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가의 신작장편(掌篇)
특유의 입담과 필력으로 현대소설에 해학과 풍자의 자리를 새롭게 구축해나가는 소설가 성석제의 신작소설집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출간되었다. "서사(敍事)충동의 에너지가 충만해 있어 독자들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한창 물이 오른 필력과 화술" "한국문학의 끊어진 전통인 해학을 되살렸다" "한국인의 고난과 한, 비애를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엮어낸 성취"라는 심사위원들의 상찬을 받으며 지난해 제3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처음 선보이는, 또 아주 오랜만에 다시 독자들을 찾아온 장편(掌篇)소설집이다. 소소한 일상을 뒤집는 재치와 유머로 읽는 이를 유쾌한 웃음바다로 빠져들게 하는 성석제식 세상 읽기가 또한번 진가를 발휘하는 이번 작품집에는 32개의 짤막한 폭소와 진하고 긴 감동과 여운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번쩍하는 생활의 발견, 사람과 세상을 품은 짧은 이야기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사소한 사건과 사람들도 소설가 성석제의 눈에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나는 왜 언제나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을 혼자서 궁금해하면서 우두망찰하는가"라는 작가의 의문처럼 그는 언제나 주변의 것들을 의심하고 파헤치려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작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의식을 치고 지나가는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뛰어난 풍자와 해학으로 버무려져 그의 소설로 다시 태어난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역시 다양한 사건과 엉뚱한 인물들로 가득하다. 불법사냥꾼, 시골 동네 이장들, 라면 한 그릇에 감동하는 어린 군인, 자기 일은 뒷전인 채 남일에 훈수 두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 너무도 우아하고 세련된 신종 새치기 샥족, <어버이 은혜>밖에 부를 줄 모르는 더없이 진지한 음치, 호의에 익숙지 않은 정 많은 조폭, 고집을 소신으로 아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전문가들, 그리고 누구나 언제라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까지...... 하지만 그들이 일으키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은 사실 어디서 한번쯤은 겪었음직한 친숙한 것들이다. 때로는 기분 나쁘게, 때로는 마음 아프게, 때로는 아주 즐겁게...... 낯설지만은 않은 기억으로 남은 이 일련의 상황들이 작가 성석제에 의하여 재현될 때, 읽는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혀 새로운 신선한 감동에 젖고 만다. 그것은 바로 한바탕의 폭소이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유쾌한 긍정이다. 시인 이문재의 지적처럼 "그의 웃음폭탄 세례를 받을 때마다 나와 너, 이웃과 세상이 전혀 새롭게 보"이며, 이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을 관계 맺게 하는 성석제식 세상 읽기이며 성석제 소설의 힘인 것이다.
어떤 황홀, 어떤 처량함, 어떤 추억, 어떤 비애, 어떤 눈물...
어떤 사람들이 토하는 큰 웃음소리
"내 인생은 순간(瞬間)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 순간이다. 나는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작가 후기에서
『재미나는 인생』을 시작으로 콩트문학의 새로운 모색을 꾀했던 작가의 시선이 이번 작품집에서는 상당 부분 기억이나 사람에 집중되어 있다. 풍성한 입담과 재치는 원숙하게 농익어 일상의 속 깊은 부분들을 파고들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추억이나 한숨, 눈물, 또한 그들의 벅찬 황홀을 빠짐없이 포착해내고자 하는 작가의 시선은 그들이 토하는 큰 웃음소리 뒤에서 자못 깊어지고 따스해지고 있는 듯하다.
"새삼스레 소설은 직격(直擊)이 아니라 비유라는 생각을 했다. 비유를 가르쳐주고 만들어 쓰도록 해준 존재들에 감사한다."--작가 후기에서
거침없이 터지는 유쾌한 웃음
번쩍, 하고 열리는 황홀한 세상!
성석제의 글은 위험하다. 폭발물이기 때문이다. 이 폭발물은 독자의 눈길이 가 닿는 순간, 째깍째깍 초침이 돌아간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아직 실밥을 뽑지 않은 환자, 만삭의 임산부, 조증 상태의 우울증 환자, 시험을 코앞에 둔 학생들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다시 수술을 해야 하거나 시험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독자들은 그토록 부상--재채기처럼 연속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 말이다--을 당하면서도 책을 덮지 않는다. 웃음 폭탄 세례를 받을 때마다 나와 너, 이웃과 세상이 전혀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문재(시인)
* 2003년 1월 17일 출간
* 사륙판 양장본 / 값 8,800원 / ISBN 89-8281-626-7 03810
* 담당편집: 김현정, 김이선(927-6790 내선 204,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