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기만 하면 뭔 재미? 미끄러지는 데도 선수!
한국 여자 최연소 알파인스키 올림픽 국가대표 강영서의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매일의 활강 기술
한국 여자 최연소 올림픽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강영서 선수의 피, 땀, 눈물을 담은 첫번째 에세이가 출간됐다. 눈도 거의 오지 않는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생후 29개월에 처음 스키를 신은 후, 쭉 설원을 운동장 삼아 성장해온 강영서. 그는 스키를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여기며 국내외 스키 대회를 누벼왔다. 2010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여자 초등부에서 네 개의 금메달을 따내 부산 스키의 미래를 책임질 체육 영재로 이름을 날렸고,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알파인스키 대회전·회전 종목 동메달을 수상했으며, 18세에 출전한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등, 연달아 세 번의 올림픽에 참가했다. 선수가 되고 쉼없이 정상을 향해 내달려온 셈이다.
『나까지 나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는 스키 선수 강영서가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낌없이 쏟아부은 노력의 기록이자, 두려움에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쓴 마음 근육 훈련기다. 올림픽 국가대표가 된 순간, 올림픽에 같이 나가기로 했던 동료와의 약속이 허무하게 좌절된 순간, 무릎 부상으로 십 수개월을 재활에만 매진해야 했던 순간 등, 지금의 강영서를 만든 결정적 순간과 그때의 마음을 글로 풀어냈다. 알파인스키 국가대표라는 자부심 뒤에 부상에 대한 두려움, 결과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늘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는 두려움을 동력 삼아 활강하며 나아갔다. 워밍업과 스타트를 거쳐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더라도 롱런에 대한 고민을 놓을 수 없었던 그의 글은 스포츠 선수의 기록을 넘어, 매 순간 크고 작은 도전과 실패를 겪으며 더 나은 나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삶과 공명하기 충분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재능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재능도 노력 없이는 결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다. 이제는 우연히 나에게 주어진 선물에 기대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다. 최고의 ‘무엇’이 되려고 하기보다 꾸준한 노력으로 완성될 최고의 ‘나’를 향해 가고 싶다.”_「재능의 함정」에서(123쪽)
타보니 알겠다.
용기는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의 강영서를 있게 한 ‘중.꺾.그.마’의 순간!
★ 비인기 종목의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1997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눈도 안 오는 도시에서 어떻게 스키를 타게 되었느냐고. 사실 스키를 시작하게 된 건 스키에 푹 빠진 부모님 덕분이었지만 스키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건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었다. 2010년 벤쿠버동계올림픽 개최 후, 사람들의 관심은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등 빙상 종목에 쏠렸지만, 그는 비인기 종목인 알파인스키에 승부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종목으로 바꿔야 하나? 과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막상 선택의 시간이 되자 머릿속이 단순해졌다. 스키만큼 재미있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그리고 잘하는 것도 없으니까. 오히려 이 현실을 기회로 삼기로 했다. 알파인스키계의 최초이자 최고가 될 기회라고 말이다.
★ 포부는 창대했으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2013년. 개인 코치도, 마땅한 훈련 공간도 없는데다가 학업까지 신경쓰느라 힘에 부쳤지만 상황 탓을 하기보다는 나름의 계획을 짜 맹훈련했다. 그 덕분에 2012-13 겨울 시즌부터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전 세계 1997년생 중 1위가 되어 올림픽이라는 꿈이 그의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기쁨도 잠시, 소치동계올림픽 출전을 한 달 앞두고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회복에 전념해 부족한 기량으로나마 마침내 소치의 눈을 밟게 된다. 국가대표 10년 동안 두 번의 무릎 수술, 지난한 재활 훈련을 겪으며 그는 크게 깨달았다. ‘아플수록 하루도 쉬지 말 것’ ‘두려워도 그냥 할 것’.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키를 탈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 월드컵을 향한 최초의 도전, 절실했던 프레젠테이션
2021년.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월드컵 알파인스키 회전 종목에 참가했다. 월드컵에 참가하기까지 체력과 기술 면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노력은 바로 없던 기회를 만든 것이었다. 국내 경기, 극동컵, 아시안게임 등 국내외에서 종횡무진 활약했지만, 그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유럽 선수와 승부를 겨루는 월드컵 출전이라는 꿈을 품었다. 하지만 비인기 종목에 대한 체육회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해 실전에 충분히 대비하기 어려웠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는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는 구체적인 훈련 계획과 비용이 담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협회를 찾아가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유럽 월드컵에 도전해볼 테니 코치 한 명만이라도 같이 갈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그는 한국 여성 알파인스키 선수의 월드컵 참가에 물꼬를 텄다. 한국 알파인스키의 미래를 위해 다리 하나를 놓은 것이다.
★ 날마다의 기록이 나를 구원한다
2024년.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자신의 기록을 엮어 책을 내는 것. 어릴 때부터 운동에는 자신이 있었다. 농구, 탁구, 심지어 포켓볼까지, 운동을 할 때면 늘 칭찬만 받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운동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세계 경기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움츠러들기도 했고, 부상이 잦아지면서 스키 타는 것이 무서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글이 그를 일으켜세웠다. 매일 밤 자기 전 일기와 운동 일지를 쓰면서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만나지 않을 수 있는지, 또 두려움이 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뜻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날에는 더더욱 마음을 바로잡았다. 그렇게 국가대표 10년 동안 써내려간 멘털 훈련 기록을 『나까지 나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에 담았다. 그 기록 덕분에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시험 점수도 아니고 올림픽에서의 결과도 아니다. 올림픽에 나가기 위하여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꾹 참고 뛰어본 기억, 두려워도 눈 질끈 감고 힘차게 출발해본 기억.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계속해서 열심히 살 수 있게 된다.”_「행복한 스키 선수」에서(175쪽)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을 사람은 나뿐이니까
내 선택을 사랑하기 위한 오늘의 특훈
잘 넘어지고 툭 일어나기!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그는 국가대표 올림픽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당당히 출전권을 따낸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경기에서 좋은 기록을 내고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격. 대회 전날 무릎 부상을 입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그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의 현장을 담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밝고 당차게 말한다. “속상하고 아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그의 운동신경은 타고난 것이었지만 ‘잘 넘어지고’ ‘잘 일어나기’ 위한 단단한 멘털은 결코 타고난 게 아니었다. 재활 훈련 못지않게 혹독하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도 좋아지지 않을 때, 좋아질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물리치료사에게 아프다고 운동을 쉬기보다는 몸의 전체적인 균형을 위해 매일 운동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고, 심리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약한 부분을 수용하면서도 극복하는 멘털 훈련을 부지런히 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뤄야 더 즐겁게, 더 멀리 갈 수 있음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아무리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꿈에 다가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나까지 나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는 두려움, 실패의 경험 때문에 길 위에 멈춰 있는 이들에게 말한다. 두려움 너머에 있을 빛나는 순간, 혹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더라도 그 과정에서 만날 성장의 순간을 믿고 두려워도 그냥 하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 그 메시지가 각자의 길에서 외로운 경기를 치르고 있을 모두에게 힘을 줄 것이다.
“앞으로도 스키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나 출발선 앞에서 적어도 나 자신에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오히려 두려운 게 당연하다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말해줄 것이다. 두려워도 해야 하니까, 그래야만 결국 할 수 있게 되니까. 우리의 꿈은 두려움 너머에 있으니까.”_「용기, 두려워도 하는 것」에서(195~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