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바닥에서 말해지는 어머니의 말
겨울이 다 지나갔을까?/빙판에 다리 부러져 누운 시계/그 시계/이제는 말할 수 있답니다/죽을 만큼 힘은 들었어도 마침내/빙하기를 건너왔다고/흥얼흥얼 노래처럼 말하지요//어머니/수십만 년 얼음 깨고/째각째각 몸을 부수면서 걸어나오네요/아, 환해라/지붕이 무너지니까/눈이 부시네/어머니 이마가 상처로 눈이 부시네요//(……)//이제 막 봉우리 맺는 꽃잎의 속살이 훤히 보이고/꼬마 시간들 마구 뛰쳐나오려는 것도 보여요/어머니의 발꿈치를 물고서 --「어머니」 중에서
인간에게 시간은 비극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멸(滅)해야만 하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멸과 상실에 닿아 있는 시간의 비극적 운명을 그러나 이사라 시인은 역설적인 사유와 절제된 언어 형식을 통해 말갛고 따뜻하게 걸러낸다. 그리하여 풋풋하고 말랑말랑한 생명의 싹을 끄집어낸다.
위의 시에서 노래처럼 하는 말(1연)이나 환하게 눈부신 상처(2연)는 생성의 이미지를 환기시키고, 시계의 몸과 어머니의 시간은 꼬마 시간들을 마구 생산해낸다. 시간이 지닌 생성의 이미지는 결국 어머니의 발꿈치를 물고 마구 뛰쳐나오는 풋풋하고 말랑말랑한 아이들로 형상화되면서 재생과 정화의 의미를 굳혀나간다. 이는 여성적 삶의 조건들을 내면화하고 싸안으려는 여성적 정체성에 대한 또다른 표현이라 이해할 수 있겠다.
누구나 때가 되면/몸이 낡아간다--헐렁해진 모오오옴은/母音/저 혼자 고요히 말하기 시작하는/옹알이 소리, 옹알/어머니의 말은 내 몸에서 편안하다//(……)//낡은 몸 더 낡아간다/母音 더 따뜻해진다 --「낡은 몸, 따듯한 말」 중에서
김승희 서강대 교수는 이사라 시인의 시에서 "모더니티와 서정, 감성과 지성, 현실과 상상, 일상과 원형의 균형"을 상찬했다. 이는 낡아가고 상처난 몸을, 사랑의 몸이자 시간의 몸, 죽음의 몸이자 재생의 몸으로 읽어내는 시인의 시선에서 말미암을 것이다. 어머니에서 몸으로, 그리고 몸에서 따뜻한 모음으로 옮아가고 있는 시 속의 상처는 이제 더이상 상처가 아니다. "저렇게 반짝이는 삶의 입자들!"(「관계」)이다.
*2002년 6월 28일 발행/ISBN 89-8281-536-8 02810
*120*185/152쪽/값5,000원
*담당편집:조연주, 장한맘(927-6790, 내선 213, 217)
이사라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시어들이 바로 죽음, 시간(시계), 기억, 바닥, 그리고 침묵과 시(詩)였다. 그는 평안한 소멸을 꿈꾸면서, 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의 바닥을 쓰다듬고 침묵하고 그리고 시를 쓰곤 한다. 그러기에, 그에게 시는 죽음이다. 우리 자신을 무로 만들어가는 시간, 그 시간의 바닥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다.--정끝별(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