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치열한 모색과 성찰.
독문학자 최문규 교수의 두번째 평론집 출간!
포스트모더니즘, 해체론 등 서구의 첨단 문학이론을 소개하는 글을 꾸준히 발표해온 소장 독문학자 최문규 교수의 두번째 평론집 『문학이론과 현실 인식』이 출간되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문학 계간지 및 각종 매체에 발표했던 열두 편의 논문들을 수정·보완하여 묶은 이번 평론집은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학이론과 현실 인식’의 관계라는 주제 아래 독일 초기 낭만주의에서부터 최근의 해체론까지의 이론적 흐름을 꿰뚫고 있다. 이번 저서는 문학사 및 문학비평과 마찬가지로 문학이론 또한 현실 인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오늘날은 특히 그러한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문학의 현실 반영을 강조하던 80년대 리얼리즘 논쟁에 이어 90년대 초반 유행처럼 불어닥친 포스트모더니즘이 거품처럼 사그라들고, 문학 전반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이론과 실천 모두 표류를 거듭하고 있는 이때 최문규 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편견 없는 시선으로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을 고루 살피고 성실한 독서를 바탕으로 한 부단한 성찰로 근래에 보기 드문 깊이 있는 사유를 보여준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진지한 학문 정신을 토대로 하면서도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은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암중모색하는 문학도들에게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이다.
문학의 미래적 모험에 필수 불가결한 지도와 나침반!
저자는 서두에서 이 책은 “‘체계적인 전체’의 틀을 가진 전통적 문학 이론서와 달리, 마치 다양한 파편 조각들이 우연히 서로 만난 듯한 모습을 취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성실한 독자라면 겉으로 드러나는 체계나 구성 원칙 대신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내적 연관성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선 문학과 사회의 차이에 대한 모색에서 출발하여 은유, 아이러니, 가상과 같은 문예학적 개념에 대한 분석으로 넘어간다. 이때 헤겔에서 데리다에 이르는 철학자 및 슐레겔, 노발리스를 비롯한 독일 초기 낭만주의자들과 현대 독일 문예학자들의 이론이 망라된다. 나아가 ‘예술을 위한 예술’ 혹은 현실 도피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난해한 현대시들에 대한 새로운 독서 방식을 보여주는 한편, 문학과 현실의 긴밀한 결합이었지만 왜곡된 양상으로 나타난 파시즘 문학의 담론을 재조명한다. 또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건 야만적이다”라고 말했던 아도르노의 테제를 수정하게 만든 독일 현대시인 파울 첼란의 시를 분석한다. 여기서는 언어의 이중성, 텍스트의 모순을 은폐하지 않고 드러내는 새로운 해석의 예를 제시한다. 「가상으로서의 예술:니체의 “예술 형이상학”」에서는 이성 중심주의적 문명 발전을 최초로 냉혹하게 비판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부로 평가받고 있으며 올해로 탄생 백주년을 맞아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니체의 현재적 의미를 밝혀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비판이론, 해체론, 포스트모더니즘 등 한때 각광받았으나 제대로 수용되기도 전에 지나간 과거로 치부되어버린 담론들에 대해서도 그 뿌리에서부터 전개과정까지 끈질기게 천착한다. 끝으로 「기술공학적 매체 시대와 예술 개념의 변화」에서는 현대의 예술 및 문학이 처한 가장 현재적인 상황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지칠 줄 모르는 학문적 탐색은 모두 문학(이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서울대 철학과 김상환 교수가 지적하고 있듯이, “언제나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지점을 지”나는 최문규 교수의 글에서 우리는 “문학과 현실이 관계 맺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읽을 수 있는 동시에 문학의 미래적 모험에 필수 불가결한 지도와 나침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섣부른 ‘결정’을 유보하는 깊이 있는 사유
낭만주의에서 해체론까지 전개된 문학적 철학적 사유의 흐름을 꿰뚫고 난 저자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는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적이라는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린다. 낭만주의에서 해체론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문학과 현실의 관계는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적 속성과 함께 끊임없는 전복의 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문학이 현실에 회의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띨 경우, 현실 도피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문학 내적인 차원에서 볼 때 곧 문학적 심미성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편 문학이 실천적인 모습을 취할 때에는 현실 참여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문학 내적인 차원에서 볼 때 문학적 심미성을 고갈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문학(이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단정적인 결론을 유보한다. “결정”의 압박 내지 “결단론”이 파시즘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임을 언급하면서 미결정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러나 최문규 교수가 안내하는 이론의 협곡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지나온 길의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것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큰 기쁨 중의 하나이다.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치열한 모색과 성찰--
독문학자 최문규 교수의 두번째 평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