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과 영원의 소용돌이 앞에서 사실 나는 겁먹고 있었다.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겁도 세월도 가라앉고 다만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남아 저쪽을 바라보고 있다. _<자서> 중에서
부활의 우물―화합과 연대의 공간
13년의 시간 그리고 1980년대와 2000년대라는 차이, 그만큼 정인섭의 시에서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모호한 표현 속에 담겨 있던 명료한 메시지는 명료한 표현 속에 담긴 모호하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바뀌었고, 역사성과 현실성에 놓였던 무게중심은 보편성과 서정성으로 옮겨갔다.
정인섭은 침묵하며 1990년대라는 시간을 보냈지만 여전히 그의 시는 역사와 종교라는 두 가지 기준에 기대어 있다.
나는 지친 사나이
모든 일에 물려서 이 길목
저녁마다 굽어도네
구부러진 길 저쪽에는 공해처럼 무지개가 쌍으로 휘어
내 손 이끌 때
내 종교 외투가 다 낡아서 몸은 춥고
옛사랑 역사는 내 귀싸대기를 치며
넋에 울타리를 치는군
나 지친 사나이, 낭떠러지를 더듬더듬 가는 사람
―「사람처럼」 전문
지난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역사나 종교와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타자와 세계를 향해 직접화법으로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단절과 비약으로 생략했던 부분들을 세세하게 복구하여, 편안하게 내면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정인섭이 시작부터 끈질기게 매달려온 이미지는 우물이다. 문학평론가 김현 김주연 성민엽 임우기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바대로 정인섭의 우물은 비극의 역사와 수난의 종교사, 민중의 생명력과 화합, 시인의 어두운 내면의 상징으로 다양하게 그려져, 시인과 세상의 연결통로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어디선가 철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찬물로 오래 눈을 씻었다
―「우물 무덤」 중에서
무덤보다 깊은 우물 무덤들이 땅 밑에서 손잡고 있는 그 아래로 흐르는 우물에서 길어올린 이 "찬물"은 정인섭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새로운 시가 태어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먼 땅 밑 우물의 나라"(『어둔 밤』, 1987)가 표상했던 지하·죽음의 세계는 이번 시집에서 삶과 죽음의 고리를 잇는 부활의 우물을 통과하여 화합과 연대의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정인섭의 오랜 우물 파기는 이제 하나의 마침표를 찍으며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또 어떤 새로운 우물의 풍경을 보여주게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오래 하나의 상징을 탐구하고 완성시킨 그의 끈질긴 노력은 이즈음의 시단에서 발견하기 힘든 귀하고 귀한 덕목임에 분명하다. 우리 시에서 우물이 보여주는 최대의 진경의 하나를 목도하기를 원한다면, 지금 정인섭의 시를 읽을 일이다. 김수이(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이 책에 대하여
그는 시집의 도처에 우물을 파고 있다. 그것은 황폐해진 세상에 대한 시적 도전이다. 그 우물들은 때로 이 세상의 깊은 상처이기도 하고 그의 고독이 우주의 중심과 내통하는 그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온갖 허섭스레기들이 빠져 있기도 한 그 우물 속에서 정인섭은 우리의 버림받은 꿈과 영혼을 열정적으로 길어올리고 있다. 읽을 만한 시들이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요즘에 정인섭의 시집을 엮는 일은 참 대견하고 옹골지다. 시집에서 만나는 그의 치열한 고독과 그 내출혈로 발효되는 세상일에 대한 원초적 관심은 아마도 이 시집을 읽는 이들에게 여러 차례 닭살을 돋게 만들 것이다. 정양(시인·문학평론가)
전주 하늘 아래 같이 살면서도 몇 년째 정인섭 형은 두문불출이다. 집과 학교와 성당, 이 세 꼭지점 안에서의 삶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시집을 읽어보니, 그 동안 술집과 유곽 대신에 그는 상처의 마을을 쉬지 않고 들락거렸던 모양이다. 대체로 시인은 없는 상처도 펼쳐 보이려 하지만, 사제는 있는 상처를 안으로 감싸안는 자이다. 그의 시가 유례없이 독특해 보이는 것은 후자 쪽에 몸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치유하려는 주술의 은유 덩어리가 아프다. 안도현(시인)
* 2002년 6월 28일 발행/ ISBN 89-8281-537-6 02810
* 신사륙판/ 144쪽/ 값5,000원
세월이 흐른 후에 바라본 우물의 진경
정인섭의 오랜 우물 파기는 이제 하나의 마침표를 찍으며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또 어떤 새로운 우물의 풍경을 보여주게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오래 하나의 상징을 탐구하고 완성시킨 그의 끈질긴 노력은 이즈음의 시단에서 발견하기 힘든 귀하고 귀한 덕목임에 분명하다. 우리 시에서 우물이 보여주는 최대의 진경의 하나를 목도하기를 원한다면, 지금 정인섭의 시를 읽을 일이다. 김수이(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