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한 마리의 열정이 빚어 낸 놀라운 기적!
적군을 향해 서로 창과 칼을 겨누고 진군 구호를 기다리던 기사들이 돌연 무기를 내려놓고 달려가 서로 어깨를 겯고 웃으며 손을 맞잡는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전쟁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땅 위에 우뚝 솟은 상수리나무, 그 나무 뿌리가 땅 속으로 뻗어간 곳에 다섯 개의 작은 굴, 그리고 그 굴 속에서 들려오는 한 가닥의 바이올린 선율, 그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보자. 단춧구멍보다 더 작은 눈과 암갈색 빛깔의 피부를 가진 두더지 한 마리가 세상 모르고 바이올린 연주에 심취해 있다. 이름은 몰. 몰은 바이올린 선율에 꿈을 실어 보낸다. 내 음악이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닿아서 분노와 슬픔까지 녹여 버릴 수 있다면.
그러나 몰에겐 그런 상상이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그 엉뚱한 상상은 땅 위 세상에 마술 같은 변화를 일으킨다. 인종과 신분을 넘어서 사람들은 두더지 몰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나무 주위에 모여 앉아 평화로운 단꿈에 빠진다. 음악이, 두더지 몰의 열정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커다란 폭풍을 일으키고,
두더지 한 마리의 소박한 열정이 세상을 바꾼다.
자연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뭇잎을 살랑이는 실바람이 부는가 하면 큰 나무를 뿌리째 뽑고 집채를 단번에 날려 버리는 폭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나뭇잎 위를 또르르 구르는 이슬방울이 있는가 하면 산하를 굽이쳐 흐르는 큰 강도 있다.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렇게 크고 작은 일과 사건이 뒤섞여 있다. 그런데 큰 일이나 사건 뒤에는 커다란 원인이 있고, 작은 사건 뒤에는 작은 원인이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작은 원인이 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작은 차이가 증폭되어 큰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
커다란 폭풍을 일으키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에 관한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 두더지』 속에 담겨 있다.
낮에는 열심히 굴을 파고 밤엔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을 먹다가 잠이 드는 게 전부였던 두더지 몰의 맥없는 나날에 바이올린 연주는 단비와도 같았다. 일 년 전이나 일 년 후나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몰의 일상에 활기와 희망이 찾아온 것이다. 처음엔 끼익끼익대며 귀에 거슬리던 소리는 몇 년이 지나자 아름다운 음악으로 탈바꿈한다. 낮이나 밤이나 연습을 한 결과다. 음악은 몰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자신의 힘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알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들이 알게 모르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자기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배우게 될 것이다.
『세상을 바꾼 두더지』 의 책장을 타고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 도토리 하나가 뻗어내는 뿌리와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마리 두더지의 소박한 열정이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경이로운 마법과 만나게 된다. 부드러운 수채화 속에 몇 안 되는 단어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이 그림책은 데이비드 맥페일이 짓고 그렸다. 사소한 힘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땅 밑과 땅 위를 동시에 보여주는 화법을 통해 더 깊이 와 닿는다. 특히 한 개의 도토리가 커다란 나무가 되어 가는 동안 두더지 몰의 음악이 함께 성장해 가는 모습,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몰의 음악이 땅 밑과 땅 위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그려 보이는 맥페일의 상상력은 어린이들을 매혹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옮긴이 이은석
1972년 광주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아이』『코알라 코코』『코코는 화가 났어요』『뭘 찾고 있니, 꼬마 아가씨?』『꼬마 아가씨의 이상한 모험』『춤꾼과 강아지』 물감나라 시리즈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