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 수업』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은 홍차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서다. 우리나라에서 ‘홍차=떫다’는 인식이 생긴 이유부터 시작해서 녹차나 우롱차 등과는 어떻게 다르며, 어디서 주로 생산되고, 어떤 종류의 홍차가 있으며, 어떤 나라에서 주로 마시고, 홍차의 장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고 있다. 홍차 하면 유럽, 특히 영국을 떠올리는데, 중국에서 처음 생산된 홍차가 어떻게 영국을 상징하는 문화가 되었는지에 대한 그 역사적 배경과, 근래 새로운 홍차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프랑스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었다.
저자가 홍차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 권 한 권 읽기 시작한 영국, 미국, 프랑스의 홍차 전문가들의 책을 바탕으로 주 생산지인 인도와 스리랑카, 타이완 그리고 홍차 문화를 꽃피운 영국, 오늘날 새로운 홍차 역사를 쓰고 있는 프랑스를 방문해서 나온 결과물이 이 책이다. 여기 실린 대부분의 현장 사진도 저자가 직접 찍은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홍차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라기보다는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려 했으므로 홍차를 체계적으로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홍차의 생산부터 소비까지
찻잎의 어느 부분을 채엽하는가, 언제 채엽하는가, 살청을 하는가, 위조萎凋(시들리기) 과정이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하며 얼마나 길게 하는가, 유념은 어떻게 하는가, 산화 과정은 있는가, 있다면 얼마나 지속하는가 등의 가공법 차이가 녹차, 백차, 황차, 우롱차, 홍차, 흑차 등 다른 모습을 빚어낸다. 홍차 내부에서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홍차 가공법의 차이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살피고 있다. 홍차를 본격적으로 알기 전 가공법에 따른 6대 다류의 차이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산화’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대표적이다. 보통 한국에서는 ‘발효’라는 용어와 뒤섞여 사용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차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산화oxidation 정도에서 결정된다. 즉 비산화차인 녹차를 시작으로 백차, 황차 그리고 부분산화차(혹은 반半 산화차)인 청차 순으로 산화도가 높아져 완전 산화차인 홍차에 이른다. 포도나 포도즙에 미생물이 개입해 화학적 변화를 통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이 발효이며, 산화는 산화효소oxidase가 산소와 접촉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과를 깎아놓았을 때 갈색으로 변하는 것이 바로 산화다. 찻잎에 들어 있는 산화효소가 일정한 작용에 의해 산소에 노출됨으로써 역시 찻잎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을 산화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결과 차가 만들어지고, 산화되는 방법과 정도에 따라 분류가 이뤄진다. 다만 보이차는 예외로, 현재까지는 이 차만 발효 과정을 밟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저자는 책에서 발효 대신 산화를 공식 용어로 쓰고 있다.
그다음은 역사다. 기본적인 역사를 알아야 왜 홍차가 지금 이토록 널리 많은 이들이 즐기는 음료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고, 홍차의 생산지와 브랜드들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왔는지를 알아야 산지별 홍차 즐기기의 기본 마인드맵을 그릴 수 있다. 중국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서양 열강과의 차무역 등으로 이어지는데 무엇보다 영국의 홍차 역사가 그 몸통적 이해를 제공한다. 그 한 대목을 보면 영국 개러웨이스 커피하우스에서 차를 팔기 시작한 이후 30여 년이 지난 1700년경 수입량은 9톤에 머물렀다. 9톤이면 우리가 거리에서 보는 큰 트럭 한 대 분량에 불과하다. 물론 이 무렵 이후 차의 수입량은 그전의 30년 동안보다 상대적으로 증가하긴 했다. 1721년에 공식적인 차 수입량은 453톤이다. 한 잔에 2그램을 소비한다고 가정하고 당시 영국 인구로 나누어보면 전 인구가 1년에 32잔을 마신 것으로 계산된다. 이 개념이 언뜻 와닿지 않겠지만, 당시 영국인들 중 그나마 여유 있는 상위 20퍼센트가 차를 마셨다고 가정하면, 거의 이틀에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70년 뒤인 1790년에는 7300톤으로 증가하고, 위의 기준으로 상위 20퍼센트가 마셨다고 보면 하루에 약 4잔, 그러나 이 기간 음용 인구 자체가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볼 때 인구의 50퍼센트가 마셨다면 하루에 약 1.6잔으로 계산된다.
3장부터는 정말 본격적인 홍차이야기가 펼쳐진다. 홍차를 잘게 부수는 방법으로 티백 생산을 가능하게 해 오늘날 홍차 르네상스를 만든 1등 공신인 CTC 가공법부터 시작해 가향차, 허브차, 티젠, 인퓨전 등 다양한 가공법을 통해 홍차를 소개한다. 특출한 점은 저자가 직접 차 농장과 티팩토리, 해외 유수의 매장을 방문해서 관련자의 설명을 들어가며 과정 하나하나를 살펴봤다는 점에 있다. 아삼, 다르질링, 닐기리, 타이완, 영국, 프랑스 등 저자의 경로를 따라 홍차가 생산되는 모습을 직접 사진과 함께 설명을 듣는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포트넘앤메이슨, 마리아주 프레르, 해러즈, 트와이닝 등 브랜드의 역사와 그들의 홍차 생산의 노하우, 마케팅 기법 등을 엿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초보자라도 홍차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위해 다양한 팁을 제공하고 있다. 홍차의 성분과 몸에서의 작용을 살펴보는 홍차와 건강, 홍차 카페인과 커피 카페인의 차이, 우리는 시간에 따른 카페인의 농도, 암호 같은 홍차 등급 알아보기까지 그야말로 홍차의 모든 지식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현재 홍대입구역 근처 오피스텔에서 ‘문기영홍차아카데미’를 열고 소규모 강연을 하고 있다. 저자가 직접 우린 다양한 종류의 홍차를 즐기면서 홍차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