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들은 호수에 던진 돌과 같다. 큰 소리와 함께 파문이 번지지만 호수의 바닥에 내려간 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흙에 깊이 파묻히고 수면은 다시 잔잔해진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현대화는 극적일 정도로 가파르게 진행되었고, 많은 것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1990년대의 선전 특구, 2000년대의 상하이, 2008년 베이징의 올림픽 개최로 이어진 현대적 중국의 탄생은 그 변화의 역정만큼이나 깊고 넓은 호수를 만들어냈다. 현대화의 충격이 그것을 겪어낸 인간의 내면에 내놓은 크레이터라고 할까.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변화의 잔해들은, 아직 바닥까지는 파고들지 못하고 볕이 좋은 날엔 일렁이는 물결 사이로 그 천연색의 몸을 보여주며,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것을 발굴하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호수에 던져지는 돌들을 하나하나 바라본 이가 있다면, 그리고 틈날 때마다 어부 한 명을 고용해 호수 중앙으로 나아가 그 밑바닥을 내려다보고, 서로 뒤섞인 채 덮여가는 누적된 시간의 텍스처를 한 결 한 결 만져본 사람이 있다면, 『갑골문자: 중국의 시간을 찾아서Oracle Bones: A Journey Between China’s Past and Present』를 쓴 피터 헤슬러가 바로 그런 인물일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오라클 본Oracle Bones, 우리말로 갑골문자다. 갑골문甲骨文은 중국 상商나라 은허 유적에서 발굴된 고대의 문자다. 자연이나 인간의 행위를 본떠서 만든 이 상형문자는 왕이 점치는 과정을 기록한 은허복사殷墟卜辭로 남아 우리에게 고대 세계의 일부를 전해준다. 햇볕에 드러난 문자는 현대인에게 암호와도 같아, 그것을 해독하는 작업을 거쳐야 그 속의 의미가 오롯하게 떠오른다. 중국의 시간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서양, 그것도 미국인 기자의 눈에 중국 사회는 해독하기 쉽지 않은 텍스트였을 것이다. 현대 중국을 다룬 이 책의 제목이 갑골문이 된 이유는 그 해석 행위의 유사함을 충동적으로 붙잡은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서 작가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모든 경계와 정의가 때로 유동적이듯이 시간 자체도 그러했다. (…) 과거 속으로 더 멀어짐으로써 역사적 의미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서문의 짧은 말로 대신할 뿐이다.
책을 집필할 당시 피터 헤슬러는 『월스트리트저널』 베이징 주재소의 기사 스크랩 인력이었다. 그의 상사이자 책임자는 2001년 파룬궁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 이언 존슨이었다.(헤슬러의 공도 있을 것이다.) 헤슬러는 얼마 전까지 쓰촨성의 푸링(지금의 충칭시 푸링구)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사범대학 학생들에게 영어와 영미 문학을 가르쳤다. 교사가 부족한 때였는지라 그의 제자들은 졸업 후 전국 중고교 교사로 곧바로 부임되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영어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푸링사범학교에서의 2년은 『리버타운』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고, 그는 영어권 주요 저널에 중국 관련 취재 이야기를 싣고 원고료를 받아 생활하는 논픽션 프리랜서 작가의 길에 접어들면서 스크랩 인력으로 그 스타트를 끊었다. 상사인 존슨은 곧 그를 사무실 밖으로 내보냈고, 기자 아닌 기자가 된 그는 본격적인 중국 관찰을 시작한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6년간 헤슬러라는 ‘렌즈’는 꽤 변칙적으로 작동하면서 중국 사회의 여러 층위를 발굴하게 되는데, 그가 읽어내려는 것은 주로 표정이었으며, 말을 얼버무리는 인물들의 내면,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경험들이 지시하는 방향을 따라 시간을 30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기도 했다.
이 책은 논픽션이지만 표현은 무척 장르 복합적이고 구성 자체가 독특하다. 크게 두 줄기의 흐름을 갖는데 하나는 1장부터 24장까지의 내용이다. 중국, 미국, 신장이나 타이완 각지를 오가며 넓은 활동 범위와 함께 언급하는 장면과 인명도 부지기수다. 난징(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 폭격에 대한 시위), 톈안먼 사건 10주년 기념일 취재, 단둥의 북한 관련 취재, 백두산 유람, 불야성의 도시 선전, 창춘의 전분 제조 공장, 푸저우 연해의 밀입국 브로커, 톈안먼 광장의 파룬궁 시위 장면, 홍콩, 베이징 후퉁 쓰허위안 철거 현장 취재 등과 민감한 시기였던 1999년 5월의 나토 폭격 사건, 베이징 올림픽 주최권 유치 과정, WTO 가입 신청의 최후 단계, 2001년 남중국해 해상 영공의 충돌 사건,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 동투르키스탄 문제, 미국 대통령 부시의 중국 방문 등이다.
