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선 한국문학의 준령, 박상륭. 소설집과 산문집 동시 출간 “우뚝 선 한국문학의 준령, 박상륭의 문학은 세계적 수준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차고 넘친다.”―김정란(시인, 문학평론가, 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지난 98년 캐나다에서 영구 귀국한 작가 박상륭 선생의 소설집 『평심』과 산문집 『산해기』가 동시에 출간되었다. 작가의 세번째 소설집인 『평심』과 첫번째 산문집인 『산해기』는 우선, 작가가 30년 만에 발표하는 단편소설집이라는 의미 외에도 거대하고 드높은 박상륭 문학의 ‘새로운 지도’ 역할을 하고 있어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특히, 이 두 권의 책은 마침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박상륭 문학제’(4월 23~24일)에 때맞춰 출간되어, 문단과 독자들에게 “너무 앞서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독했던” 박상륭 문학의 진면목을 알리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륭, 박상륭 문학은 결코 한두 마디의 개념어로 포획되지 않는다. 아니, 한국문학은 아직 박상륭 문학에 대한 지도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문학, 특히 한국문학 비평은 아직, 박상륭 이전, 혹은 그 아래이다. 1963년 「아겔다마」로 『사상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71년 첫 소설집 『박상륭 소설집』(민음사)과 75년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한국문학사)를 펴낸 이후, 한국문학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69년 캐나다로 취업 이민을 떠나면서 작가 박상륭도 문단에서 증발되고 말았다. 문학평론가 남진우가 지적했듯이, 박상륭 문학을 제외한 70년대 이후의 한국문학은 “사자가 사라진 여우들의 세계”였다. 박상륭 문학은 70년대 중반부터, 8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소설집 『열명길』과 『죽음의 한 연구』를 수정증보하여 출간함으로써, 뒤늦게 한국문학으로 ‘귀국’하기 이전까지, 극소수의 ‘신도’(독자, 작가, 비평가)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86년 소설집과 장편이 복간되고, 94년 『칠조어론』(전4권)이 완간되었지만, 아직 한국문학은 박상륭 문학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문학은, 여러 종교와 신화를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 장대한 스케일과 형이상학적 비전, 생명과 존재의 비의를 파고드는 치밀한 사유와 논리,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고 또 정확한 문체의 힘 등으로 윤곽지어지는 박상륭 문학과 이제 겨우 ‘제휴’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번에 나온 『평심』이 순수문학 독자와 문단, 그리고 문학연구자들 사이에서 새삼 돌올해지는 까닭은, 『평심』에 실린 작품 7편(모두 8편이 수록되었는데, 이 가운데 한 편인 「나무의 마을」은 68년 『월간문학』 12월호에 수록된 작품으로, 97년 『아겔다마』 출간 당시 발견되지 못한 탓에 포함되지 못했다가 이번에 새로 발견돼 수록했다)이 박상륭 문학의 절정인 『칠조어론』의 해설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평심』이 스스로 소설이기를 포기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박상륭 문학은 하나의 신비이다. 해독되지 않는 아름다운 경전이다. 『평심』은, 작가가 캐나다에 살며 20년에 걸쳐 완성한 필생의 대작 『칠조어론』 완간 이후, 그러니까 94년부터 국내 문예지에 발표한 소설들을 모았다. 총 8편의 중단편으로 짜여져 있다. 「로이가 산 한 삶」(『창작과비평』 1995년 가을호) 「왈튼 씨 부인이 죽은 한 죽음」(『현대문학』 1997년 3월호) 「미스 앤더슨이 날려보낸 한 날음」(『현대문학』 1997년 6월호) 「평심」(『작가세계』 1997년 가을호) 「두 집 사이―제일의 늙은 아해 얘기」(『현대문학』 1998년 7월호) 「두 집 사이―제이의 늙은 아해 얘기」(『작가세계』 1999년 봄호) 「두 집 사이―제삼의 늙은 아해 얘기」(미발표 신작) 「나무의 마을」(『월간문학』 1968년 12월호, 『아겔다마』 출간 당시 채 발견되지 못한 작품으로 이번에 새로이 발견돼 수록하게 된 초기 소설세계에 속하는 작품). 