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떼』『수수깡을 씹으며』『빈집의 꿈』『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눈 내리는 마을』 등의 시집을 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정양 교수의 『판소리 더늠의 시학』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십여 년 동안 대학에서 판소리 강의를 해온 정양 교수의 판소리 더늠에 대한 연구서이다.
판소리는 많은 더늠들을 얼개삼아 짜여진 예술이다. 판소리의 눈대목이 되어온 그 더늠들 속에는 판소리가 겪어온 굴절의 양상과 함께 평민문화의 기수 역할을 감당하던 판소리의 진면목이 선명하게 살아 있다. 그 속에는 오랜 세월 동안 농축되어 있는 판소리 청중들의 꿈과 한과 신명이 생생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민담과 판소리와 근대소설과의 혈연관계가 확인되기도 한다. 그 더늠들 속에는 또 양반문화에 대한 부러움과 폄하,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혐오와 비난이 희화적으로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 -책머리에에서
18세기에 생겨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또 그들의 슬픔과 한을 담아냈던 판소리. 같은 작품이라도 창자(唱者)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어 다르게 불려졌는데, 그 과정에서 생겨난 소리꾼들의 특징적인 더늠들에 정양 교수는 주목했다. 예를 들면 <춘향가>에서 춘향이 맞는 곤장수에 맞추어 그녀의 절개를 엮어나간 <십장가>를 신재효는 개작하여 짧게 불렀다. <십장가>는 "고급관리의 호색한적 부도덕성을 통하여 천민 춘향의 도덕적 고행을 강조"하며 천민들의 분노가 절정에 달하는 부분인데, 신재효는 양반의 눈치를 보느라 "떳떳하지 못한" 개작을 했다고 정양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또 정양 교수는 판소리 다섯 마당을 설명하면서, 중심인물은 아니지만 그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들과 그들을 그려내는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흥부가>의 놀부, <심청가>의 뺑덕어미는 판소리에서 주로 오락적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서민들에게 그들은 마음껏 미워하고 웃을 수 있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의 주인공 윤직원과 놀부를 비교하고 있는 부분도 흥미롭다. 정양 교수는 식민지시대 소설 속의 인물들과 판소리 속의 인물들, 또 그 짜임새의 유사함을 설명하면서 우리 근대소설의 태생을 되짚어보고 있다.
유성기 음반의 판소리 노랫말 35편 수록
정양 교수는 이와 함께 식민지시대 유성기 음반에 취입된 판소리 단가를 부록으로 삼았다. 그 동안 알려졌던 콜롬비아, 빅타, 오케이, 시에론 음반이 아닌 리갈 음반을 중심으로, 임방울 창의 <고고텬변>, 박소춘 창의 <강상풍월>, 정남희 창의 <청춘을 허송 마라>, 오비취 창의 <어화 세상>, 오태석 창의 <초로인생> 등 35개 음반의 노랫말을 정리했다. 이들은 가사가 같지만 제목이 다르거나 제목은 같지만 가사가 다른 경우가 많으며, 표기법에도 일관성이 없어 정리작업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지금까지 학계에 소개된 적이 없는 단가도 여러 편 포함되어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에 대하여
정양 교수는 우리나라의 뛰어난 현역 시인이다. 『판소리 더늠의 시학』은 시인이 쓴 판소리론이라는 점에서 매우 개성적인 뜻을 담고 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로서 단을 열고 해방이 되면서 가람 선생을 위시한 국문학자들이 이룩하여온 그 동안의 판소리 연구의 성과는 주로 학구적인 방향의 것이었다. 정양 교수가 이룩한 이번 판소리 더늠론은 학술논문이라기보다도 시인의 감성에 입각한 창조적 비평이라고 할 것이다. 이제 판소리 연구의 영역에도 이러한 신선한 비평적 관점이 투영될 만한 시점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 교수의 이번 저술은 판소리 학계에 한 새로운 영역을 예비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천이두(문학평론가)
판소리는 이제 낡아서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묵은 내 나는 골동품인가. 아니면 아직도 사람의 손을 타보지 않은 값진 보석이 잡석에 뒤섞여 다량으로 숨어 있는 양질의 광맥인가. 이것이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볼 일이다. 정양 교수의 혜안 아래서는 춘향이도, 심청이도, 흥보도, 놀보도, 뺑덕이네도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는 심각한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판소리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그 말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판소리의 현재적 가치를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최동현(시인·군산대 국문과 교수)
정양 교수의 혜안 아래서는 춘향이도, 심청이도, 흥보도, 놀보도, 뺑덕이네도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는 심각한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판소리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그 말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판소리의 현재적 가치를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최동현(시인·군산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