다른 하나는 상나라 은허 유적의 발굴 현장을 따라다니며 발굴대장이나 전·현직 고고학자 등 관련된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유물 A부터 유물 Z까지의 여정이다. 이 글들은 장과 장 사이에 삽입되어 있으며 실제로도 현실에 잘못 끼어든 삽화 같은 느낌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주로 과거의 상처를 헤집고 있다. 저자는 특히 천멍자陳夢家(1911~1966)라는 갑골문 학자의 비극적인 생애와 그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은허 발굴 현장의 전·현직 고고학자들은 갑자기 천멍자와 직간접적으로 맺은 인연 때문에 증인 신분으로 바뀌며 스스로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역사를 증언하는 괴로운 노정에 오르게 된다. 저자는 천멍자의 선후배 동료는 물론이고, 박물관 관장, 총대를 메고 그를 인신공격한 고고학계의 거두 리쉐, 수문지질학자로 은퇴한 85세의 남동생 천멍슝까지 인터뷰하며 1957년 마오쩌둥의 반우파 투쟁이 한 지식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지만, 그 결과는 선과 악이 분명한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인터뷰한 사람으로는 위구르족 폴라트와 그의 친구들, 고고학자 징즈춘,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비둘기 관리인, 중국 고대문화 연구가 임레 갈람보스, 한국전쟁에 참전한 노병, ‘살아 있는 사전’이라 불리는 타이완의 갑골학자 스장루, 안양고고발굴단 단장 탕지건, 선전방송국의 라디오 진행자 후샤오메이, 소설가 먀오융, 베이징의 자오징신, 청동기 연구가 로버트 배글리 교수, 고고학자 쉬차오룽, 싼싱두이 황금 가면 발견자 쉬원추, 쓰촨성박물관 부관장 천셴단, 안양의 고고학자 양시장, 미국인 화교 우닝쿤, 자오 선생을 통한 갑골문 학자 천멍자의 생애 추적, 갑골문 학자 데이비드 키틀리, 베이징 시 부시장 류징민, 2008년에 열린 제29회 베이징올림픽에 관한 취재, 농구 선수 출신의 방송인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도 참여했던 쉬지청, 미국 인류학자 존 맥칼룬, 역사학 교수 앨프리드 센, 시퉈구 지역 촌장 선거 장면에서 만난 주민과 경찰, 갑골문 학자 다카시마 겐이치 교수, 외교부의 스장타오, 타이완 민진당 국제사무부 주임 톈신, 타이완 신주시 부시장 린정제, 타이완 무소속 입법위원 천원첸, 타이완 중앙연구원 인류학자 스레이, 미국의 ‘라디오 프리 아시아’의 특파원 메메 오메르 카나트, 상하이박물관의 마청위안, ‘하상주 단대공정’의 책임자이자 고문자 학자 리쉐친, 미국 언어학자 존 드프랜시스, 원로 언어학자 저우유광, 인빈융, 왕쥔, 교육부 관리 장롄중, 천멍자의 동생 천멍슝,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공동묘지, 천멍자의 제자 왕스민, 우웨이박물관 관장 톈즈청, 중국학 교수 빅터 메이어, 영화감독 장원 등이 있다.
