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사상의 흐름을 주도했던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정신병과 심리학 Maladie mentale et Psycholosie』(1954)이 박혜영씨의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54년 미셸 푸코가 펴낸 『정신병과 인격체』의 일부분을 『정신병과 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수정하여 재출간한 것으로, 병리학적 체험에서 그 기원과 기초를 발견한 심리학에 근거해 정신병의 요인을 면밀히 탐색해나감은 물론 심리학이 정신병에 대해 밝히는 진실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푸코의 독특한 연구 주제나 관심 영역은 그가 살아온 시대나 자신의 삶의 고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기에 푸코의 철학은 삶과 유리된 사변적 학문이 아닌, 그 자신 그리고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와 고뇌의 흔적이자 그것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현존재의 치열한 지적 과정으로 느껴진다. 그가 실제의 삶에서 경험한 정신 발작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감시와 처벌을 몸소 느끼고, 광기와 이성을 가르는 경계의 모호성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극한의 체험이었다. 푸코는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광기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심리학 이론의 발전 과정과 그 방법론, 이론적 전제의 타당성을 짚어나간다.
자연적인 질병이 아닌 문화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인간의 광기(光氣)
끊임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불변의 고정된 결정, 모든 기능을 관장하고 모든 순간들을 위압적으로 인도하는 어떠한 영향력…… 인간의 광기(光氣). 푸코는 이 책을 통해 정신의 병을 다루는 정신병리학과 신체의 병을 다루는 조직병리학에 동일한 개념, 똑같은 가정과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지적한다. 정신병은 자연을 거역하는 본질이 아닌 자연 그 자체다. 광기는 병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의미일 뿐이다. 일종의 반정신의학 운동으로도 보여지는 푸코의 이론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함과 동시에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을 표한다. 광기가 근본적으로 오류, 환각, 또는 진실에의 불복종으로 여겨지던 시대를 거치면서 정신의학은 광기가 이성의 부재라는 틈새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의 음침한 역동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푸코의 광기의 문제는 권력화된 정신의학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그 당시의 인식론의 흐름과도 합치되며, 우리는 그의 이론을 통해 자연적 질병이 아닌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광기와 대면하게 된다.
심리학이 정신병에 대해 밝히는 진실의 문제
- 질환은 최악의 주관성 속으로의 퇴행인 동시에 최악의 객관성 속으로의 추락
1장 ‘정신의학과 조직의학’에서 푸코는 병적인 정신구조는 정상적인 정신구조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질성의 심리학에서, 비정상적인 것까지 포함한 모든 행동의 이해 가능성을 정상·비정상의 구분 이전에서 찾으려 하는 분석적 혹은 현상학적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정신병리학이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 그 방법론과 전제의 타당성을 점검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에서 정신병은 독립된 현실도, 자연적 종도 아닌 개인의 총체적인 반응으로 간주된다. 질병은 개인의 환경에 대한 총체적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함에 따라 정신질환에서도 심리적 총체성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조직적 총체와 심리적 성격을 동일한 방법으로, 똑같은 개념을 가지고 분석하고 묘사한다. 따라서 정신병리학과 조직병리학에는 다른 분석 방법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1부는 ‘질환의 심리학적 차원들’을 다루며, 1부에 속하는 2장 ‘질환과 발달’, 3장 ‘질환과 개인적 역사’, 그리고 4장 ‘질환과 실존’에서는 발달심리학, 발생심리학, 그리고 현상심리학에서 정신병을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그리고 각 시각의 한계는 무엇이고, 그 뒤를 이은 시각은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려 하는가를 짚어나간다.
2장에서 설명된 심리발달론은 정신병을 정상적인 인간의 심리발달 과정의 역과정으로 보는 시각이다. 정신병을 개인적, 사회적 발달 과정에 따라 진보하는 도중 다시 추락하여 예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정신병자를 어린아이나 원시인과 동일시하는 신화적인 시각이다. 푸코는 진화론에서 영향을 받은 정신분석의 심리발달론은 퇴행적 구조를 보이는 병자 개개인의 인격체 조직을 소홀히 다루고 있으며, 퇴행적 분석은 정신병의 기원을 밝혀주지 못하고 단지 어느 단계로의 퇴행이라는 그 방향만을 제시할 뿐이라며 그 한계를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어떤 환자가 왜 필연적으로 그런 병이 걸려야 했는가를 보여주는, 즉 정신병의 필수성과 의미를 밝혀주기 위해서는 환자 개인의 역사를 다루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한다.
