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대문학의 최고 지성
이언 매큐언이 묘사하는 박진감 넘치는 폭력의 세계!
2003년 2월 15일, 토요일 새벽 3시 40분. 영국 왕립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이자 뇌수술 분야의 권위자인 헨리 퍼론은 평소와는 다르게 이른 시각 잠에서 깨어나 창가로 다가간다. 안락하고 견고한 삶의 상징인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저택 삼층에서 샬럿 광장을 굽어보던 그는 우연히 불붙은 비행기 한 대가 시내를 가로지르며 추락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9·11 테러를 연상시키는 이 풍경은 불길한 하루의 전조처럼 그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고, 평범하게 흘러가리라 예상했던 일상은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끔찍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건강하고, 유복하고, 유능한 전문직 엘리트인 마흔여덟 살의 헨리 퍼론. 이언 매큐언이 묘사하는 퍼론의 모습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한 자신감을 갖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그의 잘생긴 아들 테오는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지만 이미 영국 블루스의 거장들을 감동시킨 천재 재즈 기타리스트이다. 또 그의 영리하고 아름다운 딸 데이지는 옥스퍼드에서 영문학 석사를 마쳤으며, 이십대에 벌써 영국 유수의 출판사에서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는 전도유망한 작가다. 그리고 재능과 사랑이 넘치는 미모의 변호사인 아내 로설린드는 첫사랑인 남편을 아직까지도 사랑한다. 게다가 장인인 존 그라마티쿠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마다 그의 시가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명망 높은 예술가다. 퍼론 가족은 한마디로 ‘완벽’하다. 그들은 남부러울 것도 부족한 것도 없으며, 무언가를 더 욕망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이처럼 질투 날 만큼 완벽하고 견고한 런던 상류층 삶을 누리는 그의 일상 속으로 전혀 예기치 못한 폭력과 범죄가 치고 들어온다. 동료 의사와의 스쿼시 게임을 즐기기 위해 메르세데스 S클래스를 몰고 거리로 나간 헨리 퍼론은 뒷골목 건달인 박스터가 모는 BMW와 사소한 접촉 사고를 낸다. 이날은 마침 “대영제국이 생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반전 시위가 벌어진” 날로, 시내 곳곳의 교통이 통제된 상황이고, 사고가 난 지점에는 통행하는 차들도 경찰도 행인도 전혀 없다. 쌍방 과실에 해당하는 사고였지만, 박스터 일당은 헨리 퍼론의 고급 차를 보고는, 돈을 뜯어낼 요량으로 사이드미러가 떨어져나간 것을 빌미로 협박을 한다. 그러나 헨리가 그들의 터무니없는 시비에 응대하길 거부하자 곧바로 주먹이 날아온다. 그제야 퍼론은 상대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는 생각을 하며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그런데 마침 그의 눈에 박스터의 안면근육 경련과 안구운동 장애 증세가 발견된다. 퍼론은 박스터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생기는 불치병인 헌팅턴 병에 걸렸음을 눈치 채고, 자신이 의사임을 밝힌 다음 병에 관한 얘기를 꺼냄으로써 박스터의 주의를 돌린다.
