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학인 김윤식 교수가 발로 눌러 쓴 학문과 문학의 길목 풍경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 근대문학 연구가이자 열정적인 다산성의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전 서울대 교수의 학술기행. 해외 한국문학 관련 학술대회의 참관기, 문학 작품의 근원을 탐색하는 심미적 여행기,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발표 논문들을 엮었다. 문학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왕성한 활동력, 섬세한 감수성과 통찰이 고스란히 담긴 이 글들은 기행과 사유와 학문과 문학이 결합된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
학술기행이란 무엇인가
머리말에서 저자는 대뜸 학술기행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대답 대신 난데없이 『파우스트』에 나오는 회색의 이론과 초록의 황금나무의 비유를 든다. 고백하건대 자신의 지난 날들은 아득한 회색의 이론과 초록의 환각의 틈새에서 쉴새없이 회의해온 것에 다름아니었다고. 그 긴 세월을 지나 어느 길목에서 아득한 회색과 선연한 초록을 동시에 목도한 경험이, 그 길목의 풍경을 보여주고자 하는 충동을 낳았다고. 요컨대 그의 학술기행이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우리의 근대문학에 대한 그의 사유와 성찰과 그의 실존적·미학적 인식이 한데 겹쳐진, 그 자체 아득한 회색이자 선연한 초록인 경지의 기록이다.
김윤식 교수의 기행은 이름난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감상이 아니다. 그의 기행은 예컨대 시카고라는 한 장소에서 『무정』의 두 주인공과 임화의 시, 프롤레타리아문학과 황금시대에의 꿈을 두루 거쳐가는, 정신의 여정이다. 베트남의 호치민 시에서 감각과 관념 사이에 끼어 실패했음을 토로하고, 기노사키에서 환각과 피로함의 정체를 따라가는 이 기행에는 장소와 풍광에 대한 감각 뿐 아니라 장소에서 비롯되는 관념과 환각, 문학에 대한 박학과 열정이 뒤엉켜 치열하다. 사실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뛰어난 연구와 동시대 문학에 대한 꼼꼼한 비평, 그리고 예술과 문학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으로 특징지워지는 그의 활동 전체가 어떤 기행에 비견될 수 있다. 기행이라는 형식은 그에게 이르러 비로소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도 모른다.
한국문학 연구에서 작품의 근원까지
1부 학술발표의 현장감은 시카고, 오사카, 연길, 런던, 밴쿠버 등지에서 열린 해외의 한국문학 관련 학술대회의 참관기.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지평을 꾸준히 넓혀온 저자의 활발한 연구활동의 일면을 보여주는 글들이다. 각 학술대회의 위상과 발표문들의 내용을 꼼꼼히 점검하고 참가자들의 면면을 살피는가 하면 학술대회가 열리는 도시에 대한 무의식의 일단까지 펼쳐 보이기까지 하는 이 글들은 마치 치열한 학술활동의 현장 속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대회 사이사이에 <델피 신전에의 행렬도>와 <이조석인>, 대영박물관의 사천왕상 등을 찾아 한달음에 달려가는 그의 모습에서, 소설가 박완서가 그랬던 것처럼, 그 미의식의 근원에 놓인 환상을 공유하는 순간 그에게 확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2부 작품의 근원을 찾아서에서는 이르쿠츠크, 호치민, 일본 등지를 여행하면서 이광수의 『유정』을 비롯 위다푸, 시가 나오야, 미시마 유키오 등 한·중·일 근대문학의 기원에 놓이는 작가들과 그 작품들 안팎을 살핀다. 이르쿠츠크에서 『유정』구성상의 세 층위의 여정을 분석하면서, 거기에 작가 이광수의 여정, 그리고 자신의 여정을 겹쳐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등 특유의 섬세한 통찰이 돋보인다. 작품의 무대와 작가, 그리고 작품의 분석과 독자로서의 감수성이 한데 얽히는 이 독특한 글쓰기는 저자 특유의 문체 덕분인 동시에, 문학과 대면하는 정신의 기록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독보적인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3부 발표문의 논리적 표정은 1부의 학술대회 등에서 발표되었던 저자의 발표문들을 묶었다. 일제 시대 작가들의 이중어 글쓰기를 둘러싼 문제, 임화와 나카노 시게하루 사이에 있었던 문학적 교류를 통해 본 민족 에고이즘의 문제, 카프문학과 『조선시집』의 김소운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관점으로 위치짓는 문제 등, 각 발표문들은 모두 그의 평생의 작업인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한 층을 이루는 성과들이다.
*2003년 4월 7일 발행
*ISBN 89-8281-657-7 / 03810
*180×240 / 360쪽 / 값 22,000원
*담당편집 : 이상술(927-6790, 내선 203)
영원한 학인 김윤식 교수가 발로 눌러 쓴 학문과 문학의 길목 풍경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 근대문학 연구가이자 열정적인 다산성의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전 서울대 교수의 학술기행. 문학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왕성한 활동력, 섬세한 감수성과 통찰이 고스란히 담긴 이 글들은 기행과 사유와 학문과 문학이 결합된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