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무렵부터 20세기까지 중국에서는, 큰 발은 게으르고 천한 것이며 작은 발은 탐낼 만한 것으로 여겨져 여성들이 발을 동여맸다. 그중에서도 산시성 북부 지역에서 전족이 성행해 다퉁 인근에서는 매년 8월이면 ‘발 경연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여자들은 그곳 광장에 앉아 치마 아래로 전족한 발을 내밀었고, 사람들은 이를 마음껏 감상한 뒤 나름의 품평을 했다. 이 틈을 타 수작을 부리는 사내들도 있었다.
수백 년간 지속된 전족의 역사는 그러나 1957년을 기점으로 끝장났다. 이후로 전족에 관한 새로운 기록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이따금 개항 도시 톈진의 거리에서 발을 질질 끌고 다니거나 산둥의 시골에서 쟁기를 끌고 있는 전족 여성들이 목격되었다. 그렇다고 전족 신발 공장의 생산 라인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1999년 11월까지 공장은 가동됐고 이달을 끝으로 하얼빈의 공장 ‘즈창志強’은 생산을 중단했다. 공장의 늙은 기술자는 여덟 쌍의 나무 신골로 1991년부터 매년 300켤레 이상의 전족용 신발(금련金蓮 신발)을 만들어오다가 절반 이상이 재고품으로 쌓이면서 손을 멈췄다. 전족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연구자들은 전족에 관한 책과 논문을 수없이 쏟아냈다. 문제는 이들 이야기가 하나같이 단순하고 때론 전족 여성들을 조롱하며, 모두 반反전족의 역사를 기본 입장으로 내세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명청 시대사 연구에서 저명한 학자 도러시 고가 『문화와 폭력: 전족의 은밀한 역사』를 쓴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전족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기존 논의는 모두 여성에 대한 억압, 전횡, 인권 무시의 관점에서만 이를 다뤄 그것이 왜 그렇게 폭넓고 활개를 친 문화적 현상이 됐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획일적 문제틀 속에서 여성은 너무 억압돼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즉 주체성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부각돼버리고 만 것이다.
이에 저자는 전족 담론을 주도해온 민족주의자, 오리엔탈리스트, 페미니스트의 논쟁을 뛰어넘어 고전 시, 필기, 이곡俚曲, 민가, 근대의 신문과 잡지, 정부 문서, 서양인의 보고서 및 회고록까지 섭렵하며 1000년에 걸친 전족의 역사를 폭넓게 파헤쳤다. 특히 고전과 근대 작품들은 겉으로 학술적 모양새를 취하지만, 일부는 내용이 꽤나 외설적이고, 어떤 것은 영락없는 포르노그래피다. 저자의 기본 전제는 이러하다. 전족은 신체에 의지하는 경험이다. 중국 역사 수백 년 동안 특정 집단 여성들에게 이것은 현실이었다. 그러니 중요한 점은 발을 동여매는 행위를 그들의 전통적인 관습으로 만든 강력한 힘을 파악하는 것이며, 특정 시공간 속에서 그 몸들이 어떻게 대상화되고 주체화되었는지도 알아야 한다.
작은 발을 탐한 남자와 작은 발을 성공 수단으로 삼은 여성
저자는 우선 남성의 시각을 통해 전족의 역사를 파고든다. 이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다. 왜냐하면 전족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상당 부분 남성들의 관심과 감정에 의해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전족 감상가들의 향수 어린 비애, 고증학자들의 호기심과 무심한 듯한 어조 속에 도사리고 있는 반감, 가장 우아한 한 쌍의 발을 찾아다니는 모험가들의 탐색 등이 우리 마음속에서 ‘전족한 여자’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런 남성의 감정과 욕망이 아니었다면 여성의 전족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위 의식이 뚜렷한 사회에서 자신의 처지나 신체를 개선하고 이웃보다 뛰어나고 싶어하은 것은 이해되는 욕구다. 즉 남성의 욕망과 여성의 욕망은 교직되어 있다. 남성의 욕망이 투영돼 여성들은 자신의 발을 가꾸려는 충동을 계속 지녔고 이는 15세기에 전족의 유행을 가져왔다. 이에 저자는 남성들이 쓴 글의 행간을 살펴보고 여기 숨어 있는 공백과 침묵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들이 발휘한 권력을 드러낸다.
