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데콧 상을 네 차례 수상한 화가 폴 젤린스키와
20세기를 대표하는 러시아의 아동문학가 보리스 지트코프,
두 대가가 시공간을 초월해 함께 완성한 그림책의 정수
『작은 선원들』은 20세기 러시아의 대표 아동문학가 보리스 지트코프의 단편과, 칼데콧상을 네 차례(명예상 포함) 수상하고 예일대학에서 모리스 센닥에게서 사사하며 미국 그림책의 역사를 써온 화가 폴 젤린스키의 일러스트가 만나 탄생한 그림책이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 잠시 할머니 집에 머물던 시기를 회상하는 보리스카(보리스의 애칭)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할머니 집 선반에 놓여 있던, 정말이지 꼭 진짜 같았던 증기선에 완전히 매료된 화자는 증기선 속에 살고 있을 작은 선원들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어떤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 감정의 강렬함과 묘사의 탁월성은 수십 년의 시간과 수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건너 오늘날 한국의 독자들에게 도착한다.
“아하, 내가 몰래 보고 있는 걸 다 아는 모양이었다! 영리한 녀석들이다.”
한 아이의 내면을 폭발할 듯 채우는 감정의 압력
보리스카는 할머니 집 테이블 위 선반에 놓여 있던 증기선 한 척에 완전히 빠져든다. 굴뚝, 돛대, 선실과 운전대까지, 작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그 배는 꼭 진짜 같았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그 배를 가지고 놀아도 되느냐고 할머니에게 물었지만, 언제나 너그러웠던 할머니는 그 순간만큼은 단호하고도 엄격했다. 갖고 노는 건 당연히 안 되고 손을 댈 생각도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는 증기선은 보리스카의 호기심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금기가 소년의 가슴을 점점 세차게 휘젓기 시작한다. 도저히 진짜가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 증기선 안에는 반드시 작은 선원들이 있을 것이다. 낮에는 집 안의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배 안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움직일 것이다. 작은 선원들도 분명히 일을 해야 할 것이고, 어떻게든 무언가 먹어야 할 것이다. 사탕을 쪼개서 선실 앞에 올려둬 보면 어떨까? 선실 문을 겨우 통과할 정도의 크기로 올려놓는다면 다음 날 아침에 사탕이 선실 문에 반쯤 끼어 있는 장면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작은, 진짜하고 똑같은 손도끼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보리스카의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작은 선원들을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그에 따른 계획은 점점 더 대담해진다. 과연 보리스카의 열망은 이루어질까?
세밀한 묘사와 해석의 예술적 쾌감
젊은 시절의 폴 젤린스키를 완전히 사로잡은 이야기
러시아의 아동문학가 보리스 지트코프의 단편 「작은 선원들」은 1934년 처음 발표되었다. 이 이야기가 한 권의 그림책으로 탄생하게 된 데에는 미국에 살던 러시아문학 번역가 젬마 바이더와 그의 딸의 역할이 컸다. 젬마 바이더의 딸은 「작은 선원들」을 너무 좋아해서, 이야기 속의 한 문장을 일상 속 상황을 비유할 때 인용하까지 했다. 이 이야기가 한 권의 그림책이 될 만하다고 생각한 젬마 바이더가 편집자에게 제안했고, 편집자는 당시 신인이었던 화가 폴 젤린스키에게 원고를 보여 준다.
“그때 나는 큰 꿈을 품은 풋내기 화가였습니다. 내 그림들을 본 편집자가 이 원고를 주며 그림을 그려 보라고 했고, 그게 나의 첫 번째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작은 선원들을 상상하고는 진짜로 믿어 버린 어린 보리스카의 열렬한 감정, 지트코프가 너무나 근사하게 또 절절하게 그려낸 보리스카의 흥분감에 내 가슴도 떨리더군요. 내가 어릴 때 했던 상상들이 생생하고 또렷하게 다시 떠올랐습니다.
진짜처럼 정교한 모형에 푹 빠지는 느낌을 잘 표현하려면 사실적이고 극도로 세밀한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리스카의 모델이 되어 줄 러시아 소년을 찾아냈고 위대한 그림책 작가 모리스 센닥이 그림 형제의 동화 『노간주나무The Juniper Tree』를 그릴 때 사용한 기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몇 해 전 예일대학에서 모리스 센닥에게 수업을 들으면서 그 그림의 사라질 듯 가느다란 선을 헌트 세필 펜촉으로 그렸다는 것을 직접 들었거든요. 잉크에 찍어서 쓰는 작은 원통형 펜촉이지요.”_폴 젤린스키
폴 젤린스키가 찾아낸 표현법은 과연 이 이야기의 현실감과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독자에게 전달한다. 극도로 사실적인 묘사, 인물의 심리 변화와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따라 계획된 구도, 강조된 음영과 제한된 색채가 현대의 그림책에서는 보기 드문 미감을 드러내고 있다.
1934년 발표된 작품이 1979년에 한 번, 2022년에 또 한 번
새롭게 발견되고 다시 태어나기까지
2022년 여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는 『작은 선원들』은 지금에 어울리는 모습을 다시금 갖추어 현재의 독자 앞에 선다. 번역가 홍한별의 섬세하고도 적확한 문장들이 이야기의 문학적 특색과 재미를 그대로 전달한다. 화가 폴 젤린스키는 미국에서, 이 책의 출간을 위해 헌신적으로 애써 주었다. 출간을 준비하던 시기는 팬데믹의 한가운데여서 국가 간의 운송이나 교통이 쉽지 않았으나 폴 젤린스키는 원화의 이미지를 최상의 수준으로 재현하기 위한 백방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책의 말미에 실린, 한국어판 출간에 부치는 글에서 바다를 두 번 건너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독자를 만나는 『작은 선원들』의 새 여행을 응원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작은 선원들』이 또 다른 대양을 건너 한국어판으로 출간되며 새 삶을 얻게 되다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 한국의 어린이, 부모, 선생님, 사서 등 모든 분이 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몰두’의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보리스카의 몰두뿐 아니라 글을 쓴 지트코프의 열의, 그리고 저의 것도요.”_폴 젤린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