과거를 향해 멀어지는 것으로 역사적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건 어떤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역사라는 것의 복잡한 동력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저자는 천멍자의 생애를 추적하는 한편으로 계속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취재한다. 베이징 쥐얼후퉁의 400년 된 쓰허위안을 철거하려는 구區정부와 목숨 걸고 이걸 막아내려는 자오징신이라는 82세 집주인 노인의 줄다리기를 다루는 9장에서 헤슬러는 집중 인터뷰를 통해 묘하고도 씁쓸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기록하게 된다. “후퉁과 쓰허위안은 다른 나라에 없어요. 이 집은 미국보다 더 오래되었지요.” 노인의 첫마디다. 이어서 구정부의 무리한 행정과 쓰허위안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연설이 계속된다. 그는 고소로 맞섰고, 중국에는 오래된 마을이 북방의 핑야오와 서남쪽의 리장만 남았다고 역설하는 노인은 “중국인으로서 저는 이곳을 보호할 책임이 있어요. 저는 스스로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그들에게 저는 ‘움직이지 않는다Not moving’ 두 단어를 말할 따름이죠”라고 말했다. 철거는 베이징을 비롯해 변화하는 대도시가 마주한 숙명이었다. 헤슬러는 그것을 상징하는 문자를 하나 제시한다. 바로 ‘拆’(차이)라는 글자다. 베이징에서 이 글자는 철거를 알리는 건축물에 칠해져 있는데, 도시의 노후 지역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글자는 보통 1미터 크기의 동그라미 안에 쓰는데 무정부주의자의 상징 표시 A와 같다.” 도처에서 拆가 보이니 이를 활용한 말장난도 생겨났다. “우리는 ‘차이날拆哪兒’에 산다네.” 이는 영어 차이나처럼 들린다. 구정부를 상대로 한 노인의 소송은 중국 기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텔레비전에서 인터뷰하고 돌아갔지만 뉴스로 나오지는 않았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쥐얼후퉁의 모든 집이 벽돌과 먼지로 변해버렸다. 마지막 남은 건 자오징신 부부뿐이다. 노인의 태도는 갈수록 강경해졌다. “법원 사람도 오고 경찰도 오고 구급차도 오겠죠. 그때가 되면 볼만하겠죠.” 그러나 강제집행 전날 노인은 집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떠난다. 노인 부부는 떠났지만 아침 8시 30분경 50명이 넘는 경찰들이 철거 현장을 둘러쌌고 곡괭이를 든 인부들이 도착해 벽돌을 깨고 먼지에 물을 뿌렸다. 석회, 진흙, 벽돌. 먼지, 먼지, 먼지. 拆, 拆, 拆. 늦은 오후가 되자 쓰허위안은 역사가 되어버렸다. 그 역사를 만든 노동자의 하루 임금은 2.5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노인은 얼마의 돈을 보상으로 받았을까. 그런 건 여백에조차 적혀 있지 않다.
선과 악, 전통과 현대, 피해와 가해. 모든 것은 하나로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였다. 이 책에는 학교 선생이 된 제자들의 눈을 통해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스냅숏으로 잡아내는 부분이 많다. 그는 선생으로서 졸업한 제자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그중 선전으로 간 에밀리와 원저우로 간 윌리엄 포스터는 각각 하나의 렌즈로 두 대도시의 변화를 그려내고 헤슬러에 의해 종합된다. 교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선전의 한 공장에 영어 인력으로 취업한 에밀리를 통해서는 거대한 장벽을 세워 도시 내부와 외곽을 구획한, 하루아침에 생겨난 이 가공할 만한 도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로 타이완에서 건너온 사장들의 노동 착취와 오입질, 고향을 떠난 젊은이들의 외로움과 사연을 읽고 조언해주는 밤의 라디오 진행자 후샤오메이, 선전을 잘 포착해낸 소설로 판금 조치를 당한 29세의 소설가 먀오융, 그녀의 소설은 선전 관내 화이트칼라를 겨냥한 돈 밝히는 이야기라고 싫어하는 제자 에밀리, 그녀와 동거하는 주윈펑. “집에서 멀리 떠난 외로운 사람과 같은 선전의 분열”을 보고 “이 모든 것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응집력 있는 것으로 만들어질지”가 궁금한 외부자 헤슬러. “그게 중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라고 저자는 제자 에밀리에게 물었지만, 24세의 청년인 에밀리에게 그런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에밀리는 대들었다는 이유로 최근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사장에게 살해 협박 편지를 익명으로 써서 보냈다. 스승의 질문에는 웃으며 “몰라요”라고 답했다.
