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雪의 과학자,
설빙학雪氷學의 개척자
―나카야 우키치로 산문집
이 책은 1930~1940년대 일본에서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막 싹을 틔우던 무렵 기상물리학자로 활동하며 최초로 인공 눈을 만든 나카야 우키치로의 산문을 엮은 책이다. 우키치로는 동시대 물리학자이자 문필가였던 데라다 도라히코寺田寅彦의 제자로 잘 알려져 있어, 나쓰메 소세키와 문학적 소양을 나눈 스승의 영향이 그의 글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당시까지만 해도―어쩌면 지금도―과학계에서나 대중적으로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눈’이라는 자연 현상에 매혹되어 현미경으로 그 형상을 들여다보다 결국 세계 최초로 눈을 만들어낸 과학자가 된 여정만 보아도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을 엿볼 수 있다. “흐트러짐 없는 결정 모체, 날카로운 윤곽, 그 안에 박힌 다양한 꽃 모양, 그 어떤 탁한 색도 섞여들지 않은 완벽한 투명체”(18),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미학임을 그는 눈 결정을 처음 들여다본 그날부터 알았던 것이다.
이후 우키치로는 가장 흔한 육화형결정에서부터 장구 모양, 포탄 모양을 한 수십, 수백 종의 눈 결정을 관찰해 분류하고, 눈이 생성되는 조건을 밝혀내 저온실험실에서 인공 눈을 만들어냈는가 하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눈이 만들어지는지까지 정리해냈다. ‘눈의 과학자’로서 그의 연구는 세계 최초로 자연에서 눈 결정을 촬영한 윌슨 벤틀리에 이어 『눈 결정: 자연 눈과 인공 눈Snow Crystals: Natural and Artificial』이란 제목으로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일본의 물리학자 이케우치 사토루는 우키치로와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에 관해 이렇게 썼다.
나카야 우키치로는 1930년 홋카이도대학에 부임하여 1962년 숨을 거둘 때까지 눈과 얼음에 관한 연구를 활발하게 해오면서도 많은 수필과 사회평론을 쓴 실험물리학자다. 그는 (…) 데라다 도라히코의 제자로, 연구 방법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시에 취미를 두었던 것과 그리고 수필을 쓴 것까지도 은사 데라다 도라히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이면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머릿속에 그린 후 그 내용을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할 줄 아는 것, 과학 연구 틈틈이 수필을 써온 것까지 은사를 빼닮았다. 이 책에 실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어떤 말인지 족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카야 우키치로의 위대한 점은 홋카이도라는 북쪽 지방의 특성을 잘 살린 연구를 했다는 점이다. 그때까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눈, 얼음, 안개, 번개, 서릿발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정밀한 실험을 통해 그 생성 조건을 밝혀냈다. 특히 눈 결정에 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야외 관찰에만 머물지 않고 저온 실험실을 만들어 공기 중의 수증기량과 온도를 변화시켜 자유자재로 눈 결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알래스카와 그린란드에도 다녀와 지구 각지에서 나타나는 눈과 얼음의 성질을 분석했고, 세계 최초로 설빙학이라는 과학 분야를 개척했다.
그는 생전에 눈과 얼음에 관련된 연구 주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를 폭넓게 다룬 30여 종 이상의 산문집을 남겼고, 과학자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려고 했다. 이 점에서는 스승인 데라다 도라히코보다 더 폭넓은 시야로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파악한 과학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과학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라며 강연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아져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는 나카야 우키치로의 수많은 산문 가운데 북쪽 지방에서의 연구와 그가 교류했던 과학자들과의 추억, 일상에 숨어 있는 과학과 비과학 등 독자가 재미있어할 만한 글들을 주로 실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젊은이들에게 주려고 했던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이 책을 엮은 그의 말처럼 표제작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와 함께 책에는 일상의 풍경을 담은 글에서부터 엄격한 과학 정신을 논한 글까지 나카야 우키치로의 다양한 에세이가 실렸다. 나뭇가지를 ‘마녀의 머리칼’처럼 헝클어놓는다는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홋카이도의 설국, 심지어 섭씨 영하 20도 이하로 유지되는 저온 실험실에서 꽁꽁 언 몸으로 연구를 계속하던 그의 글엔 어딘가 따뜻함이 서려 있다.
동료 과학자들과의 일화, 젊은이들과 후대를 위해 적은 글, 자연에 순종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름 없는 사람들과의 추억은 쓰인 지 한 세기 가까이가 지나고 그들 모두가 떠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생생하고 어쩌면 그리운 감각을 선사해준다. 또 과학의 발달로 지금은 완전히 구시대 이야기가 된 과학계 이야기 역시, 과학을 정밀한 학문으로 대하며 세상을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마음과 태도에 있어서는 낡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