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이 안뜰에 묻어버린 비밀
꼬불꼬불한 철문을 지나 작은 숲으로 가니 교정은 홀리가 전혀 몰랐던 오솔길들의 바다다. 큰길에서 모퉁이 하나만 돌면 나오는 낯선 길들. 아른거리는 햇빛, 파닥임, 머리 위의 어지러운 가지들, 시야 끝에 걸리는 보라색 꽃들. 베카와 설리나가 오솔길을 벗어날 때 총총 땋은 베카의 검은 머리와 늘어뜨린 설리나의 금발이 똑같이 흔들린다. 요정 정원사가 동그랗게 깎아놓은 듯한 덤불을 지나 작은 언덕을 올라가니 어룽어룽한 그림자가 사라지고 깨끗한 햇빛이 내리쬔다. 홀리는 잠시 두 손으로 눈을 가린다.
빈터는 작다. 큰 사이프러스나무들에 둘러싸인 작고 동그란 풀밭일 뿐이다. 하지만 공기는 전혀 다르다.
(…)“가끔 조용한 장소가 미칠 듯이 필요할 때가 있어. 그러면 우리는 여기 와.”_39~40쪽
이 작품의 제목인 ‘시크릿 플레이스’는 작중 등장하는 비밀 게시판에 붙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숙학교의 아름다운 교정 한구석에 숨겨진 ‘비밀의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사이프러스나무로 둘러싸인 동그란 빈터에서 홀리와 세 친구들은 오롯한 그들만의 시간을 공유하고, 다른 데서는 말할 수 없는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며, 영원한 우정과 반짝이는 미래를 맹세한다. 그리고 똑같은 장소에서, 모두가 선망하던 남학생 크리스토퍼 하퍼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끔찍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 우연히도 같은 장소를 나눠 쓰게 된 네 명의 소녀들과 사망한 남학생. 얼핏 보기엔 전혀 접점이 없는 듯한 그들 사이에 어떤 비밀스런 연관성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1년이나 지나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크리스토퍼 하퍼’라는 이름은 평온을 찾았던 학교를 다시금 뒤흔들고, 불안감에 잡아먹힌 아이들은 꽁꽁 숨기고 있던 비밀들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크리스와 연인 관계였다는 조앤, 조앤의 말이라면 조금도 반항하지 못하는 세 여학생들, 그리고 그들 무리와 사이가 좋지 않은 홀리와 친구들은 상대에 대한 비밀과 소문을 폭로하면서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렇게 여덟 명의 소녀들의 엇갈리는 증언과 거짓말 속에서 두 형사, 모런과 콘웨이는 이전까지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던 범인의 실체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여자아이는 매일 눈에 띄게 달라진다
『시크릿 플레이스』는 크리스토퍼 하퍼가 살해당하기 약 8개월 전부터 홀리와 친구들에게 벌어진 일들, 그리고 모런과 콘웨이 콤비가 사건을 재수사하는 현재 시점을 교차하며 서서히 사건의 진상에 다가간다. 1년이란 시차를 두고 다시 한번 여학생들을 면담하게 된 콘웨이는 그간 아이들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음을 금세 눈치챈다. 그리고 모런 역시 막연히 머릿속에 품고 있던 ‘아름다운 사립학교’에 어울리는 여학생의 도상은 홀리와 친구들을 설명하기엔 너무도 단순하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사람은 복잡하니까요. 어렸을 때는 사람을 한 가지로만 보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_405쪽
타나 프렌치는 전작 『페이스풀 플레이스』와 『브로큰 하버』에서도 생생한 등장인물과 핍진한 묘사로 작품에 생동감을 더하고, 놀라운 연출력으로 단숨에 독자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 바 있다. 『시크릿 플레이스』에서도 역시, 작가는 더욱 아름다운 문장과 섬세해진 심리 묘사로 십 대 여학생들의 예민하고 변덕스런 정서, 애틋하면서도 때로는 복잡하게 뒤엉키는 감정들을 그려내고 있다. 아직은 학교와 친구들이 자기 세계의 대부분이고, 그 안에서 생기는 질투심과 경쟁, 친구들로부터 뒤처지거나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처럼 그 나이에 느낄 법한 두려움은 다른 문화권의 독자라도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진실이 완전히 드러났을 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소녀들의 관계에 균열이 가고 완전히 부서지게 되는 순간 찾아오는 아픔은 그들만의 감정이 아니게 될 것이다.
타나 프렌치의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의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하며, 형사 한 명이 각 작품에서 주요 수사관으로 활동한다. 주인공은 다른 작품에서 보조 인물로 출연하는 식으로 각 작품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시리즈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살인의 숲(In the Woods)』(2007), 『같은 얼굴(The Likeness)』(2008), 『페이스풀 플레이스』(2010), 『브로큰 하버』(2012), 『시크릿 플레이스』(2014), 『침략자(The Trespasser)』(2016)가 있다.
『페이스풀 플레이스』에서 살인수사과 형사로 등장했던 스코처 케네디는 『브로큰 하버』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마주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시크릿 플레이스』에서는 『페이스풀 플레이스』의 주인공 프랭크 매키의 딸 홀리와 신입 경찰 스티븐이 사립 여학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한다.
이 책에 바쳐진 찬사
“너무도 매혹적인 이야기”- 길리언 플린
“대단하다. 섬뜩하고, 놀랍고, 문장은 하얗게 타오른다.”- 스티븐 킹
“프렌치는 인물 한 명 한 명을 잔인하도록 정확하게 묘사한다. 단검을 던져서 풍선을 터뜨리는 사람 같다. 그것이 〈시크릿 플레이스〉의 세계를 명료하고 다채롭게 한다.”- 레브 그로스먼, 《타임》
“영악함, 미숙함, 저속함, 사악함이 다음 순간 깊고 심오한 비극으로 이어진다.”- 매릴린 스타시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프렌치의 미스터리는 범인을 찾는 기록이라기보다 사려 깊고 영리하고 놀라울 정도로 교묘하게 잘 쓴 문학 작품이다.” -《USA 투데이》
“타나 프렌치의 최신작 〈시크릿 플레이스〉는 놀라운 추리소설이다. 플롯은 독창적이고 문장은 우아하지만, 프렌치는 인물의 발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녀의 냉정한 눈길은 성인의 문턱에 선 십 대들의 좌절감을 눈부시게 포착한다.” -《시애틀 타임스》
“〈시크릿 플레이스〉에서 서스펜스는 절묘하게 끓어오르고 프렌치의 문장은 아름답게 반짝인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은 예리한 관찰을 통해 인물을 묘사하여 복잡하고 놀라운 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과거 회상과 현재의 수사 양쪽에서 모두 드러난다.” -《탬파베이 타임스》
“반전과 복선과 긴장감이 가득한 이 살인 미스터리는 사건 자체도 인상적이지만, 그 동기에 대한 심리적 통찰이 단연 돋보인다. 〈시크릿 플레이스〉는 우리를 당혹케 하지만 그 방식은 올바르다. 타나 프렌치는 십 대들과 경찰의 시점을 나란히 전달해서 올해 최고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손꼽힐 만한 소설을 썼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