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방』 등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시적 울림의 문체, 풍성한 묘사의 소설 언어로 일구어냄으로써, 한국문단에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온 작가 신경숙의 네번째 장편소설 『바이올렛』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1992)를 모태로 한 이 작품은 동명의 단편을 모태로 빚어낸 장편 『외딴방』의 경우를 자연스럽게 상기시킨다. 소설 속 분신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유다를 때, 작가는 아예 그 인물과 함께 살아버리는 걸까. 그래서는 못다 한 말들, 새롭게 솟아나는 말들이 다시 소설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돌보아주려는 걸까. 독특한 글쓰기 리듬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그 마음을 이렇게 적고 있다.
오산이.
이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준 지가 꼭 일 년이 되었다. 오산이는 내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의 분신이다. 이 여자를 바로 다시 세상에 내보내려 했는데 다른 작품에 밀려 이제야 이루었다. 빚어지지 못한 채로 내 마음속에서 십여 년을 함께 산 셈이다. 오해 많은 세상에 이 여자를 내보내려 하니 미안해 죽겠다. 제대로 맛있는 것도 먹이지 못했고, 좋은 옷도 입히지 못했으며, 종내는 꿈과 욕망조차 바스라지게 했으니 이 여자의 어미나 되는 듯 마음이 쓰리다. 이 여자를 통과해가는 시선 속에서 이 여자가 새로 부활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작가 후기에서
"마음속 십여 년"은 그런데 길다. 그 길이는 장편 『바이올렛』의 길이라기보다는 「배드민턴 치는 여자」 속의 그녀를 다시 세상에 내보내는 작가의 시선을 깊고 담담하게 만든 길이었음을 독자는 확인한다.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은 "잊혀져도 좋을 이야기"(8쪽)라고. 그러므로 다시, 씌어질 이야기라고. 그녀, 오산이는 "헤아릴 수 없는 거리와 도저한 시간을 헤치고 오늘 나를 방문"하는 저 무수한 가녀린 익명의 존재들,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 거리는 소설의 서장에 전경화되어 있는 전지적 시점의 조감을 통해 『바이올렛』에 무한한 시공의 양감(量感)을 부여하며 한 여자의 비범한 욕망기(記)로부터 존재의 보편적 음율을 찾아낸다. 바로 그만큼이 "마음속 십여 년"의 길이와 거리였다면 독자도 작가도 잘 기다린 셈이다.
작가는 그녀의 잘린 혀를 복원하고 그녀가 내지르는 침묵의 비명에 귀 기울이며 필사적으로 그녀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태고부터 조용히 자신의 부당한 운명을 견디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들을 잊은 이후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부름에 응답하는 신경숙의 문체는 한없이 더듬거리고 무수히 망설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로 인해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 소설이란 무언가에 관한 하나의 답변이다. (문학평론가 신수정)
바이올렛, 가녀린 아름다움과 세계의 폭력성의 조우
이 작품에서 표제인 바이올렛은 다양한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사전의 정의대로 꽃의 일종이며, 보라색이라는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고, 수줍은 여인을 은유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것은 기표(signifiant)의 유사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폭력(violence)과 연결된다. 작가는 이런 다채로운 의미가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여러 삽화와 비유를 통해 긴밀하게 형상화해놓고 있다. 또한 바이올렛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비극적 운명의 여인 이오와 중첩됨으로써 그 내포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한복판, 그 익숙한 공간이 돌연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모습을 달리해가며 벌어지는 신화적 비극이 상연되는 무대로 탈바꿈한다. 따라서 바이올렛의 보랏빛은 수난의 핏자국이자 소외된 자, 억울린 자의 멍자국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동시에 처절하며, 애잔한 동시에 섬뜩하다.
