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신작 소설집 출간
이문구의 신작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가 출간되었다. 『유자소전』(1993)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1991년에 발표하여 제9회 ‘흙의 문예상’을 수상한 「장곡리 고욤나무」를 비롯한 8편의 ‘나무’ 연작 단편들이 실려 있다(「더더대를 찾아서」 역시 ‘―나무’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뿐, 같은 ‘나무’ 연작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90년대 이후 변화된 농촌의 모습과 농민들의 의식 변화에 글쓰기의 초점을 두었다고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90년대의 농촌 풍경과 그 속에서의 대단할 것도 누추할 것도 없는 사람살이를 날카로운 풍자와 풍성한 해학으로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집의 제목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김명인의 시 「의자」에서 따온 것이다.
홍시의 붉은 단물을 쏙쏙 빨아 삼키듯 읽어가게 하는 문체의 힘
이문구의 문학세계를 특징짓는 가장 강력한 자원은 충청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문체다. 유려한 토박이말과 생생한 입말이 살아 숨쉬고, 곳곳에서 날카로운 풍자와 풍유가 번뜩이는 그의 문장은 흐르는 물처럼 막힘이 없이 유장하다. 그의 문장에선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말맛’이 느껴진다. 이문구 특유의 독특한 입담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예외 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농촌의 갑남을녀, “수더분하면서도 고집스럽고, 학식은 짧지만 제반 일상사에서 경우 하나는 깍듯하게 바”른 그들이 벌이는 어깃장과 대거리의 입씨름판은 우리네 농촌의 토속적인 분위기를 현장감 있게 담아낸다. 소설가 신경숙 씨는 이문구의 문체를 두고 “홍시의 붉은 단물을 쏙쏙 빨아 삼키듯 읽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거니와 그 진경이 이번 소설집에서도 약여하다.
삶의 존엄에 우뚝 뿌리내린 문학의 진경!
“농촌 최후의 시인”이라는 이문구에 대한 평가(유종호)가 말해주듯,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 실린 8편의 소설 역시 농투성이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이번 소설집에서 그리는 농촌의 세태는 『관촌수필』이나 『우리동네』의 그것과는 세월의 간격만큼이나 다르지만, 그 속에서 사람살이의 차등 없는 존엄이나 줏대를 보아내는 작가의 시선은 일이관지하며 여전히 깊고 의뭉하다.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우루과이라운드 등 급변하는 세상 풍파에 휩쓸리고, 휴대폰과 러브 호텔, 노래방 등 몰려드는 도시 문명의 홍수 속에 몸살을 앓는 90년대의 농촌 현실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한편으로, 알 것 다 알고 “제 할말 다 하고 사는” 늘 그만큼의 그들(우리들)이 이번 소설집 속에는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8편의 단편 중 7편의 제목엔 전부 ‘나무’가 들어 있다. 그러나 제목에 나오는 나무들은 우리가 흔히 ‘나무’ 하면 떠올리는 소나무나 전나무같이 크고 우뚝한 나무가 아니라 싸리나무, 으름나무, 고욤나무 등 이름조차 낯설고 생김새도 볼품없으며 그다지 쓸모도 없어 보이는 나무 같지도 않은 나무들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 역시 이 나무들처럼 ‘존재도 희미한’ 농투성이 갑남을녀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 나무 같지도 않은 나무들의 삶은 작가 이문구에 의해 저마다의 존엄과 줏대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인간 진실의 국면을 풍성하게 열어 보인다.
저 당당한 일년살이들의 세상! 말의 숲, 인간의 숲!
첫번째 작품 「장평리 찔레나무」는 장평리 부녀회장이자 기본바로세우기운동 장평분회 회장인 김학자 회장과 도시에 나가 사는 김회장의 속물적이고 뻔뻔스런 시동생 이은돈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얼핏 보면 가볍고 우스워 보이는 갈등의 이면에는 IMF 시대의 세태 풍경과 도시 사람들의 건강 식품 공급 장소로 전락해버린 농촌의 모습, 변해버린 농촌 사람들의 인심이 드러나 있다.
「장천리 소태나무」의 주인공은 얼떨결에 ‘사건반장’이란 감투 아닌 감투를 쓰게 된 이송학 씨. 이 단편에는 휴대폰, 러브 호텔, 카섹스, 몰려드는 도시 낚시꾼 등 새로운 문명의 홍수로 몸살을 앓으며 점차 변해가는 농촌의 풍경이 소태나무같이 쓴맛이 느껴지는 유머로 그려져 있다.
중편 「장이리 개암나무」는 국제무역기구(WTO), 국제화 시대 운운하며 남의 묘를 파내 기우제를 지내려는 농민들과 그에 맞서 전통적 미덕을 지키려는 개암나무 주인 전풍식의 이야기이다. 복잡한 사회 현실 속에서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농민들의 씁쓸한 모습과 미래 세대에 거는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장동리 싸리나무」는 시적인 문체와 서정성 넘치는 분위기로, ‘나무’ 연작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풍경을 그려 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하석귀는 낙향해서 저수지 근처의 시골집에 사는 은퇴한 공무원이다. 그의 조용한 내면 성찰이 저수지의 아름다운 물빛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살아남은 줏대 있는 홍쾌식 노인의 평생의 신조가 담겨 있는 「장석리 화살나무」와, 농토를 지키려는 이상만 옹과 농민운동에 종사하는 그의 사위 은산의 얘기를 통해 농토 개발과 농민운동의 문제를 풍자한 「장척리 으름나무」, 불합리한 농지 정책과 자식들의 외면 속에 목매어 자살한 70대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장곡리 고욤나무」 등 편편에서 세태와 인간 진실은 둘이 아닌 하나로 작가의 문체 속에 녹아 있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의 각 소설 제목에 쓰인 ‘개암나무’ ‘으름나무’ ‘고욤나무’ 등은 등장인물의 처지나 성품을 암시하기도 하고 부정적 인물이나 세태에 대한 비유로 쓰이기도 한다. 각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키 작고 못생긴 나무들만큼이나 별볼일 없고 능력도 없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 가치가 희미”한 이들이다. 서구 문명과 유용성만을 따지는 자본주의 문명에 밀려 점차 사라져가는 개암나무나 으름나무, 고욤나무처럼 주류에서 비켜서 있는 외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저들 나름대로의 뚜렷한 ‘자기 줏대와 자기 고집’을 갖고 ‘숲을 이루는 데’ ‘제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나무들이다. 이 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목으로 쓰인 나무는 나무이되 나무 같지 않은 나무이지요. 그렇다면 덩굴이냐, 덩굴도 아니지요. 풀 같기도 한데 풀도 아니고 그러나 숲을 이루는 데는 제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나무이지요. 꼭 소나무나 전나무, 낙엽송처럼 굵고 우뚝한 황장목 같은 근사한 나무만이 숲을 이루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고욤나무는 과일이지만 과일 축에 못 끼는 나무 아닙니까. 개암은 옛날 제삿상에 꼭 오르는 과일이었지만 지금은 딸기나 키위, 외국에서 근거 없이 들어온 바나나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 지 오래되었지요. 한마디로 말한다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 가치가 희미한, 그러나 자기 줏대와 자기 고집은 뚜렷한 무지렝이 촌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총선에 입후보한 사람들 보십시오.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그러나 똑똑한 사람들만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은 아니지요. 우리처럼 돈 없고 힘 없고 빽 없는 일년살이들도 숲을 이루는 데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시인 유용주와의 인터뷰에서(『문학동네』 200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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