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마치 달콤한 간식과 같아서, 앞으로 읽어야 할 많은 책들의 맛을 조금 시시해져버리게 했다.
어디서 또 이만큼 신선하면서 재미있는 소설을 찾을 수 있을까? 애니 배로스(소설가,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친애하는 미시즈 버드에게』의 주인공인 에멀라인 레이크는
브리짓 존스 이후로 영국 문학계에 등장한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키머리 마틴(소설가)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국에서만 13만 부 넘게 팔리며 브리티시 북 어워드 올해의 데뷔작 상 최종후보에 선정된 작가 AJ 피어스의 첫 장편소설 『친애하는 미시즈 버드에게』(2018)가 출간되었다. 2012년, 피어스는 우연히 1939년에 발행된 주간 여성잡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여성잡지에는 양의 뇌로 스튜를 끓이는 방법이나 수영복을 직접 떠서 입는 법처럼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전쟁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외로움,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고통과 같은 생생한 삶의 면면이 모두 담겨 있었다.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여성을 위로하는 매체였던 여성잡지에서 영감을 얻은 피어스는 2차대전 때의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구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이 훗날 그의 데뷔작인 『친애하는 미시즈 버드에게』가 되었다. 자신의 삶을 용감하게 개척해나가는 주인공 에멀라인 레이크(에미)가 우연히 여성잡지사에 입사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낸 이 작품은 15개 언어로 번역되며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피어스는 2021년 ‘에미 레이크 시리즈’의 속편인 『당신의 유쾌한 친구로부터Yours Cheerfully』를 발표했다.
친애하는 미시즈 버드에게,
저의 고민을 들어주세요.
때는 1941년 런던. 종군기자를 꿈꾸는 에미는 어느 날 자신이 즐겨 읽던 신문 〈런던 이브닝 크로니클〉에서 론서스턴 신문사의 구인광고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지원한다. 하지만 출근 첫날 에미를 기다리고 있는 일은 〈여성의 벗〉이라는 주간 여성잡지에 도착하는 고민 편지들을 분류하고 타자로 치는 것. 구인광고를 오해해 엉뚱한 일자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위험천만한 전장을 돌아다니며 기사를 쓰는 종군기자의 일과는 백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그런 일을. 설상가상으로 에미의 상사이자 그 고민들을 들어주는 상담 작가인 미시즈 헨리에타 버드는 깐깐하고 냉정하기로 악명이 높다. ‘헨리에타 버드의 고민상담소’에는 미시즈 버드가 엄선한 ‘절대 잡지에 게재하지도, 답장하지도 않을 주제들’의 목록이 있다.
“부부관계, 혼전관계, 혼외관계, 육체적 관계, 성관계 전반(관련된 모든 주제, 간단한, 언급, 제안, 그 결과)……” 63쪽
끝없이 이어지는 목록에 의해 잡지사로 도착하는 편지들을 탈락시켜야 하는 에미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 제각기의 일상적인 고민들을 보내오는 여성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미시즈 버드는 전쟁이 한창인 지금 개인적인 고통을 털어놓는 그들이 나약하다고, 그리고 그들이 보내는 고민거리들이 도덕적이지 않다고 비난하지만 에미에게 편지 속 이야기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또 친구나 동생의 일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결국 에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미시즈 버드의 서명을 달아 독자들의 편지에 몰래 답장을 하기 시작한다.
참혹한 세상에 맞서는 여성들의
다정하고 용감한 연대
〈여성의 벗〉에서의 비밀스러운 일탈이 계속되는 중에도 런던에는 공습이 쏟아진다. 에미는 〈여성의 벗〉에서 퇴근하면 소방대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처참한 소식들을 접한다. 멀쩡하던 거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아이들로 가득찬 집에 직격탄이 떨어져도 남은 이들은 “할 수 있는 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꿋꿋이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언론은 미시즈 버드에게 편지를 보내는 독자 같은 여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 사람들이 언제나 겪어온 문제들이지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지금만은 그저 그들에게 온몸으로 감내하라고 한다.” 101쪽
미시즈 버드로 대변될 수 있을 많은 이들은 후방에서 버티고 있는 여성들에게 더 높은 도덕성과 기개를 기대하면서도 사실상 그들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음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여성 개개인의 절박함은, 또 그들의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주목할 만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친애하는 미시즈 버드에게』와 주인공 에미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이야기들에 집중한다. 어떤 상처나 고통도 결코 사소하지 않기에, 그들의 고민을 듣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그리고 그건 결코 “수많은 문제들의 해결책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상냥한 말 한마디라도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괴로운 건 당연하다고, 당신은 겁쟁이가 아니라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미시즈 버드에게』는 유례없이 참혹했던 시절의 자화상을 생생히 그려내면서도, 그 믿음을 연료로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장 보통의 여성들에게 가장 다정한 응원을, 가장 단순한 진심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