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문장과 여린 감성의 시인 이문재씨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20인을 만나 그들의 삶과 시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성복 황지우 도종환 최승호부터 장석남 이윤학 함민복까지 스무 명의 시인을 찾는 저자의 발걸음은 서울 근교에서 대구 보은 청주 전주 부산 심지어 프랑크푸르트까지 넘나들며 바지런하게 움직인다.
계간 『문학동네』 1994년 겨울 창간호부터 2002년 겨울호까지 시인을 찾아서 지면에 연재했던 탐방기를 묶은 『내가 만난 시와 시인』은, 시인의 삶과 이야기·시에 대한 열정과 고뇌에 주목하여 시를 재분석하는, 독특한 파라(곁다리) 텍스트를 완성하고 있다.
"시보다는 시인의 이력서를 꼼꼼히 채우려고 애썼다. 시인에 대한 관심이 곧 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한국 현대시의 위대한 성취들을 보라. 시 못지않게 그 삶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는가." - - 작가의 말에서
우주의 문을 더듬어 시인을 찾아내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발걸음
저자는 시인을 찾아 기어코 시를 찾아내자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대신 동시대를 함께 호흡한 대선배 시인, 동료 혹은 후배 시인과 마주 앉아 그들의 지난 삶에 귀 기울이고, 시의 행간에 시인의 삶과 사유를 끼워넣는 것을 일차 목표로 삼았다.
때문에 마주한 시인이 달라짐에 따라 그를 읽어가는 저자의 시선 역시 변화무쌍하다. 황지우 시인을 만난 저자는 투구게가 되고, 유하 시인을 만날 때는 산책자가, 송찬호 시인을 만날 때는 왜가리가 된다. 그의 글 속에서 시인들은 이전(泥田)거사(황지우)가 되기도 하고 흰나비(김혜순)와 기린(송찬호)이 되고 붉은 열매(이윤학)와 자코메티(최승호), 젖은 눈(장석남)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의 글을 관통하는 저자의 시심(詩心)은 스무 명의 시인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모은다.
그 앞에서 시인들은 시와의 불화·별거를 고백하기도 하고(이성복), 전교조 단식농성에 참여하다 삼 일 만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하고(도종환), 독일 유학생활에서의 배고픔과 외로움(허수경), 부채의식에 시달리던 대학생활(나희덕), 가난에 대한 원체험(함민복)을 고백하고, 치과대학 시절의 문학에 대한 상사병(송재학), 지역과 지명·공간에 대한 독특한 사랑(박태일)을 이야기하고, 10년 동안의 가장 생활과 불교에의 애착(이진명), 독신과 생업·죽음을 찾아가던 고통스런 여행(천양희), 허무의 뿌리 아버지(강은교), 시를 쓰게 한 자기 모멸과 자기 부정(최승자)을 아프게 털어놓는다. 저자의 섬세한 문장 속에서 흘러나오는 시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있으면, 어느새 독자는 시인들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고, 시의 행간 행간에 차분히 들어앉아 있으며, 페이지에 곁들인 시인들의 친필시를 통해 그들과 호흡을 같이한다. 박상륭 소설가의 상찬대로 이문재 시인은 "모든 날것을 요리하는 요리사(시인)이기뿐만 아니라, 이미 익혀진 재료(다른 시인들의 시와 인생)로 고블린들로부터 거인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배 터져 누울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이다". 그와 함께 "시인들의 싱싱한 맨 얼굴을 만져보자"(김용택).
*2003년 2월 20일 발행
*ISBN 89-8281-630-5 03810
*국판 변형/352쪽/값 8,800원
*담당편집: 조연주, 장한맘(927-6790, 내선 213, 202)
시인 이문재가 만난 우리 시대 시인 20人
이성복 황지우부터 장석남 함민복까지 스무 명의 시인을 찾는 저자의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발걸음은, 특유의 섬세한 문장과 여린 감수성으로 시의 행간과 시인의 삶과 사유를 조목조목 주시하며 독특한 파라 텍스트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