다른 한편 저자는 매몰된 주인공인 전족 여성들의 목소리도 찾아 들려준다. 특히 근대 반전족 운동 기간에 나이 많은 여성들이 느낀 굴욕감, 향을 바치러 사원에 가는 여성들이 세련되어 보이지 못할까봐 느끼는 초조함 등 전족한 여성들 각자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 행위의 동기와 선택의 갈등, 그들이 겪은 고통과 물심양면의 보상은 시시각각 변화해 여성은 자기 발을 거기에 맞춰가야 했다.
이 책은 인류학적이고도 여성주의적 시각을 취하되, 지나친 단순화와 도덕주의적 어조에는 저항하며, 기존의 진보 사관이나 페미니즘적 입장에도 맞선다. 전족은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될 수 없는 데다, 남성의 욕망이 발휘된 만큼이나 여성 역시 작은 발을 적극적으로 가꾸며 이를 하나의 패션으로 인식하거나 성공의 수단으로도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넓게 아우르는 태도가 이 책을 지배하는 특징이다. 여성을 자세히 살피고, 만지고, 판단하고, 순위를 매기는 남성의 특권과 신체적 자아에 대한 여성의 내면적 느낌, 그리고 그녀들이 어떻게 신발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표현했는지를 구체적인 자료와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전족한 여성들이 느낀 굴욕감, 초조함, 수치심
이 책의 구조는 독특하다. 첫 장의 문을 전족의 시작이 아닌 종말로 열기 때문이다. 전족처럼 보편적이면서도 복잡한 현상이 소멸하려면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족의 유행 이후 1880~1930년대의 전환기에 반전족의 입장과 천족天足(타고난 그대로의 발)을 중시하는 사회 기조가 형성됐지만, 전족 여성들은 하루아침에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방침을 따를 수 없었다. 근대의 계몽 지식인, 민족주의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전족을 억압으로 여겨 하나의 사회적 실천으로서 전족은 끝났다고 선포했지만, 어머니들은 여전히 딸의 발을 묶었다. 전족은 아직 문화적 자부심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고, 전족 띠를 푼 여자들은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즉 이 시기 전족을 둘러싼 이들의 시간은 분열돼 중간에서의 머뭇거림, 유행 사이에서의 갈팡질팡이 이어졌다.
문제는 반전족 입장의 지식인들이 전족 여성을 일방적으로 응시하며 대상화해 수치스럽게 만든 점이다. 량치차오, 쉬커, 탕이쒀 등의 문인은 아무 의문 없이 천족의 지식 체계를 받아들였다. 1898년 캉유웨이는 상소문을 올려 전족을 국가적으로 금지시킬 것을 촉구했다. 여성 작가와 사회운동가들도 반전족의 움직임에 합류해 지적인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거기엔 실제 전족 띠를 매고 있던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는 배제되어 있었다.
이에 저자는 전족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시도한다. 문제는 이들 여성이 현재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윈난성 퉁아이현 류이 마을은 전족 풍속의 최후의 보루로, 1980년대 중반까지 500~600명의 전족 여성이 있었고, 저자는 관광의 한 코스로 변한 전족 여성들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방법을 우회해 전족에 관한 온갖 자료를 다시 읽으며 행간을 살폈다. 또한 그녀들이 남긴 물질적 흔적과 자취를 좇았다. 신발, 양말, 전족 띠, 발에 바르는 분, 약방문, 자수 문양 등의 물건은 소멸한 육체, 그것의 주관적 경험, 이 경험이 한때 속했던 각 역사과정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이들 물건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발굴해보니 음성은 한가지가 아니었다. 반전족 운동 기간에 이미 전족한 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이 든 여성들이 느낀 굴욕감과 초조감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혐오 시선을 드러내며 전족 여성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검사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 전성기에 전족은 여성들에게 성공을 위한 사다리였다. 마치 과거시험이 남성들의 성공 수단이었던 것처럼. 부드럽고 순응적이며 남성의 욕망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작디작은 발을 가진 신데렐라들은 소수의 선택받은 신체였다. 이들의 발은 너무 작아서 뼈가 없거나 마치 조금의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여성은 극소수였다. 대다수의 여성은 완강한 몸을 지니고 있어, 전족의 유행 속에서 남보다 더 나은 몸을 가지려고 뼈를 깎는 노력과 광란의 욕망을 발산하기도 했다.