단 한번의 눈길, 단 한번의 손길... 욕망의 생성과 바스라짐
『바이올렛』의 그녀, 오산이는 한순간 온몸을 덮쳐온 격렬한 욕망에 붙잡혀 도시 한복판을 걷는다. 걷고 떠돈다. 몸을 기울여도, 아무리 내몰아보려고 해도 그 욕망은 나가지 않는다. 포크레인에 그 욕망의 몸을 부숴버릴 때까지. 그리고 그녀는 이 거리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이 비범한 욕망의 오디세이 끝에서, 포크레인 묘지 안에서 그녀는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바이올렛』은 바스라진 욕망의 이야기이되, 그 모든 욕망의 좌절과 글쓰기의 욕망이 꼬리를 물고 다시 소설 속으로, 문학 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글쓰기의 자전(自傳)이기도 하다.
그 여자, 오산이의 기억 밑바닥엔 어린 시절 미나리 군락지의 푸른 풍경이 있다. 그 풍경은 그러나 상처다. 등에 푸른 반점을 지닌 친구 남애로부터 거부당했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봉인되어 있다. 옹이진 상처는 끝끝내 그녀의 삶을 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적 부재, 늘 그녀를 혼자 두고 떠나버렸던 어머니. 이 상처의 기억들은 그녀를 식물처럼 살게 한다. 목덜미를 잡아채는 듯한 상처의 기억 때문에, 타인을 향해 쉬 손내밀지 못하는 그 여자의 꿈은 언제든지 글을 쓸 수 있는(그녀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하며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다독거린다) 넓은 탁자를 하나 갖는 거지만, 그 꿈은 멀리 있다. 출판사 오퍼레이터 면접에서도 거절당한다. 그녀는 세종문화회관 옆 화원에 "꽃을 돌볼 종업원"으로 취직한다.
여름의 어느 날, 이 꽃집에 잡지 화보에 실을 바이올렛을 찍으러 사진기자가 찾아오고 이후 그들은 밤거리에서 재회한다. 사진기자가 무심히 던진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알아. 당신 내 카메라 바라보느라 눈 내리깔고 있을 때, 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눈썹도 있구나, 내내 생각했지. 내 마음 몰랐지요."(156쪽)라는 말 한마디, 무심히 그녀의 팔뚝을 쓸어내린 그 남자의 손길에, 그때껏 침묵에 잠긴 채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녀의 내면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불길에 휩싸인다. 그때부터 줄곧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 남자. "그녀는 의자 위에서 몸을 약간 기울어지게 해본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나가지 않고 그녀 몸 속에서 함께 기울어진다. 물이 범람하듯 하룻밤 사이에 그녀의 의식 속으로 진입해버린 그 남자. 그 남자로 인해 허둥거리고 있는 그녀."(166쪽)
마치 수천 년 전부터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처럼 한꺼번에 솟아오르는 정염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되지 못한 채 그녀를 하염없이 서성이게 한다. 걷잡을 수 없이 그에게로 향하는 욕망에 얼굴이 붉어질 때면 슬그머니 꽃집을 빠져나가 그 남자의 회사가 바라다보이는 공터에 바이올렛 한 포기를 꾹꾹 눌러심고 돌아오는 그 여자에게 바이올렛은 이미 그녀의 분신이자 사무친 욕망의 대체물로도 여겨진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씨의 지적처럼 "제비꽃으로 널리 알려진 이 꽃의 이미지는 『바이올렛』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 구실을 한다. 그 남자가 찍은 사진 속에서 그녀와 바이올렛은 하나가 된다." 그렇게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그 남자를 제외한 그녀의 나머지 삶 전체는 정적이 되어버린다. "그 남자에게로의 이끌림은, 가끔 한밤중에 잠이 깨었을 때, 그녀 가슴을 훑고 지나가던 참담함, 그 불안을 막아주던 식물들의 위로까지도 뛰어넘어 지금 그녀를 길게 울게 하고 있다. 추억이 되지 못하고 파릇파릇한 슬픔으로 전이된 욕망. 그녀는 그 욕망을 껴안고 귓불이 붉어진 채 어둠 속의 화원 안에서 길게 울고 있다."(227쪽)
