 정리되고 다른 세기의 산물로 압축되는 장면을 보며 비애감을 느꼈을 터다. 그러나 21세기에도, 많은 것을 망각 속으로 빨아들이는 시간의 힘 앞에서도 에르노의 작품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카사노바 호텔』은 에르노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작품세계의 궤적을 훑어볼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가 될 것이다. 또한 에르노의 오랜 팬에게도 엄선한 정수만을 뽑아 실은 이 작품집이 커다란 선물이 되리라 기대한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영혼을 잃은 채 사랑으로 망명하는 경험은 황무지에 버려진 어머니의 몸에 다시 합류하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에르노는 무덤 사이에서 서로를 애무하는 음란한 봄의 기억을 슬픔에 방점을 찍지 않은 채 담담하게 묘사해낸다. 르몽드
매우 성적인 모험에 대한 이야기인 「카사노바 호텔」부터 피에르 부르디외에 대한 아름다운 찬사인 「슬픔」까지, 에르노의 외로움이 아름답고도 충격적인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메디아파르
아니 에르노는 기억, 꿈, 사실, 묵상을 혼합하여 우리가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시대를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호명해낸다. 존 밴빌(소설가)
아니 에르노는 가차없다. 이 말은 칭찬이다. 에르노는 자기 삶의 디테일을 날카롭게 후벼낼 뿐만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위태로운 질문 역시 던지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인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강력하고 파괴적이며, 섬세하면서도 폭발적이다. 에두아르 루이(소설가)
에르노는 자기 삶을 역사로, 자기 개인의 기억을 한 세대의 집단기억으로 승화시킨다.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 책 속에서
한 시간—P가 지불한 대실 시간—만 머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우리의 몸짓과 포옹에는 탐욕스러움이 묻어났다. 내부의 모든 것이 매춘을, 가격이 매겨진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런 섹스를 의미했기에 그 장소는 그 자체로 과도한 언행, 가장 외설적인—나중에 퍼뜩퍼뜩 되살아나는—말, 매춘의 시뮬라크르를 부추겼다. 13쪽
나는 P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다. 그저, 그 무엇도 그와 정사를 치르기 위해 카사노바 호텔로 쫓아가는 나를 막지 못했으리라. 그도, “당신이 사랑하는 건 내 좆이지, 그저 그뿐이야”라고 말하면서 그 어떤 환상도 거부했다. 어떤 남자의, 오로지 그만의 성기를 갈망한다는 건 이미 대단한 일이 아닌가? 15쪽
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려고 열 살 때의 이 일화를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그저 하나의 이야기 그 이상은 결코 아니다. 29~30쪽
글쓰기의 실천과 세상의 불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나는 그걸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고, 문학이 방식은 달라도 정치 행위와 마찬가지로 사회 변화를 촉발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4쪽
독자가 모르고 있던 현실에 눈뜨게 하거나 늘 같은 각도에서 바라보던 것을 다르게 보도록 이끌 수 있다. 독자가 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하게(우선은 스스로에게 하게) 해줄 수 있다. 문학은 초기 단계, 그러니까 내밀한 독서의 단계에서는 느리게 말없이 진행되는 혁명이다. 54~55쪽
작가가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존재하는 사람들,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쓸 때, 이야기의 종결은 없다. 더 정확히는, 대상과의 사이에 다른 아무것도 없이, 글쓰기로만 관계가 지속된다면 종결은 있을 수 없다. 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