세 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두 집 사이」 연작(‘제일의 늙은 아해 얘기’ ‘제이의 늙은 아해 얘기’ ‘제삼의 늙은 아해 얘기’)은 『칠조어론』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겸하고 있다. 『칠조어론』이라는 ‘경전’을 보다 구체적인 이미지와 설화의 공간 속에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제일의 늙은 아해 얘기’라는 부제가 달린 연작의 첫번째 작품은, 노인네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면서 행하는 몽상과 상념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박상륭 문학의 핵심적 주제인 ‘전체에의 체험’ 혹은 ‘무(無)에의 긍정적 체험’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세상 얘기 한 자리’ 연작(「로이가 산 한 삶」 「왈튼 씨 부인이 죽은 한 죽음」 「미스 앤더슨이 날려보낸 한 날음」)은 표면적으로는 작가 자신의 캐나다 이민 생활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이 연작 역시 『칠조어론』의 영토 안에 있다. 예컨대 「미스 앤더슨이 날려보낸 한 날음」은 박상륭의 인식론 혹은 생명론의 한 핵심인 ‘상극적 질서’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고 있다. 젊은 왕자의 구도행을 추적하는 표제작 「평심」도 마찬가지여서, “마음을 넓히면, 그 한 마음이 우주 자체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박상륭 문학의 키워드인 ‘마음의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터놓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우주’는 ‘말씀의 우주’와 ‘몸의 우주’를 전제로 하는, 박상륭 사유체계의 동심원적 중심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우주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놓고 있다. “이 우주는 마음의 우주, 말씀의 우주, 몸의 우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신이 인간과 짐승의 아름다운 부분만 닮은 희랍 신화의 우주는 몸의 우주랄 수 있고 예수가 등장하면서 말씀의 우주가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최고로 도달해야 할 곳은 마음의 우주가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소설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 저는 글쓰기를 통해 종교나 샤머니즘과는 다른 어떤 ‘원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이겠지요.” 소설집 『평심』은 『칠조어론』과의 맥락을 벗어나서도 충분히 새로운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세상 얘기 한 자리’ 연작에 각각 등장하는 로이와 왈튼 씨 부인, 그리고 미스 앤더슨은 죽음과 직면하고 있는데, 이들은 또한 저마다 서점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연작은 ‘죽음’과 ‘책’(혹은 ‘문학’)의 문제로도 읽히는 것이다. 『칠조어론』과 어떤 연관을 갖든, 또는 갖지 않든 이번 소설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주제는 ‘유토피아’이다. 작가는 소설 곳곳에서 ‘마음의 우주’로 가는 길, 즉 인류가 구현해내야 할 유토피아를 궁구하고 있다. 작가는 현대 문명사회를 ‘몸의 우주’의 단계로 추락해 있다고 진단한다. 인간은 짐승의 상태(축생도畜生道)에서 들끓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보기에 이 현실은 말씀의 우주에서 마음의 우주로 가는 진화(순조전이, 프라브리티)가 아니라 오히려 역진화(퇴조전이, 니브리티)이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비전은 긍정적이다. 지금/여기는 말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말세를 벗어나는 시기이도 하다는 것이다. 박상륭 문학이 제시하고 있는 비전은 매혹적이다. 