결국 자신의 전문 지식과 의사로서의 권위를 이용해 무사히 위기를 모면한 퍼론은 그날 하루를 계획한 일정대로 움직인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6개월 만에 파리에서 돌아온 딸 데이지와 장인어른, 아들 테오가 속속 집으로 도착한다. 그러나 퍼론의 저녁 만찬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한다. 맨 마지막으로 도착한 아내 로설린드 뒤에 칼을 들이댄 박스터와 그의 똘마니가 따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퍼론에게 모욕당했다고 생각한 박스터가 하루 종일 퍼론을 미행한 뒤, 마침내 가족이 모두 모인 저녁 시간에 칼을 앞세워 그의 집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박스터는 주먹을 휘둘러 장인의 코뼈를 부러뜨리고, 아내의 목에 칼을 댄 채 딸 데이지에게 옷을 벗도록 강요한다. 깡패들 앞에서 알몸이 된 딸의 모습을 보며 퍼론은 극도의 분노와 공포를 느낀다. 박스터 일당과 부딪혔을 때만 해도, 거리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시비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그의 온 가족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폭력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21세기의 핵심 담론‘전쟁’과‘테러’를 향해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03년 2월 15일은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벌어진 날이다. 『토요일』은 이날 하루 동안 헨리 퍼론이 생각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겪는 일상의 매 순간을 현미경적인 세밀함과 편집증적 집요함으로 묘사한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지극히 평범한 행위들, 면도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텔레비전을 보고 오줌을 누고 섹스를 하는 일상이 배경 화면처럼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로 ‘후세인’ ‘알카에다’ ‘지하드’ ‘전쟁’ ‘고문’ ‘학살’ ‘테러’ 등 비일상적인 폭력의 이미지가 침투해 들어온다. 개인의 삶은 날마다 터지는 수많은 사건사고와 범지구적인 테러로 인해 수시로 안전을 위협받는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실체로 부닥치지 않는 한, 그 어떤 폭력도 한갓 ‘이미지’ 또는 ‘담론’에 불과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주인공 헨리 퍼론은 첫새벽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전쟁 반대 시위 군중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전쟁에 진정으로 반대해야만 하는가?” 그는 기본적으로는 그 어떤 폭력이나 전쟁에도 반대한다. 하지만 그의 환자 중에 이라크 정권에 의해 목숨을 위협하는 모진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이라크 출신 고고학자가 있었고, 그의 증언을 통해서 퍼론은 독재와 학정을 일삼는 사담 정권의 극악무도함을 생생하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반전 시위에 대한 그의 정치적 태도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들었다.
과연 반전·평화 시위는 어떤 면에서나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는가? 사담 정권을 지상에서 궤멸시키는 방법이 전쟁뿐이라면 그 전쟁은 지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반전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유엔이 전쟁을 포기하고 이라크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면, 그 시간이 더 길어지는 만큼, 더 많은 무고한 이라크 국민들이 사담의 공포정치하에서 죽어갈 텐데? 그렇다면 그 생명들에 대해서는 어떤 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억압받는 이라크 국민들의 자유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전쟁과 테러에 노출될 자국민의 안전이 더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이며 섣불리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국제정치에 대해 고민하는 헨리 퍼론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사실 이라크 전쟁은 긴 시간 동안 격렬한 논쟁의 주제였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과 정당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테러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거대 담론 중 하나다. 이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관점이 가능하고, 무수히 많은 가정이 가능하지만, 현실 속에서 이 사태는 참전이나 반전이냐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는 문제다. 작가 이언 매큐언은 이 거대 담론의 이중성을 “모든 갈등이 해결된 평화와 비무장의 세계를 위해, 언제든 죽고 죽일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세계”라는 말로 날카롭게 요약한다. 그리고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관념에 대해 퍼론이 갖는 양가적 태도는 대다수 국가의 시민들에게 해당되는 불편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즉 정치적 폭력으로 고통받거나 살해될 위협이 없는 선진 소비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주의자의 평화 담론은 당면한 폭력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제3국의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을 빼앗는 공허한 외침은 아닐까?
