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학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다’라는 생각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소설을 통해 어떤 해답이나 교훈을 주려 하지 말자, 다만 독자들이 스스로 어떤 질문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우리의 다짐과 바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문학동네 청소년 테마 소설 시리즈는 이렇게 끝을 맺지만 열 권에 실린 70편의 단편소설은 여러 청소년 독자들을 통해 끝없이 이어지고 넓어지리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_엮은이의 말에서
‘청소년 테마 소설’ 시리즈의 완간을 알리는 두 권의 책
『외로움의 습도』와 『희망의 질감』
하나의 테마로 7인의 작가들이 쓴 단편을 엮는 문학동네 ‘청소년 테마 소설’ 시리즈의 마지막 두 권, 『외로움의 습도』 『희망의 질감』이 출간되었다. 2014년에 시작되어 8년 만에, 총 열 권의 완간이다. 우리 청소년문학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 온 대표 작가들부터 청소년문학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신예 작가들까지, 그간 이 시리즈에 함께한 작가들은 41인에 이른다. 청소년문학의 최전방에 선 작가들이 감지한 지금 청소년들의 움직임, 지금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응원을 담아 온 것이다. 이 시리즈에 많은 독자들이 점진적이고도 꾸준한 지지를 보내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진로나 관계 등 십 대들의 현실적인 고민거리를 각 권의 테마로 삼으면서도 “문학이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모토하에 그 어떤 정답이나 교훈을 제시하지 않겠다는 시리즈의 방향성에 있다. 이번에도 작가들은 청소년의 삶을 맴도는 질문의 면면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한편, 독자의 마음속 질문이 또 다른 질문으로 확장되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네 편의 단편소설을 건넨다. 관계, 미래, 콤플렉스, 정체성, 중독, 사랑, 불안, 통과의례의 뒤를 잇는 마지막 테마는 ‘외로움’과 ‘희망’이다.
“해 볼 만하잖아.”
청소년 테마 소설 시리즈의 열 번째 테마, ‘희망’
『희망의 질감』에는 김보영, 김진나, 문이소, 윤성희, 은소홀, 이금이, 진형민 작가가 ‘희망’을 열쇳말 삼아 쓴 단편소설 일곱 편이 실렸다. 모두 열 권에 이르는 청소년 테마 소설을 끌어안는 마지막 주제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희망이다. 우리 삶에 늘 필요한 것이지만 당장 지금의 현실이 버거운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지 모른다. 자기 긍정은 낯간지럽기만 하고, “어차피 망했어.” 하며 자조하는 포즈가 더 익숙한 청소년 인물들의 현실 속에서 7인의 작가들은 작고 미세한 떨림을 건져 올린다. 사실은 잘해 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인정하기까지 꽤 먼 길을 돌 수도 있지만,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 보기로 결심한 순간의 떨림을 통해 희망은 비로소 고유한 질감으로 발견된다. 이처럼 인물들의 분투 속에서 찾아낸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역동을 품고 있다. 쉽지 않을 것이다. 뜻대로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번 “해 볼 만하잖아.” 하는 마음으로 발을 내딛어 보는 일. 알 수 없는 미래를 앞에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선 청소년들에게 다채로운 질감의 지지를 보내는 책이다.
“진정한 희망의 언어는 수수께끼의 형태를 띱니다. 좋은 소설이 우리에게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 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쉬운 길은 무엇이며 돌아가는 길은 또 무엇인가? 더 나아가 과연 ‘내 길’은 무엇인가? 하고요. 우리의 삶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_유영진(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해 청소년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나름대로 성장하고 좌절하고, 또 실패를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낙담하지 않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도 같은 시기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옳은 선택을 하려는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은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_선일여자중학교 교사 김나래
“희망의 질감은 어떨까요?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만남과 나눔, 도전과 성취, 갈등과 해결, 슬픔과 극복 등을 겪으며 희망을 떠올립니다. 그럴 때마다 독자도 희망의 여러 측면을 한 번씩 만나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질감을 문자화하기는 어렵지요. 아마 희망은, 설명하고 정의하기보다는 체험하고 느껴야 하는 것인가 봐요. 이 책을 읽은 청소년 독자들도 자신의 삶에서 아름다운 희망을 감각해 보기 바랍니다.”
_광성중학교 교사 편동훈
[수록 작품 소개]
윤성희 「느리게 가는 마음」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면 몸살을 크게 앓는 나.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기운을 차린 나는 이모와 ‘느리게 가는 우체통’을 찾으러 떠난다. 이모가 1년 전에 저지른 짓을 수습해야 한다나. 마침내 도착한 그곳의 풍경, 사람, 장면 하나하나를 눈에 담는다. 여름이 오면, 오늘의 마음이 내게 도착할 것이다.
진형민 「멍키스패너」
엄마 없는 일주일, 주머니도 두둑하다. 동생만 아니면 제대로 팔자 늘어지는 건데, 벌써부터 화장실에서 나를 찾는 동생의 목소리에 불길함이 엄습한다. “언니, 물이 안 내려가.” 이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 동생이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그래, 한번 해 보지, 뭐.
김보영 「치마와 마나」
내 시야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마나' 상태 창. 마나가 떨어지는 건 곧 멘탈이 안 좋아진다는 것. 치마만 입으면 마나가 속절없이 떨어져서 체육복 바지를 입은 건데, 생활부장 쌤은 골렘처럼 잔뜩 화가 나 있다. 각자의 이유로 치마를 입지 않은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말라붙었던 마나가 반짝이며 치솟는다.
이금이 「편집」
서빈의 브이로그를 편집해 주는 게 내 일이다. 취미처럼 시작했지만 점점 욕심이 난다. 학교에서는 알지 못했던 서빈의 모습을 원본 동영상에서 잘라 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그동안 내가 잘라 낸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지워 버리면 없던 일이 될까. 문득 친구라고 생각한 적 없던 아이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아니, 무사한 건지 걱정된다.
문이소 「유영의 촉감」
선대에게 물려받은 기억을 후대에 계승해야만 하는 아드 롱센의 법칙에 따라 ‘유영의 촉감’을 찾아야 한다. 여덟 개의 은하를 뒤진 끝에 나는 자그마한 오지 행성에서 성장 중인 인간 암컷 '유영'을 마주하는 데 성공한다. 눈앞에 보이는 유영이 내가 찾는 그 유영일까? 날 보는 유영의 눈이 반짝인다.
은소홀 「원동기 면허 취득기」
수능을 망친 나의 마지막 희망은 충원 합격이다. 쿨한 척 친구들의 합격을 축하해 주는 것에 지쳐 갈 즈음, 할머니의 원동기 면허 취득을 도우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떠밀리듯 제주로 오긴 했는데, 할머니가 같이 면허를 따자고 제안한다. 몸 안에 깊숙이 박힌 실패의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다. 어차피 망했어. 그래, 망한 건데……
김진나 「체험」
누나의 죽음 이후 ‘체념 증후군’을 진단받은 김삽이 긴 꿈을 꾸고 있다. 꿈에서 김삽은 가상 인플루언서 '페페부루'로 존재한다. 모두가 페페부루인 김삽을 좋아하고 동경한다. 페페부루는 보이는 만큼만 존재하고 보지 않는 순간에는 사라진다. 어쩌면, 누나의 죽음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