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일원이 경험하는 낯설고도 놀라운 세상
ASD는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이고, ADHD는 주의력이 부족해 산만하며 과다활동 및 충동성을 보이는 장애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정의를 넘어 이들의 감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보자.
ASD인들은 흔히 감각과민(혹은 감각둔마)을 겪는다. 첫째, 시각우위에 있어 시각 정보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선글라스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유다. 둘째, 청각과민 역시 거의 모든 ASD인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계속 노출되면 이들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될 정도다. 셋째, 촉각과민이 있어 옷 등이 피부에 닿는 것을 불쾌해한다. 넷째, 후각도 민감(둔감)하다. 다섯째, 동일성에의 집착으로 미각은 늘 같은 음식을 요구한다. 너무 다양한 맛이 한꺼번에 느껴지면 신체가 여러 개로 분리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면에서는 어떨까. ASD인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상대방과 눈을 맞추는 일이다(학교에서 선생님은 눈을 보고 말하라며 혼내는데, 이는 발달 일원이 갖는 시선 공포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대개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의 뇌는 타인을 인식하는 경로가 다르다. 거울신경의 기능이 약해 웃어야 할 때 웃지 않고, 웃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미소를 짓곤 한다. 특히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이들은 잡담에 서툴러 상대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아니면 잡담을 진지하게 연구한다.
ASD인들은 흔히 ‘보통 사람’인 척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따돌림의 표적이 되고, 스스로도 친구에게 절교 선언을 자주 한다. 저자는 ASD인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 ‘정상인’의 “독단적인 시선”이라고 못 박는다. ASD인이 몸을 흔들 때 정형발달인이 그 행동의 의미를 추측하지 못하는 것이나, 정형발달인의 말과 행동을 보고 ASD인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따름이다.
ADHD인들은 중독에 빠지기 쉽다. 저자에게는 과식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는 ADHD의 충동성에서 촉발되지만 특정 음식에 집착하는 면은 ASD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ADHD인의 15.2퍼센트가 알코올 의존을 포함한 물질사용장애를 겪고 있다. 저자 역시 알코올 의존증이 있어 자조모임에서 도움을 받았다.
한편 ASD인은 규칙을 좋아하며 대부분 강박을 갖고 있다. 저자는 병적 증상으로 인식되기 쉬운 이런 특성이 역설적으로 트라우마 치유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예컨대 그는 과민한 감각을 역이용해 감각을 완전히 포화시킴으로써 자꾸만 과거로 되돌아가는 플래시백을 막는다. 뿐만 아니라 강박에서 비롯된 수집벽은 자신만의 규칙을 충족시키는 수단이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은 물론이고 지식 수집욕도 높아서 이를테면 저자에게는 외국어를 학습하는 취미가 있다. 저자는 자신이 이런 특성 덕분에 치유되고 성장했다고 본다.
‘뇌의 다양성을 살아가는 존재’
그는 자신을 ‘발달장애인’이라 부르는 사회에 맞선다. 그래서 정상인을 ‘정형발달인’이라 고쳐 부르고, 자신처럼 장애인은 ‘뇌의 다양성neurodiversity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일컫는다. 그는 장애의 원인이 환경에 있다고 여겨 ‘사회 모델’을 지지한다. 이는 의학 모델이 장애의 발생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것의 대척점에 서 있다(그는 DSM-5의 진단 기준에 일반인의 독단적인 시선이 배어 있다고 본다). 예컨대 시각장애인이 사회의 지원을 받아 사는 데 아무 어려움을 못 느낀다면, 그는 ‘눈이 보이지 않을 뿐인 정상인’이 된다.
‘그’는 이 책의 저자 요코미치 마코토다. 마코토는 발달(장애인) 일원과 자조모임을 열고,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글을 쓴다. 즉 이 책은 당사자 연구의 귀한 사례로서, 투명하리만큼 스스로를 다 내보인다. 마코토는 자신이 겪는 불편함의 구조와 전체 체계를 더 깊이 통찰함으로써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한다.
마코토는 매우 독특한 존재여서 읽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끈다. 그는 세심하고 예민하며, 관심의 폭은 깊고도 좁다. 이런 특징은 자폐인인 데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는 설렁설렁하거나 관대하기도 하지만, 변덕을 부리거나 무리하게 일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특징은 ADHD인 것과 관계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는 운동신경이 없고 손끝이 야무지지 못하다는 말을 평생 들어왔다. 밥 먹을 때는 초예민한 미각 때문에 똑같은 메뉴를 반복해서 먹는다(가령 종류만 바꿔 매끼 카레만 먹기). 자신의 몸을 통합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힘들어 걸을 때 ‘오른쪽, 왼쪽’ 하고 혼잣말하면서 발을 내딛기도 한다.