폭력에 굴하지 않는 진정한 휴머니즘의 얼굴
이언 매큐언은 현대 문명사회에 다양한 폭력과 실존의 문제를 놀라운 지성과 세련된 언어 감각으로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작가로 명성이 높다. 그런 그가 2004년에『토요일』을 발표했을 때, 영국 사회에서는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9·11테러와 그에 뒤이은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국제사회가 떠들썩하던 시기에 발표된 매큐언의 소설은 일부 비평가와 언론에 의해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특히 『토요일』이 전쟁과 테러를 소재로 각기 다른 정치적 견해들을 교묘하게 조합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과연 매큐언의 주인공 퍼론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인가를 두고 찬반양론이 갈렸다. 그러나 정작 『토요일』은 이런 시대적·상황적 쟁점을 이슈화하기 위한 소설이 아니고,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언론은 이 작품을 “평범한 일상의 삶을 이루는 세세한 요소들이 어떻게 해서 전 지구적인 사건들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가디언》) 소설이며, “현대의 일상에 편재한 불안과 어둠을 탁월하게 그려내, 리얼리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차이트》)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토요일』이 파고드는 문제는 국제 정치나 전쟁과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가장 작은 세계, 즉 한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맞선 투쟁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와 인간 존엄에 대한 확인을 통해 폭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 관한 것이다. 의사인 헨리 퍼론의 가족을 위협하는 폭력의 주체는 전쟁도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납치도 자살폭탄 테러도 아닌, 별 볼일 없는 뒷골목 건달 박스터와 그 일당이다. 사실 대규모의 가공할 폭력이 자행되는 시대지만, 정작 한 개인의 삶을 악몽의 참극으로 바꿔놓는 것은 대부분 이와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종류의 폭력일 것이다. 매큐언은 바로 이 ‘현실의 폭력’에 주목한다.
건달 박스터는 부모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도 모자라, 이십대에 벌써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불치병에 걸린 인물로, 모든 것을 가진 남자 헨리 퍼론과는 대척점에 놓인 캐릭터이다. 그는 퍼론의 대저택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다가, 딸 데이지가 암송한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듣고 돌연 기분이 바뀌어 명랑한 바보가 된다. 이처럼 심리 상태가 돌변한 것은 그가 앓고 있는 병이 뇌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으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퍼론과 아들 테오는 박스터를 제압한다. 이 과정에서 박스터는 머리를 크게 다치고,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 뇌수술을 받게 되는데, 이때 퍼론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직접 수술을 집도한다. 그리고 그는 박스터가 재판을 기다리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감옥에서 허비하지 않도록, 경찰에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줄 것을 요청하리라 결심한다.
퍼론의 이러한 결정은 ‘휴머니즘’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퍼론은 박스터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치는데, 그의 눈동자에서 어떤 비난을 읽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당신은 그렇게 많은 걸 가졌는데, 이미 너무나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무엇 하나도 해주지 않지?” 이것은 사실 박스터의 목소리라기보다는 퍼론 자신의 마음속에서 들리는 양심의 소리에 가깝다. 헨리 퍼론은 설령 박스터가 자신의 딸을 욕보이려 했고 아내의 목에 칼자국을 남겼을지언정, 그가 어떤 의술로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라는 사실에 의사로서 측은지심을 느낀다. 또 나를 위협한 상대에 대해 증오나 복수심을 갖는 대신,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그가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겠다는 선의의 결단을 내린다. 이것은 퍼론이 국제 정세나 반전 이데올로기에 대해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개념이 아닌 실제 상황 속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인도주의적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값싼 동정심이나 요란을 떨며 평화 수호를 외치는 ‘구호’로서의 자애심이 아니라, 폭력 앞에서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희생자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의지적 선택이다. 심지어 깡패인 박스터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내가 상대를 용서하는 아량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상대에게 용서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퍼론의 태도에서는 구도자적인 겸양까지 엿보인다.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치밀하고 완벽한 명장의 걸작
480쪽에 달하는 긴 분량의 『토요일』은 ‘외과의사 헨리 퍼론의 단 하루’를 편집증적인 집요함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의 폭과 깊이는 예사롭지 않다. 문학,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더불어 생명의 가치와 인간적 존엄성 그리고 휴머니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언급되고 주장되며 또 반박된다. 이렇게 주인공의 생각, 상상, 관념, 의식과 무의식이 현실의 사건들과 씨실과 날실처럼 끊임없이 교차하며 전개되는 『토요일』은 결코 만만하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에 따른 자동기술법을 취한 것도 아니고, 과도한 자의식으로 넘쳐나는 현학적 요설도 아니며,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사실주의 소설은 더욱 아니다. 아니, 오히려 『토요일』은 긴장과 복선과 반전과 스펙터클로 가득한 짜릿한 스릴러 소설에 가깝다.