자신의 태생지, 치유받지 못한 상처의 장소를 찾아간 그녀는 추억의 부재만을 확인하고 돌아온다. 미나리 군락지도, 어린 시절 그녀를 밀어냈던 남애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다시 그녀가 가꾼 바이올렛 꽃밭을 찾은 그녀는 이미 시들어 말라비틀어진 꽃들에게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물을 주고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그 남자를 찾지만 이미 그녀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그 남자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삶의 절벽까지 내몰린 절박함으로 그녀는 보란 듯이 엉뚱한 곳을 헤매다, 결국엔 또다른 욕망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생은 없다. 무참히 내동댕이쳐진 채 그녀는 어긋난 삶의 실마리를 더듬어본다. "슬픔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또렷한 기억이 있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기도 전에 다가온 그애의 돌연한 멸시를 갚아주기 위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 내 죽음만이 그애의 마음을 돌이켜놓을 것이다, 언젠가 죽어야 한다면 지금 여기서 죽으리라. 그 푸른 영상 속의 야생 미나리 군락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여기서 어느 날이든 죽으리라, 너의 미음을 돌이켜놓기 위해서라면, 돌이켜놓을 수만 있다면 난 죽으리라."(271쪽)
혼신의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가슴 먹먹한 감동
그 여자, 오산이를 따라가는 내내 독자의 마음은 아슬아슬하다. 조심조심 내려가 절망의 밑바닥에 발을 딛고야 말 때까지 위태롭게 이어지는 시간은 저릿하기까지 하다. 지금이라도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바로 우리 옆에 늘 존재하는 여자인 것만 같기에 그 애틋함은 더 간절해진다. 그러나 그녀 곁에 존재하는 또다른 그녀의 분신 수애나 건강한 낙원의 공간을 일구는 벙어리 화원 주인을 통해 작가는 삶의 환한 국면을 놓치지 않는다. 아마도 이들, 화원과 농원의 인물들은 늘 마지막 시선에서는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신경숙 소설의 아름다운 현신일 터이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오늘 여기에 있는 나를 일깨우는 영화를 보거나 노래에 귀를 기울이거나 글을 따라 읽을 때면 새삼스럽게 역사의 지층 속에 사장된 익명의 존재들이 지녔을 슬픔이나 고독을 생각하게 된다. 뿌리깊은 소외와 단절을 겪으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거리와 도저한 시간을 헤치고 오늘 나를 방문해서 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들 속에는 그들의 영혼이 스며 있다고 생각한다. 잊혀진 그들이 끊임없이 걸어오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이끌어내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것이 영화이며 노래이며 소설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글쓰기는 결국 이미 사라진, 지금 있는, 앞으로 탄생할 미미한 존재들과의 쓸쓸한 조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깊은 밤중에 읽는 몇 줄의 아름다운 문장에 마음이 흔들리듯이 누군가 내 소설 속의 하찮은 존재로 인해 이 고독한 현실 속의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고 바스러진 과거를 껴안게 되고 타인에게 한 발짝 다가가고 싶은 충동으로 마음이 흔들린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소망스러운 일은 없겠다."
작가의 겸손한 소망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혼신의 힘으로 작품 속에 쏟아져 있음을 안다. 망설이고 더듬거리며 서서히 존재의 심연과 대면해가는 신경숙의 문체, 온몸으로 밀고 나간 단어 하나 하나의 밀도가 그 가슴 먹먹한 혼신을 증명한다.
신경숙의 소설에선 처음부터 독자를 휘어잡아야 한다거나 도중에서 독자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나 잔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느릿느릿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한테까지 한눈을 팔며 소요(逍遙)하듯 따라가게 만든다. 짜임새 없이 마음가는 대로 쓴 것 같은데 읽고 나면 바로 그 점이 이 작가만의 구성의 묘였구나 싶어 못내 감탄을 하게 된다. 나에게 신경숙 문학의 매력은 식물이 주는 위안과도 같다. - - 박완서(소설가)
* 2001년 8월 9일 발행 / ISBN 89-8281-416-7 03810
* 신국판 / 312쪽 / 값 8,000원
* 편집담당 : 김현정, 장한맘(927-6790, 내선 217, 214)
『바이올렛』은 시선의 감옥에 갇힌 우리 안의 그녀에게 자유를 선사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녀로 인해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하나의 답변이다. -신수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