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본다. 큰 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친 그는 지금 핑그르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광장』중에서
한국 현대소설사의 기념비적 작품 『광장』이 1960년 10월 『새벽』지에 발표된 이래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동시에 작가 최인훈은 올해 1학기를 마지막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정년퇴임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1977년부터 강단에 섰으니 25년 만이다. 이 두 가지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예대 문창과 출신 제자 작가 20명이 헌정 소설집을 마련했다.
한 교실에 모인 25년의 시간들
"학생들과 함께한 생활은 지난 25년간 제 삶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이상의 사회생활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라는 최인훈의 돌아봄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하다. 최인훈의 문학적 세례를 받은 뛰어난 제자 작가들이 그 자랑스러움의 근거일 터. 8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예대 문창과 출신 작가들이 한국 소설의 중심부로 진입하기 시작했음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신경숙, 하성란, 마르시아스 심, 정길연, 유정룡, 하성란, 윤성희, 심석구, 강영숙 등등 이들의 이름을 제하고 오늘의 한국소설을 이야기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들 서울예대 문창과 출신 제자 작가들 중 20명이 신작단편을 써서 헌정 소설집을 묶어낸 게 바로 이 책 『교실』이다. 이 소설집은 『광장』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헌정의 의미가 일차적인 것이지만, 최근 활발한 작품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젊은 작가 20인의 작품 세계를 한 자리에 모았다는 의미도 크다 하겠다.
따로 또 같이, 쪽빛 소설의 바다로
이 책을 읽으면,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모자이크가 이렇고, 서로 빛깔이 다른 천조각을 덧붙인 우리의 상보도 이럴 것이다. 이 책에서 만나는 젊은 소설가들은 한 분의 스승에게서 배웠다. 그만큼 그들은 같고 또 따로이다. 그렇다고 외롭게 여길 일도 아니다. 따로이지만, 또 같이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굳이 한마디로 자리매김할 일이 아닌 것도 당연하다. 그렇더라도 독자들은 마냥 즐거운 것을 어쩌랴.
이 책에서 만나는 젊은 소설가들의 글쓰기는 섬세하다. 스스로 만든 언어의 조직은 치밀한 것이라서 사소한 것도 흘리지 않는다. 그들 또한 여간해서는 눈치 보는 일도 없고, 누구를 따라 길을 나서지도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집을 나섰고, 길을 갈 따름이다. 단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가는 길에서 부디 발이나 삐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젊은 소설가들은 역동적이다. 움직이는 타깃이다. 도대체 멈추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용케도 이 한 권의 책에서 만났다. 잠깐 붙잡힌 것이다. 선배와 후배 사이로 20여 년의 시간을 두고 놓여 있지만, 이처럼 한 곳에서 만난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우리나라 소설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친절을 베풀고 있다. 아울러 요즈음 젊은 소설가들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이 책은 대답하고 있다. -윤희상(시인)
*신국판/472쪽/값 9,000원
*2001년 5월 18일 발행/ISBN 89-8281-391-8 03810
*담당편집: 김현정, 장한맘(927-6790, 내선 217, 214)
최인훈의 <광장>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예대 제자 작가 스무 명이 헌정 소설집을 발간했다. 신경숙, 하성란, 마르시아스 심, 정길연, 유정룡, 하성란, 윤성희, 심석구, 강영숙 등 섬세하고 역동적인 젊은 작가들의 신작 소설들은, 스승의 이름 아래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