그것은 죽음의 길, 그 고통스럽고 참혹하며 낭자한 ‘몸’과 ‘말씀’의 길이지만, 그의 문학은 기어코 삶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끌어안는다. 문학평론가 김진수가 책 뒤에 붙인 해설에서 지적했듯이, 삶과 삶의 터전인 이 대지는, 죽음을 선고받은 처형지, 다시 말해 성욕(창조력)과 죽음(파괴력)의 길항인 ‘상극적 질서’의 격전장이 아니라, 생명을 축복하고 사랑을 찬미한 존엄성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고뇌의 뿌리인 육신이 다름아닌 신생의 자궁이 된다는 인식이다. 『평심』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인간에게 던져진 이 유일한 가능성에 대한 치열한 탐구인 것이다.
박상륭 문학의 시기 구분과 그 문학세계 1963년 데뷔작 「아겔다마」에서부터 박상륭은 줄기차게 인간 존재의 문제를 죽음의 관점에서 탐구해왔다. “나는, ‘죽음’을, ‘삶’이라는 솥에 넣어, ‘삶’이라는 땔감으로 ‘죽음’을, 그리고, 약간의 문학을, 삶아내려 해왔던 모양이었다”(「나의 문학수업 시절」, 문학동네 소식지 3호, 1995년)라는 작가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삶과 죽음, 우주의 본질에 대한 심오하고 방대한 사유체계야말로 박상륭 문학의 핵심이다. 그는 자신의 일관된 화두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통종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왔다. 동서고금의 종교의 벽을 넘나드는 사유체계, 즉 선불교의 견성·돈오, 기독교의 자기 희생·자기 구원, 연금술의 제금술, 신비주의의 집단무의식, 주역의 세계 인식이 자유자재로 그의 작품 속에서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30년이 훨씬 넘는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네 시기로 나뉘어진다. 1. 초기의 단편소설을 쓰던 시절(1963∼1973) : 등단 이후부터 『죽음의 한 연구』 출간 전까지의 시기로 첫 소설집 『열명기』를 상자한 때이다. 이 시기의 그의 단편들은 인간의 구원 문제를 기독교적 발상에서 다루고 있다. 메시아적 콤플렉스가 관통하고 있다. 2. 『죽음의 한 연구』를 쓰던 시절(1971∼1973) : ‘유리(멂?’라는 가공의 무대를 배경으로 설화와 신화, 주역과 연금술의 세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죽음으로 불멸성과 재생을 완성시킨 한 인신(人神)의 40일에 걸친 도정을 그리고 있는 『죽음의 한 연구』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해 기독교적 사유체계를 뿌리로 하고 밀교적 세계를 수용, 기독교적 ‘대속양’ 신화(무엇이 희생됨으로 하여 무엇을 속량한다) 자체가 원시종교에 근원을 둔 밀교이며, 그것은 ‘무속(巫俗)’의 얼굴과 대승불교의 얼굴을 공히 가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죽음의 한 연구』에서 그의 초기 문학세계는 장엄하게 일단락을 맺는다. 3. 『칠조어론』을 쓴 시기(1974∼1994) : 한국문학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장대한 스케일의 형이상학적 비전과 한국어의 문학적 표현 가능성의 한 절정을 보여주었던 대작 『칠조어론』은 ‘삶과 죽음’ ‘종교와 신비주의’라는 박상륭 문학의 주제의 완결이다. 이 책에서 그는 선불교적 사유를 기조로 하고 기독교와 라마교적 요소를 가미(탄트라와 禪), 그것을 ‘잡설(雜說)’로 규정한다. 박상륭에게 소설은 여러 이질적인 담론들이 공존하는 ‘잡설(雜說)’이다. 여기서 잡설이란 이야기 내용의 잡스러움과 또한 이야기를 하는 방법의 잡스러움을 모두 뜻한다. 하나의 이야기에 여러 다른 이야기들이 마구 끼어든다. 때로 끼어든 이야기들이 주이야기를 훨씬 능가한다. 그 여담들은 소설에 관한 메타적인 담론, 종교적 담론, 혹은 의학적 담론 등으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여담이 끼어드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은 괄호의 사용인데 한 문장 속에 중괄호 대괄호를 겹쳐놓기도 하는 이러한 장치는 작가의 말을 자연스럽게 한 분야에서 그것을 보충한다는 구실하에 다른 담론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한 소설 속에 여러 담론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질적인 담론들이 아무 거침 없이 서로 뒤엉켜 있다는 점이다. 그의 말의 배설물들은 독자들을 당황하게 할 만큼 낯설고 기이하다. 