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서 본 일본
얼룩진 시골과 전봇대의 나라
이 책이 독특한 것은 이방인이 타국을 여행하는 이야기가 아닌, 빈집에 들어가 그곳에 남겨진 몇십 년 몇백 년 전 일본인의 삶을 엿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1970년대에 일본 지방의 집들은 이미 버려지고 있었다. 시골에서의 삶이 전망 없어 불안했던 사람들은 싱크대에는 수저를, 화장실에는 칫솔을 남겨둔 채 급히 터전을 떠났다. 그 덕분에 저자는 쓰루기산에서 시작해 가가와현, 고치현, 도쿠시마현 등에서 백 채쯤 되는 집에 들어가 옛 주인들의 일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점점 전통 가옥에 매료된 그는 빈집을 사자고 결심했지만, 웬만한 곳은 콘크리트와 알루미늄으로 덧대어져 볼품없었고, 10년 넘게 방치된 집들은 바닥이 기울고 있었다.
1973년 1월, 이야 계곡 동쪽에 있는 쓰루이 마을에 갔다. 거기서 18세기에 지어진 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자신이 찾던 집임을 알아차렸다. 17년째 폐허였던 그 집을 사서 6월에 입주한 뒤 치이오리篪庵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대공사와 청소가 시작됐다. 먼지 제거는 보물찾기처럼 흥미로웠다. 집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물건은 1950년대에 조부모와 함께 이 집에 살던 젊은 여성의 일기였다. 거기엔 마을의 궁핍, 어두운 집, 도시에 대한 갈망이 아프게 적혀 있었다. 그러다 일기는 그녀 나이 열여덟 살에 돌연 멈춘다. 알고 보니 그녀는 가출했고, 조부모는 손녀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써서 문에 거꾸로 붙여놨다. 그리고 그 부적은 저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집은 가로 네 칸 세로 여덟 칸의 넓이다. 마루, 툇마루, 침실, 부엌, 작업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집은 숨이 막히도록 어두웠다. 젊은 여자가 도시의 형광등 불빛을 쫓아 가출한 것이 이해될 정도였다. 하지만 미닫이문을 모두 철거하자 어두웠던 그곳은 환히 빛을 머금었다. 저자는 그곳에 앉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를 떠올렸다. 다니자키는 그늘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는 현대 일본을 애통해하지만, 저자가 치이오리에서 느낀 그림자와 어둠은 너무 밀도 높았다. 이 때문에 일본은 형광등의 나라가 된 것이 아닐까? 형광등과 긴자의 화려한 간판들에 너무 익숙해지다보니 영화예술에서 색감 조절을 잘 못하고 단조로운 조명만 사용하는 건 아닐까?…… 시골 집에서 그의 머릿속 회로는 일본 사회 전체로 뻗어나간다.
치이오리의 내부를 복원하자 이제 비가 새는 지붕을 수선할 차례였다. 이 집은 스스키(억새)라는 가야 짚을 엮어 지붕에 올렸는데, 짚과 지붕장이가 모두 사라진 현시대에 지붕 수선 작업은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력을 요구했다. 저자는 거기서 다시 일본의 거대한 단면을 봤다. “일본이 초가지붕을 거부한 일은 비극이다.” 단순히 전통을 외면해서 그렇다기보다 교토의 황궁과 이세신궁의 지붕이 초가로 돼 있는 이 나라가 특수한 자연 소재를 버린 것은 “심장을 때리는 아픔”이라는 인식이다.
그저 집을 들여다봤을 뿐인데 그곳에서 저자는 사회를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처음 이야 계곡에 발을 들여놓았던 때에도 이미 환경은 파괴되고 있었지만, 이상한 점은 시민들의 저항이나 공론화가 거의 전무했다는 것이다. 파괴에 가속도가 붙자 저자는 “이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추한 나라”임을 깨달았다. 저자는 친구들이 일본을 방문하면 곤혹스러웠다. 친구들은 이렇게 물었다. “간판이나 전선, 콘크리트가 안 보이는 데는 없어?” 그의 눈에 이제 시골은 얼룩투성이다. 3만 개의 강과 하천 중 단 세 곳만 빼고 모두 댐이 설치됐으며, 해안선도 콘크리트가 덮고 있다. 일본이 산림 관리에 투자하는 수억 달러는 오로지 조림산업에만 쓰이며, 전깃줄을 매설하지 않아 거대한 철탑과 전봇대가 전국 각지의 도시 풍광을 지배하고 있다.