3장 ‘질환과 개인적 역사’에서는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개인의 역사라는 전망에서 정신병을 조명하는 심리학을 점검한다. 푸코는 리비도라는 개념으로 정의된 발달론적 지평을 초월하여 인간 심리의 역사적 차원에서의 연구를 시도한 프로이트의 사례연구들을 점검한다. 갈등, 갈등을 야기시키는 모순, 그 모순으로부터 생겨나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자는 현재를 비현실화시킨다. 푸코는 인간 심리 속에서 시간은 발달이며 동시에 역사이므로, 과거의 것을 통해 현재를 설명하고 동시에 현재를 통해 과거의 의미를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푸코는 이 정신병의 증세를 초기적 행동으로의 퇴행으로 설명하는 발달심리학은 주체의 역사 속에서 이 퇴행이 현재에서 갖는 의미를 묘사하는 발생심리학으로 보충되어야 함은 물론 정신병을 실존적 필연성 속에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함을 지적한다.
4장 ‘질환과 실존’에서는 정신병자의 실존적 체험 내부로부터 병을 이해하려는 현상학적 시각을 소개한다. 연구 결과 드러나는 병적인 세계가 정상세계와 달리 보이는 근본적인 특징은 병적인 세계는 상상적, 몽상적인 세계, 상호주체성이라는 전망이 불투명한 세계이고, 주체는 그러한 세계 속에 실존을 포기하고 자기를 내맡기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정신질환은 “주관성들 중 최악의 주관성 속으로의 퇴행인 동시에 객관성들 중 최악의 객관성으로의 추락”이라고 정의한다.
2부에서는 ‘광기와 문화’라는 제목하에 광기를 사회,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면서 병적인 사실에 대한 사회 역사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여기서 푸코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의 발달론적이며 통계학적 시각에서 보는 광기의 정의, 인류학적인 시각을 도입한 미국의 심리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시각을 소개하는데, 환자를 일탈한 자로 간주하고 병적인 것의 근원을 비정상인 것에서 찾는 서구 심리학자와 사회학자의 분석은 바로 서구문화의 주제들이 투사된 것임을 지적한다.
5장 ‘정신질환의 역사적 형성’에서는 서구 사회에서 광기에 정신질환이라는 위상이 부여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짚어보면서 서구 역사가 광기를 어떤 것으로 만들어왔는가, 다시 말해 광기의 역사적 침전작용을 밝히고자 한다. 중세에 미친 사람은 신들린 사람으로 간주되어 마을에서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녔지만, 17세기 중반 강제수용소가 만들어지면서 광기는 사회악으로 몰려 추방된다. 치료를 목적으로 강제수용소에 감금한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 속할 수 없거나, 속해서는 안 되는 사람, 즉 이성, 윤리, 그리고 사회질서에 비추어 볼 때 문란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자들이 정신병자들과 함께 수용되었던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와서 광기는 사랑의 범죄들과 친자관계를 맺게 되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범죄의 상속인이 되며, 20세기에 와서 광기의 핵심은 공격성과 죄의식으로 조명되기에 이른다.
6장 ‘광기, 총체적 구조’에서 푸코는 사회구성원이 앓는 정신질환을 통해 그 사회는 자신을 실증적으로 표현한다고 말한다. 한 문화는 그 문화가 배척하는 현상 속에서 자신을 긍적적으로 표현한다는 역설적인 진실을 제기하면서 그것을 광기나 종교적 망상의 예를 들어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인간이 자기 언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이방인인 채로 남아 있을 때, 자기 활동의 산물에서 인간적이며 살아 있는 의미들을 확인할 수 없을 때, 이 세계 속에서 자기 조국을 발견할 수 없는데도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결정이 그를 구속해올 때, 또한 정신분열증과 같은 병리학적 형태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을 때, 인간은 현실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어떤 객관성도 보장해줄 수 없는‘사적인 세계’로 내몰린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구속에 순응하는 인간은 그가 도망치는 이 우주를 운명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현대 세계는 정신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지금의 사건들이 인간을 비인간적이며 추상적으로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문화가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 속에서 인간은 더이상 자신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존 조건의 실제적 갈등만이 정신분열의 세계가 지닌 역설에 구조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