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바다는 전혀 다르다. 살아 있는 내가 죽어 있는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밖에 보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내 삶은 죽음을 억압하는 일 - - 내 뚝심으로 죽음을 삶의 울타리 안으로 밀어넣는 노력 외에 다른 것이 아니므로. 어느 날 죽음이 나비 날개보다 더 가벼운 내 등허리에 오래 녹슬지 않는 핀을 꽂으리라. 그래도 해변으로 나가는 어두운 날의 기쁨, 내 두 눈이 바닷게처럼 내 삶을 뜯어먹을지라도.
이성복 아포리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출간
시인 이성복의 아포리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가 출간되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이 책은 1990년 도서출판 살림에서 간행되었던 『그대에게 가는 먼 길』에 실린 단상들을 저자가 새롭게 간추려 엮은 것이다. 나는 언저리를 사랑한다 언저리에는 피멍이 맺혀 있다. 채 첫 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피멍 맺힌 언저리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시인은 이 책에서 시와 예술과 삶과 죽음과 고통과 상처와 병과 허무와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게 아물지 않는(아물까 두려운) 상처는 시의 힘이 되고, 치유할 길 없는(치유하고 싶지 않은) 병과 허무는 살아 있음의 증거가 된다. 그 상처의 자리에, 곪아터진 그곳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동이 자리한다. 그가 뱉어놓은 한마디 한마디는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고, 시에 대한, 예술에 대한, 삶에 대한 잠언이 된다. 그것은 시인 스스로에게 겨누어진 칼날이며, 그 칼날은 동시에 그 말을 엿듣는 우리에게로 향한 것이기도 하다. "낯선 여관"과도 같은, 그래서 "머물러도 마음이 차지 않"는 그곳, 마음의 자리에서 시인은 주문한다. "지치거라, 지치거라, 마음이여......"
* ISBN 89-8281-443-4 03810
* 사륙판 / 272쪽 / 값 6,500원
* 책임편집 : 김현정 조연주(927-6790, 내선 217,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