관능성과 형식미 사이에서 잡은 완벽한 균형
가부키에서 다도, 파친코로 펼쳐지는 이야기
일본의 자연과 거리 풍경이 망가지자 저자는 추상의 세계로 눈을 돌렸다. 가부키 배우 다마사부로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수년간 가부키 극장만 들락거렸다. 가부키는 일본 문화의 두 축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잡고 있다. 한쪽에는 에도시대의 자유분방한 성문화 즉 관능미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예술과 삶을 순수한 정수만 남을 때까지 다듬고 줄이는 형식미가 있다. 일본 예술은 이 두 경향이 경합을 벌여온 역사다.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는 황금 병풍이 인기를 얻다가 다도의 대가들이 출현하자 투박한 흙색 다기가 미학적인 것으로 떠받들여진 것이 그 한 가지 예다. 오늘날에도 이 경쟁은 계속된다. 한쪽에는 정원이란 정원은 모두 갈퀴로 긁어놓는 ‘멸균 과정’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파친코와 외설적인 심야 TV 방송이 버젓이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고 있는 식이다.
가부키에서 얻은 미적 감식안을 저자는 다도와 서예, 그리고 미술품 수집으로 확장시켜간다. 감식안은 일본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되어주지만, 그는 늘 경계인으로서의 자각을 잃지 않았다. 시골 폐가의 바닥을 쓸고 닦으며 한 줌의 빛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다가도, 도시의 세련된 문화 속으로 들어가 가장 정제된 형식미를 간취해내는 것처럼 이 책 전체는 늘 구석과 중심을 아우른다.
한때 비즈니스에 몸담기도 했지만, 저자의 직업은 미술품 수집가다. 본문에는 그가 어떻게 예술 감식안과 물건을 고르는 눈을 갖게 됐는지 그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는 처음 빈집을 구입했을 때부터 그곳을 오래된 톱, 바구니, 바가지, 반닫이, 대나무 조각으로 채워 민속박물관처럼 꾸몄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그는 교토 교외에 있는 가메오카에 폐가 하나를 더 구입했다. 교토로 가니 미술품 수집이 본격화되었다. 누구도 눈독 들이지 않아 가격이 저렴했던 시키시와 단자쿠에서 시작된 저자의 컬렉팅은 족자로 올라갔고, 병풍, 도자기, 가구, 불교 조각까지 눈여겨보게 되었다. 하지만 호주머니가 얇았던 터라 그는 값나가는 작품을 사기 위해 자기가 갖고 있던 것을 지인들에게 조금씩 팔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미술품 거래상이 돼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컬렉션 능력이 오로지 하나의 사실에 기대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의 아시아 미술에 대한 무관심! “그들의 무관심이 지속되는 한 나는 컬렉션을 계속 늘려갈 수 있다.” 그가 던진 농담 같은 이 한마디는 일본인을 향한 뼈아픈 지적이었다.
이 책 9장의 제목은 ‘교토는 교토를 싫어한다’이다. 저자는 과거 영광스러운 수도의 백성이었던 그들의 오만함에 감춰진 자기혐오를 읽어낸다. 그것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다. 왜냐하면 그들이 극도의 예의와 형식을 내세워 감추는 속내를 저자가 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장을 읽으면 저자의 시선이 일본을 어떻게 꿰뚫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지금 일본의 전원과 저잣거리에 있다. 이미 50년 가까이 됐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거사처럼 붓글씨를 쓰고, 서예 개인전을 열고, 교토의 아이러니한 골동품 가게와 얼굴을 맞대고 옛 그림을 감정하면서 살고 있다. 일본의 남은 잔상의 희미한 빛을 주워가며 걸으려면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