이젠 그의 탁월한 점을 보자. 마코토는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나다. 그는 자기만의 언어를 모국어로 삼고, 제1외국어는 표준 일본어, 제2외국어는 오사카 사투리다. 나아가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에 능숙하고,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아이슬란드어, 라틴어, 고전 그리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한국어도 배웠다. 과집중할 때 발휘되는 능력 덕분에 문학 박사학위까지 땄고, 종종 번역도 한다. 문학과 예술은 그가 자기의식을 정돈하고 더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밑거름이 된다.
마코토는 “발달장애의 특성이 인격에 영향을 미치긴 하나 인격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자기 제어가 잘 안 되는 면을 인격으로 받아들이면 자기혐오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부에 ASD 군과 ADHD 양을 키우고 있는데 걔들은 귀엽지만 뭔가 애를 먹이네”라고 다독이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 책은 정형발달인에게는 뇌의 다양성의 세계를 드넓게 펼쳐 보여주고, 발달 일원에게는 용기와 공감대를 불어넣는다. 수많은 당사자 연구와 신경다양성 연구를 포괄할 뿐 아니라 저자가 이끌고 있는 자조모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유일무이의 자기 해부 기록이다. 이 책엔 여러 문학작품이 인용되어 있어 흥미롭고, 저자의 경험은 에세이와 소설, 시로써 예술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트라우마, 진단, 자조모임, 휴직과 복직…
마코토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9년 동안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이런 일을 겪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 9년 동안 자살하지 않은 것은 나의 큰 자부심”이라고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자폐인의 수명은 평균보다 18년 짧고, 지적장애와 특정학습장애를 함께 지니고 있으면 30년이 더 짧다고 한다. 많은 자폐인은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죽는데, 이는 사회적·문화적 압박 때문이다. 저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에서 신경다양성이라는 개념을 널리 이해해주고 사회의 지원을 늘려주길 바란다”.
마코토는 현재 리스페리돈, 아토목세틴, 설트랄린(우울증이나 공황장애, PTSD 등에 처방)을 복용하고 있다. 또 그가 사는 교토에서 발달장애 자조모임 ‘달과 지구’, 장애인과 소수자 중심의 당사자연구회 ‘우주생활’을 운영하고 있다. 때로는 발달장애인, 어덜트 칠드런, LGBTQ+, ‘종교 2세 신자’를 위한 당사자연구회를 열거나 발달장애인이 모여 문학·예술에 대해 말하는 모임, 자폐인에게 쾌적한 시간과 공간을 탐구하는 연구회, ‘미니 오픈 다이얼로그’ 모임도 갖고 있다. 하지만 신경다양성 개념이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려면 당사자 연구만으로는 부족하며,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저자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2019년 4월이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대학을 휴직한 뒤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진단받고 1년이 지나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아 암담함을 느꼈다. 이때 교토장애인직업센터에 복직을 위한 리워크 지원 사업이 있어 인지행동치료를 받고 발달장애 동료들과 긴 시간을 보내면서 회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코로나19가 유행해 많은 자조모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사카이 발달 친구의 모임’을 알게 됐고, 이로부터 ‘달과 지구’라는 모임을 발족할 수 있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저자는 이 책의 1, 2장의 바탕이 된 논문을 썼고, 2020년 10월 ASD/ADHD 진단을 받은 지 1년 반 만에 대학으로 복직하게 되었다.
저자는 자폐, 조현병, 성격장애 등 뇌신경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름을 ‘신경다양성’으로 포섭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반면 국내에 신경다양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드물어 이 책은 좋은 참조점이 될 수 있다.
21세기 초반에 신경다양성 운동에서 화제가 된 웹사이트에서는 아스퍼거장애인의 반대선상에 있는 정형발달인을 다음과 같이 희화화했다. “정형발달증후군은 뇌 생리학상의 장애로서 사회 문제에 대한 몰두, 우월성 망상, 동조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특징지어진다. 정형발달인은 종종 그들의 세계 경험이 유일한 것이거나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정형발달인은 혼자 있는 것을 어려워한다. 정형발달인은 종종 타인의 섬세한 차이처럼 보이는 것에 관용적이지 않다. 정형발달인은 집단 내에서는 사회성이나 행동이 경직되고 자주 기능부전 또는 파괴적인 행동을 하며, 나아가 있을 수 없는 형식에도 집착하는데, 이는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발달장애인의 특성은 그 자체로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정형발달인과 다른 발달 특성을 갖고 있을 뿐이며, 그것이 ‘정상인’의 속도로 만들어진 사회 환경과 마찰을 일으킴으로써 ‘장애인’이 되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