작가 매큐언은 소설 속에서 헨리 퍼론의 입을 빌려 자신의 문학적 목표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 그는 가령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해 “불충분한 상상력의 소산이자 (작가로서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한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장애나 경이로움을 ‘그럴 법하게’ 재현해야 한다는 요구를 회피하는 어린애 같은 태도일 뿐이다.”라고 퍼론은 못 박는다. 이런 과격한 발언은 소설 속에서 곧장 딸 데이지의 목소리를 통해 비판되지만,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탁월한 ‘핍진성’으로 그려내고 있는 매큐언의 소설은 이런 기준으로 보았을 때 ‘대단히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토요일』은 여러 가지 점에서 작가인 매큐언의 ‘입장’을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고, 그런 만큼 의미 있는 소설이다. 매큐언은 이 년에 걸쳐 자료를 조사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이 작품을 집필했는데, 긴장감 넘치는 수술 장면에서부터 병원의 소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뇌수술 전문 외과의사의 ‘어떤 하루’를 완벽하게 복원해내고 있다. 특히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별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간 한 단어나 한 문장이 사건의 중요한 복선이었음을 거듭 깨닫게 되고, 소설의 문장들이 조각 퍼즐처럼 차츰차츰 쌓여나가면서 거대한 그림을 완성해나가고 있음을 발견하면서, 작가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 인물의 하루를 통해 현대 문명사 전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은 단 한 문장, 단 한 장면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고, 모든 단어들이 거대한 모자이크의 조각들처럼 치밀하고 완벽하게 배치된 명장의 걸작이다.
『토요일』에 쏟아진 언론의 찬사들
『토요일』은 현대 문학의 중요한 사건이다. 가장 안전하고 굳건하던 삶이 한순간
가장 끔찍한 재앙으로 돌변하는 과정을 냉정할 만큼 침착하게 보여준다. _타임
9·11 테러 이후 지금까지 출간된 소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작품.
매큐언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_뉴욕타임스
평범한 일상의 삶을 이루는 세세한 요소들이 어떻게 해서 전 지구적인 사건들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가의 집요함이 돋보인다. _가디언
현대의 일상에 편재한 불안과 어둠을 탁월하게 그려내
리얼리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_차이트
지은이_이언 매큐언Ian McEwan
『체실 비치에서』 『속죄』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현대 서구 문학계의 중요한 작가로 떠오른 이언 매큐언은 1948년 영국 서리 지방 알더샷에서 태어났고,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싱가포르와 북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랐다. 1970년 서섹스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한 후,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소설가 말콤 브래드버리의 지도하에 소설 창작을 공부했다. 1975년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이 책으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했다. 1998년에는 『암스테르담』으로 부커 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체실 비치에서』 『속죄』 『이노센트』 『암스테르담』 『시멘트 가든』 『몽상가』 『사랑의 신드롬』 등을 발표했으며, <농부의 점심식사> <새콤달콤> <착한 아들> 등 여러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여성학자인 페니 알렌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이혼하고, 1997년 기자인 아날레나 매카피와 재혼하여 런던에서 살고 있다.
옮긴이_이민아
책 기획자 및 영어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즉흥연기』 『허울뿐인 세계화』 『해석에 반대한다』 『채링크로스 84번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2007년 9월 10일 발행
•ISBN 978-89-546-0386-7 03840
•128 * 188 | 480쪽 | 13,000원
•담당: 강건모(031-955-2634, redlily@munhak.com)
그 속에서 당신의 토요일은 과연 얼마나 안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