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패배하는 쪽에 서기로 선택하다
열아홉 살, 쓰루미 슌스케는 미국의 전쟁포로 수용소에 있었다. 미국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교환선에 타겠느냐”고 물었고 그는 “타겠다”고 했다. 쓰루미 슌스케의 전 일생의 기로를 가른 결정이다. 그는 일본이 반드시 질 것이라고 예상했고, 일본의 전쟁은 정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자신은 “패배하는 쪽에 서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전쟁을 일으킨 ‘정부’에 반대하는 것과 별개로 일본은 자신의 뿌리이며, 그곳의 가족, 친구가 곧 자신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 ‘나라’가 패배할 때 함께 패배하는 쪽에 서 있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나라’, 곧 가족과 친구가 실제 전쟁으로 다치고 죽을 동안 미국 수용소 한편에서 편안히 지낼 수 없다는 결의이기도 했다.
쓰루미 슌스케는 자신이 이 결정을 끝까지 후회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러나 그는 이 결정으로 인해 민간인 신분으로나마 전쟁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일본 점령지에서 해군 군속으로 매일 간부를 위한 신문을 만들었고, 그 신문은 어떤 식으로든 일본군에 기여했을 것이다. 패전 후 그가 펼친 평화·반전 운동과는 관계없이 이 또한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말한 ‘나라’, 즉 가족과 친구와 함께 사선에 서며 그들을 배반하지는 않았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 때문에 자신이 반대하는 ‘국가’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했다. ‘나라’의 편에 서는 동시에 ‘국가’의 죄에 일부 동참한 그의 선택은 이 에세이 내내 반추되며 집단의 죄와 개인의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과 일본, 그 안과 밖
쓰루미 슌스케는 일본에서 ‘불량소년’으로 지내다 중학교를 중퇴 후 열다섯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미국에서 유학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학문적 정체성도 미국의 것과 가깝게 형성됐다. 그는 실제로 이 책에서 “여든다섯 살이 된 지금도 내 철학의 고향은 미국이다”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누구보다도 전후 일본에서 미국을 ‘지식의 종가’로 삼고 흉내 내는 데 비판적인 사람이었다. 이 에세이 곳곳에서 그는 정답을 정해놓는 일본의 학교 시스템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를 스승으로 좇는 일본 학계를 지탄하며 고정된 의미에서 ‘넘쳐흐르는 것’ ‘모호한 표현의 효과’ 등에 집중한다. 그런 것으로부터 사고가 넓어지고 탄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쓰루미 슌스케는 그러한 확장된 사고를 한 인물로 ‘존 만지로’ 등 러일전쟁 이전의 일본인이나 ‘크로버’ 일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 미국 문명 밖에서 새로운 탐구를 한 인물,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 ‘김학영’ 등 일본 내부의 이방인을 소개한다.
미국에서도 ‘하버드대학의 유일한 일본인 학부생’으로서 내내 외부인이었고, 일본에서도 학계에 종속되지 않고 일찍이 경계에 서서 ‘학제적’ 방법론으로 연구 활동을 했던 쓰루미 슌스케의 독특한 시각을 이러한 대목들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을 대립시키며 미국을 극복하는 데 역점을 두는 그의 시각에서 일본은 때때로 ‘미국에 패배한 나라’ ‘강대국에 점령된 나라’로서만 드러나곤 한다. 그 사이에서 진정으로 피해를 입었던 한국 등은 아주 잠깐씩 ‘그 바깥’으로서만 언급될 뿐이다. 이는 앞서 말했듯 “패배하는 쪽에 서 있고 싶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나라를 ‘패배한 나라’로 규정한 쓰루미 슌스케가 끝까지 스스로 안고 있던 모순이다.
여든, 망각하는 자의 사상
여든 살부터 여든여섯 살까지 연재한 이 에세이에서 쓰루미 슌스케는 ‘노화’ ‘죽음’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먼저 떠난 친구와 제자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고(일부는 전쟁에서 죽었다), 죽은 후의 자신을 상상하기도 하며,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를 토로하고, ‘망각록’이라는 것을 적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전쟁을 겪고 또 수십 년 동안 평화운동을 했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던 한 늙은 사상가의 내면이 솔직하게 서술돼 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도 자신의 내면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것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탱해주는 것들에 대해 썼다.
건망증을 자각한 후 망각록을 적어가면서까지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하고, 또 한편으로 ‘자신이 무엇은 잊고, 무엇은 기억하는지’ 알고자 노력했던 쓰루미 슌스케의 기록은 그 자체로 울림이 있다. 사실 여든의 노인이 써 내려간 이 에세이 자체가 그가 잊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망각록’이기도 하다. 그가 잊을 수 없던 것들, 소학교 친구들의 별명, 미국 하숙생 시절 작은 아파트에서의 티타임, 전쟁의 포화 속에서 겪은 죽음의 공포, 군병원에서 간호사들이 했던 연극, 전후 가족들과 찾아간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 대해 듣고 나면 자연스레 이러한 질문이 마음이 남게 될 것이다. 동시대 역사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마지막까지 기억할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