저장성의 원저우로 간 윌리엄 포스터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그는 영어를 광적으로 좋아했고, 진심으로 영어를 잘하고 싶어하는, 그러면서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침에 작은 새는 노래하지 않나요?”라고 스스럼없이 음담패설을 하는, 정말 시골스러운 유전자로 언어라는 문명적 요소를 편집증적으로 섭렵해 변화의 시대를 딛고 올라서려는 유형의 인간이다. 그는 사범학교 시절 만난 낸시와 함께 원저우 근처 작은 도시의 학교로 초빙되어 갔지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류 문제 때문에 두 번이나 거액의 뇌물을 바쳤지만 결국 임용 사기를 당하고 만다. 그를 초빙해 데려간 왕 선생이란 사람은 쓰촨 출신인 윌리엄에게 젊은 시절 자신이 쓰촨 북부를 여행했을 때 끔찍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울음을 참지 못했다고 자주 말했다. 이는 자신이 비록 임용 사기에 가까운 저임금에 학교 같지도 않은 곳으로 그를 데려왔지만, 쓰촨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니 고맙게 여기라는 말이었다. 윌리엄이 혐오하는 왕 선생의 근엄한 중산복, 인색함, 오입질 등 중에서도 이 쓰촨 사람에 대한 동정이 가장 혐오스러웠다. 윌리엄은 왕 선생을 벗어나 웨칭이란 도시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만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때때로 맨홀 뚜껑을 훔쳐 고철로 팔아버리는 바람에 밤길을 걸을 때 조심해야 했다. 그의 동료 교사는 표준어를 완벽히 마스터해서 이웃 장쑤성 사람으로 행세하는 윌리엄에게 “쓰촨 이주민이 훔쳐갔다”는 말을 하며 넌더리를 냈다. 윌리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윌리엄은 ‘미국의 소리’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영어를 계속 공부했고, 대학 졸업 이후에만 영어사전 세 권을 독파했다. 드디어 2000년 가을에 열린 영어 경연 대회에 참가한 윌리엄은 500명의 교사 중 1등상을 받았다. “영광이죠. 제가 이길 수 있었던 원인은 제가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전에서의 에밀리처럼 웨칭시에서의 윌리엄도 곧 거대한 사회적 부조리와 마주하고 만다. 그건 뇌물을 받고 입학시험 문제를 빼돌리는 교육공무원이었다. 윌리엄의 학교는 공립학교였는데 주변 대도시의 학교들과 경쟁을 하고 있었기에 늘 뇌물을 바쳤다. 하지만 공무원은 뇌물을 받고도 제대로 문제를 알려주지 않았다. 시험 첫날 한 학부형이 교사인 윌리엄을 찾아와 내일 시험에 베토벤과 빌 게이츠가 나온다는 걸 알려줬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한다는 말과 함께. 윌리엄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복사집에서 그 학부형 자식의 교과서에서 유명한 두 외국인의 프로필이 나온 페이지를 복사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엄격한 지시를 내렸다. 이것만 공부하고 아무에게도 소문내지 말라고. 오래지 않아 시험 결과가 발표됐고 윌리엄 반의 성적이 전교에서 가장 높았다. 교장은 그에게 보너스 6000위안을 주었다. 베토벤만 문제에 나왔으면 더 많은 돈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윌리엄은 학교와 교육공무원이 얽힌 이 입시 비리 문제를 지역 방송국에 익명으로 제보한다. 떠들썩하게 뉴스가 나오고 수사가 이뤄졌다. 저자 헤슬러는 윌리엄에게 왜 위험을 무릅썼냐고 물어봤다. “시골 학생들을 위해 그랬어요.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도시 학생만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는 시골 학생들에게는 불공평해요.”
이런 사회 초년생들은 『갑골문자』에서 그렇게 때론 시스템에 순응하고 때론 저항하며 중국 현대화의 한 흐름으로 휩쓸려들어갔다. 어쩌면 중국의 현대화는 유동하는 삶을 통해 중국인들이 나라 안의 외국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통하지 않는 언어, 확연히 다른 습속, 배타적 경계심은 나라 안의 외국에 적응하느라 진짜 외국이나 세계의 문제는 관심에서 멀어지게 했다.