그것은 소설적 서사가 갖는 일상적인 상상력의 경계를 파괴한다. 4. 최근의 단편소설을 쓴 시기(1994∼현재) : 서양(캐나다) 체험이 기조를 이룬 연작 소설들로 이루어진 세번째 소설집 『평심』과 그의 첫 산문집 『산해기』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세기말 ‘몸의 우주’(축생도)를 가로질러가는 박상륭의 짜라투스트라―『산해기』 박상륭 산문집 『산해기』는, 작가가 자신의 글쓰기에 이름붙인 ‘잡설’이란 개념을 들이대면 산문집이 아니다.(역으로 그의 소설도 소설이 아니다. 그의 글은 ‘거대한 잡설’이다.) 그러나 변별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산해기』에서 작가는 자본주의(물질주의)와 개아(個我)를 잃어버린 대중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축생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물신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본주의의 말기적 징후를 박상륭은 신화적으로 재구성해 조롱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모두 8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번 산문집은 『평심』이 그렇듯이 ‘동화 한 자리’와 ‘산해기’ 두 개의 연작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되었던 ‘동화 한 자리’는 물질주의에 휩쓸리고 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절묘한 알레고리이자 풍자이다. 그러나 이 동화 역시 읽기에 만만치 않다. 그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의 ‘동화’는 철학, 종교학, 신화학, 정신분석학 등을 아우르며, 대중들이 섬기는 신(물질주의)과 그 종교(자본주의)를, 특유의 언어로 질타하기 때문이다. 「산해기」는 니체가 아니라 박상륭이 창조해낸 짜라투스트라가 포효한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신은 죽었다”고 말했지만, 박상륭의 짜라투스트라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신은 탄생했다”고 발언한다. 이때의 신은, 마음의 우주로 가는 ‘개아’들인바, 그러나 ‘개아’들은 눈멀고 귀먹어 저열한 축생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 상태를 ‘동화 한 자리’ 연작은 ‘이미지들이 사는 왕국’으로 규정하는데, 그 이미지의 지도자들이 ‘시인’과 ‘현자’이다. 이 연작은 독룡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출하는 과정으로, 여기서 독룡은 ‘에켄드리아’(하나의 감각기관을 가진 외눈박이.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에 끌려다니는 대중들이다)이고, 공주는 ‘개아’를 의미한다. 공주는 ‘산해기’의 짜라투스트라가 말한 ‘신’인 것이다. ‘개아’를 찾아가는 길, 진리를 깨닫는 길로서 작가가 제시한 방법론이 ‘중도론’이다. 『칠조어론』의 한 중심 개념인 중도론은 하나의 ‘가정법’임이 새삼 밝혀지는 것이다. 이번 산문집은, 몸의 상태, 즉 형이하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마침내 마음의 우주, 즉 형이상의 세계를 제시한다는 박상륭 문학의 한 진경을 에둘러서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산문들은 현실을 재구성한 신화로 읽힌다. 이 신화를 뒤집어 읽으면, 다시 말해 이 산문을 성찰적 문화비평으로 읽으면, 물질과 자본을 두 축으로 작동하고 있는 이 세기말의 자욱한 소음과 소요의 핵심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박상륭 문학이 추구해온 비전이 다시 확인된다. ‘말씀’이 아니라 ‘몸’에 의해 더욱더 고통을 받고 있는 이 축생도의 세계는, 고통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마음의 우주’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 마음의 우주는 지금/여기의 몸의 우주 안에서 건설된다. 작가는 “‘몸을 입지 않고서는 진화가 가능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프라브리티(진화, 상극적 질서의 세계)계야 말로, 고해이기보다는 법은(法恩)에 가득 찬 장소”라고 말한다. 고해(몸)에서 법은(마음)의 세계에로의 지향이 곧 박상륭 문학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