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병철은 송재학 시인을 “빛의 시인”이라 호명한 바 있다. “감각이야말로 사물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이라 말해왔던 송재학은 일찍이 검은색을 죽음의 색에서 모든 색의 혼합이자 포용의 상징으로 끌어올리는 시적 실험을 선보였으며, 묘사의 여백이자 무채색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허공에까지 색채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왔다. 그간 흰색과 분홍색을 거쳐 검은색으로 대표되었던 시인의 색채는 이번 시집에서 더욱 무한한 영역으로 뻗어나간다. 그의 시선에서 새로이 조색된 세계는 천 개의 다양한 색으로 분화하고, 시인은 여명의 시간부터 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드는 순간까지의 장려한 색의 향연을 직관적이고 단단한 시어로 펼쳐낸다.
아침을 담는 항아리는
천 개의 색을 모으는 중이다
무채색 주둥이까지 포함하니까
구부리고 번지는 밀물까지 돌과 함께 물렁해져서
어딘가 스며들어야 하는 해안선이 되었다
_「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에서
숨쉴 때마다 꾸역꾸역 붉어지는 서쪽의 비위가 싫지 않은 것은 이미 내 몸이 비애와 바뀌었기 때문이다 몸속의 모든 것을 피로 뱉어내며 내가 흥건해졌다 나와 섞이기 위해 저렇게 붉어졌다
_「붉은 아가미」에서
시인의 이전 시집 『검은색』(문학과지성사, 2015)에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송재학 시의 시적 화자가 세계의 풍경을 자기 외부의 무언가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 내부의 연속이라 여긴다고 해설했다. 즉 송재학의 시에서 내부와 외부는 나뉘지 않으며, 자아와 세계는 경계 없이 연속된다. 이는 외부 물질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한 자아가 다른 물체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잠재태’로 존재하는 것을 재발견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은 시선으로 볼 때,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황비창천명경’과 같은 옛 예술품과 ‘노을’과 같은 자연물을 시의 언어로 재구성함에 있어 화자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포착함과 더불어 마치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자아 내부에서도 한 쌍의 “데칼코마니”와 같은 미적 발견을 이루어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건 껴묻거리, 죽은 자의 눈물이라 비탄이며 원한까지 산화락 공양으로 함께 묻는 고려의 풍속이다 우리 모두 몇 겹의 윤회인 채 흘러가고 있는 장단이다
_「용수전각문경」에서
“사물과 서사에는 일물다어설(一物多語說)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송재학이 김지율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은 동일한 사물과 서사를 사람마다 각기 다른 언어로 표현하여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즉 기의가 같더라도 기표는 다양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의 말’에서 그가 영감을 받았다고 소개한 이상, 김소운, 제임스 터럴, 르베르디, 페소아의 작품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지만,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거나 이명(異名)을 활용해 다분화된 자아로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송재학이 시로써 행한 시도들과 교차한다. 이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유화─내부5」, 「르베르디를 읽는 르베르디」 등의 시에서 이들과 송재학의 사유들은 시 속에서 갈마들며 하나의 얼굴로 또렷해진다. 미시적으로는 각기 다른 주체가 만들어낸 작품들이 거시적으로는 동일한 시적 주체로 갈무리될 수 있음을 송재학 시는 보여준다.
너무 많은 눈물로 시작하는 부식
모든 얼굴을 기억하는 얼굴
귀와 입이 서로 섞이면서
얼굴은 거울 안에서 앙금이 되었다
훗날 눈물이 번진 것을 알게끔 푸른색이 번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니
너무 많은 녹이 묻어나온다
_「동경」에서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은 이처럼 색채 묘사에의 몰입을 통해 세계를 섬세하고도 직관적으로 조탁하고자 시도함과 동시에 주체와 객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 내면과 우주의 섭리를 탐구하는 시적 자세를 보여준다.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행하는 시인, 송재학의 시가 이후 어떤 단계에 도달하게 될지를 이번 시집은 더욱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