헤슬러는 중국에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시위 현장에서, 식당에서, 국경 지역인 단둥을 여행하면서 항상 헤슬러는 중국인들의 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중국인들은 미국을 동경하면서 증오했다. 미국인의 의견을 듣고 싶어했지만 그만큼 비판하고 싶어했다. 나이가 많을수록 더 그랬다. 나이가 어려도 제한된 언론을 접하는 그들은 대부분 국가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한번은 정말 험악한 상황에서 그를 구해준 이가 있었다. 바로 베이징 야바오로의 달러 암표상 폴라트였다. 폴라트는 위구르에서는 학교 선생이고 지식인이었지만 정부의 탄압을 받아 결국 베이징 뒷골목으로 흘러들어와 중개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폴라트는 무엇이든 판매했다. 1998년에 그는 폴란드,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무역 협력단에 트럭 두 대 분량의 555 브랜드 신발 모조품 판매를 주선해서 2000달러를 벌었다. 또 하루는 일부 러시아인이 톈진의 지하 공장에서 노티카 모조품 옷을 한 컨테이너 분량 구입하는 것을 도와 1000달러를 벌었다. 1998년은 순조로운 한 해였다. 그해에 그는 러시아 사람을 설득하여 피에르가르뎅이란 상표를 달아 광둥에서 생산한 모조품 브래지어 2만 장을 사게 하기도 했는데, 개당 대략 25센트를 벌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 위구르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싶어했다. 아니 중국이라는 거대한 짐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고 싶어했다. 폴라트와 친해지면서 저자의 주변에는 베이징 뒷골목 소수민족들의 삶이 흘러들어왔다. 카자흐족, 우즈베크족, 타타르족, 몽골과 러시아 출신 매춘부들. 그들은 그와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그러면 반드시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들은 나토의 폭격을 찬성하는 쪽이었다. 헤슬러가 물었다. “나토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벌인 일에 찬성해요?” “당연히 찬성하죠. 알바니아 사람들이 피살된 건 그들이 소수민족이기 때문이에요. 우린 ‘미국의 소리’라는 방송을 들어서 그곳에서 생긴 일을 알아요. 이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내가 신장 출신 위구르족이기 때문이죠. 내 말뜻 이해하시겠습니까?” 헤슬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는 헤슬러를 빤히 쳐다보았다. “밍바이 러 마明白了嗎?”(이해합니까?) “압니다.” “베이징에서 공개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예.”
세계사에서 이름난 중국통 기자들이 있다. 한국인 혁명가 김산을 22차례나 인터뷰하여 그 일대기를 복원한 님 웨일즈Nym Wales(1907~1997), ‘3S’라 불리는 애나 스트롱Anna Louise Strong(1885~1970), 스메들리Agnes Smedley(1892~1950), 에드거 스노Edgar Snow(1905~1972)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 대륙의 혁명 시기 리더들을 인터뷰하고 서방 세계에 알린 기자들이다.
피터 헤슬러Peter Hessler는 최근 이 목록에 추가할 만한 인물이다. 1969년 6월 14일 미국 미주리주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프린스턴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영국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7세 때 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2년 동안 푸링사범전문대학(지금의 창장사범학원長江師範學院)에서 영어를 가르쳤으며 이후엔『뉴요커』베이징 주재 기자 및『내셔널지오그래픽』『월스트리트저널』 등에 장기간 기고했다. 2011년에 이집트 카이로로 떠나 이집트 혁명을 취재해 책을 펴냈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의 교육 시스템을 건드렸다가, 중국 정부에 의해 영구 추방되는 사건을 겪었다. 2024년에 영어로 출간될 책에 그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그의 아내는 1991년에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레슬리 창Leslie T. Chang이다. 그녀도 중국을 소재로 글을 쓰는 미국 작가인데 저작으로『공장의 소녀들Factory Girls: From Village to City in a Changing China』(2008)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현대 중국에 대해 가장 통찰력 있는 서구 작가’라는 호평을 받은 피터 헤슬러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인터뷰하고 여행하면서 겪은 체험담을 중국 르포 3부작『리버 타운』『갑골문자』『컨트리 드라이빙』에 담아 출판하여 여러 차례 도서상을 받았고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 했다. 그 가운데 『리버 타운-』과 『컨트리 드라이빙』은 이미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다. 중국 3부작 중엔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갑골문자』(2006)는 20세기와 21세기가 교차하는 경계선상에서 중국 대륙 각지와 타이완, 홍콩, 미국 등지를 몸소 발로 뛰며 취재한 일종의 여행문학 작품에 속한다. 참고로 신장웨이우얼 문제를 큰 주제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헤슬러의 3부작 중 유일하게 대륙판이 나오지 않았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출신 이슬람교도들의 ‘동투르키스탄’ 독립 관련 활동을 정국 정부에서 용납할 리가 없는 탓이다. 타이완에서만『갑골문甲骨文: 시공 속을 떠돈 신생 중국流離時空裡的新生中國』이란 제목으로 2007년에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