전족 여성은 기생충이자 팜파탈
전족에 관한 백과사전적 자료는 근대에 편찬된 『채비록采菲錄』이다. 기획자 야오링시가 심혈을 기울인 이 책은 1933~1934년 한 신문의 연재분을 편찬한 것으로, 전족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서 그는 이전 문헌을 인용하거나 그 자신, 친구, 독자들의 새로운 자료를 수록·소개해 새로운 지식과 욕망을 만들어내고자 시도했다.
이 책에 수록된 글의 성격은 학술적, 과학적, 자서전적인 것도 있고 에로틱한 것, 해학적인 것도 있다. 하지만 『채비록』은 근본적으로 포르노그래피적 성격을 띠고 있다. 남성들이 자신의 즐거움과 상업적 이득을 위해 여성의 육체를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야오링시의 목적은 문서의 철저한 수집과 종합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었다지만 이윤 추구의 동기도 숨기지 않았다. 이 책은 전족의 역사가 끈질기게 재생산되며 이어지는 동력의 한 측면을 비춰준다.
저자는 이처럼 근대를 먼저 서술한 뒤 전통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전족의 문화적 명성과 성적 욕망의 추구가 극단으로 치달았던 전성기에서 책의 끝을 맺는다. 이런 도치 서술은 우리 대부분이 상식으로 갖고 있는 반전족 운동의 관점을 허무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 전반부는 19~20세기 전족과 관련된 글과 이미지 문헌이 불꽃을 튀기는 장면을 연출한다. 반면 후반부는 12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전족의 아우라와 신비로움을 구성하고 유지했던 은폐 전략들을 검토한다. 전족의 기원과 사회적 유행에 대한 명청 고증학자들의 이론을 충실히 복원하면서, 결국 전족은 텍스트와 사회적 실행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탄생한 풍속임을 밝힌다. 나아가 더 대중적인 문학 장르에 등장하는 전족의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탐색하는 가운데 점차 여성의 시각으로 전환한다. 이로써 단순히 성적 환상의 도구만이 아니라 매일의 몸치장이자 사회적 교제 수단인 패션으로서의 전족을 살펴본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한결같이 반전족 운동을 중국 여성 해방의 이정표라며 드높였다. 하지만 저자의 결론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방족 운동의 성공을 정의하고 수치화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천족의 레토릭과 그에 따른 기적적인 신체 개조의 서사는 도덕적, 존재론적 확실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무엇이 성공적인 방족인지 측정할 만한 객관적, 보편적 기준이 우리에겐 없다. 방족의 성공이란 발 검사원이 왔던 날 전족 띠를 풀었던 소녀들의 특정한 비율을 뜻하는가? 아니면 연장자 여성들이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더는 전족 띠를 단단하게 묶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일까? 만약 어떤 여성이 몇 달간 전족 띠를 느슨하게 했다가 변심해서 다시 꽉 묶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모호성은 반전족 운동에 도사리고 있던 권력 불평등 문제를 드러낸다. 천족과 방족은 모두 거대 역사의 범주에 속한다. 이것은 여성들이 체현하는 삶의 선율과 관계없는 어떤 우세한 위치에서 형성된 것이다. 현실에서는 모세의 기적과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는 한 원래의 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방족은 그녀들을 피동적 대상의 자리에 배치한다. 반전족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전족 여성을 향한 혐오였다. 청말 민국 초의 주요 남성 사상가들은 전족 여성을 가리켜 국가 발전에 해를 끼치는 기생충이자 팜파탈이라 했고, 반전족 운동은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