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에는 현실 세계에는 없는 상상의 동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 쟁반과 박 속에서 나와 나라를 구한 개, 선녀들이 입는 옷의 옷감으로 쓰인다는 불 속에 사는 쥐, 소녀를 둘둘 말은 채 하얀 실을 토해 내는 말가죽 누에, 엄청나게 큰 가래나무가 되어 바람과 비를 일으키는 푸른 소, 별자리가 되어 동서남북 하늘을 지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실 세련되고 정교하기로 따지자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들은 현대 물질 문명이 창조한 판타지 이미지와 견줄 바가 아닙니다. 첨단의 기술을 동원한 인터넷과 영상 매체의 화려한 이미지들은 찰라를 다투며 아이들의 눈길을 잡아끕니다. 하늘과 바다를 누비는 합금 덩어리와 우주를 지키는 불멸의 용사 앞에 한갓 청룡이니 백호니 하는 캐릭터는 조잡하고 밋밋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옛 상상의 동물들은 현대 물질 문명의 자기장 밖으로 튕겨 나가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첨단의 이미지가 휩쓸고 지나간 뒤, 아이들은 왠지 모를 허탈함에 빠지곤 합니다. 좀더 현란하고 강력한 이미지를 찾아 그 갈증을 채우려 합니다. 그럴수록 현실 세계로 회귀하는 일은 더디고 고통스럽게 진행됩니다.
김진경 선생님은 그 이유를 첨단의 이미지가 상실한 현실 세계와의 연속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상상의 동물원』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들은 시종일관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처음부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따로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상상의 동물들도, 사실은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대상으로 여긴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쪽 하늘을 다스리는 청룡은 봄의 전령이자, 농사에 필요한 비를 관장하는 신입니다.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용에게 비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봉황은 바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구만리 장천을 휘감는 바람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에 대한 상징인 것입니다. 귀문을 지키는 백호와 죽음의 땅을 지키는 현무와 온갖 상상의 동물들 역시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습니다.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친구이자, 삶의 지표를 밝혀주는 스승이자, 때로는 꿈을 이뤄주는 신의 얼굴로 나타나는 상상의 동물들 - 김진경 선생님은 이러한 현실성이야말로 그 어떤 첨단의 이미지보다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재미난 한자와 맛깔스런 옛이야기!
『상상의 동물원』에 나오는 한자들은 옛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 속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입니다. 아무리 어렵게 보이는 한자도 그 유래와 변천 과정을 알고 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머리에 남습니다. 글자를 외우는 게 아니라, 옛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재미난 한자와 맛깔스런 옛이야기를 따라 상상의 동물원으로 오세요.
본문 및 표지 그림 노성빈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출판미술가협회와 그림두루마리 회원이며 문화방송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 미술연구원입니다. 작품으로는 『달님이 보았대요』 『늑대다, 늑대!』 『민들레꽃이 피었습니다』 『뽀기뿌기 로봇배』 『후덥지근 임금님의 털장갑』 『하늘 나라로 간 그림』 등이 있습니다.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 불 속에 사는 쥐, 소녀를 둘둘 말은 채 하얀 실을 토해 내는 말가죽 누에, 엄청나게 큰 푸른 소, 별자리가 되어 동서남북 하늘을 지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