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관찰과 재기 발랄한 상상력이 만든 우리 시대 마지막 골목대장
『동동 김동』은 문학동네어린이 새 창작동화 시리즈 초승달문고 셋째 권으로, 『어린이문학』에 「흰곰인형」으로 등단한 임정자의 세 번째 책이다. 부천 어린이 도서관 ‘동화기차’의 ‘책사랑 어머니 동화읽는모임’과 덕유사회복지관에서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면서 동화 창작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작가는 그 동안 저학년 어린이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창비), 『무지무지 힘이 세고 대단히 똑똑하고 아주아주 용감한 당글공주』(우리 교육)로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고민을 재기 넘치고 독특한 판타지로 풀어내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동동 김동』은 어린이들의 삶에 현미경을 들여다댄 듯 어린이들의 일상과 상상 세계를 세밀하게 그려 낸 현덕의 30년대 소년소설의 맥을 잇는 작품이다. 아이들을 갖가지 학원으로 내몰아 골목대장이 사라져 버린 이 시대에 작가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닌 도시 한 귀퉁이 작은 놀이터에서 어렵지만 꿋꿋하게 골목길과 놀이터의 주인으로 구김살 없이 성장해 가는 동이와 금희, 그리고 우석이의 삶을 세밀화로 그린 듯 아름답게 펼쳐내고 있다.
96년부터 쓰기 시작한 『동동 김동』은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당시 작가가 운영하던 어린이도서관 앞 놀이터에 자주 놀러오던 세 아이들을 관찰하고 관심을 가진 것이 글을 쓰게 된 동기였다. 세 아이들은 각기 『동동 김동』의 주인공 김동, 우석, 금희의 모델이 되었고, 그 중 특히 까만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는 귀엽고 당찬 아이가 김동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주인공 김동 속엔 작가가 주변에서 만난 모든 아이들의 보편적인 동심이 담겨 있다. 작가는 가난한 아이들이든 윤택한 환경의 아이들이든 그들 삶의 질의 차이보다는 그들이 각자의 삶에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쉽게 토라졌다가도 친구가 곤란에 처할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편들어주는 일곱 살 아이들, 그들의 삶에 밀착해 들어가 그들이 부딪치는 문제와 그것을 해결해 나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물론 엄마가 넥타이를 꿰매 받는 품삯으로 살아가는 김동은 경제적인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른들에게 그렇듯 경제적 어려움은 아이들에게 똑같은 문제로 작용한다. 김동 엄마의 삶처럼 김동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는 스스로 밥상을 차려야 하고(「꼬르르기」),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법도 알아야 하며(「혼자서도 잘 놀아요!」)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잘 참아 내야 한다. 가스불을 켜고 계란후라이를 만든다든가, 자전거를 사기 위해 물건을 내다 파는 등, 눈앞에 장벽이 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헤쳐나가며 한 뼘씩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김동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누구든 자기의 환경을 최선을 다해 이겨내며 삶을 개척해 나가는 당찬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아이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아이들이 가진 가장 본질적이고 공통적인 문제를 탁월하게 끌어내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성장을 자전거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간의 확대와도 긴밀하게 연결시킨 데서도 드러난다. 어린 시절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 너머의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듯, 김동 역시 높은 세모산과 고래가 있는 바다를 건너 우주까지 달려가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비오는 어느 날, 전봇대 밑에서 버려진 채 비를 맞고 있는 네발자전거를 발견한 뒤 김동의 꿈은 네발자전거를 타고 저 너머 세상까지 나아가 보는 것이다. 여지껏 보지 못한 드넓은 세계로 달려가고 싶은 김동에게 네발자전거는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다른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이면서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엄마는 김동에게 네발자전거를 사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김동은 스스로 그 꿈을 이루기로 결심한다. 어린아이처럼 엄마에게 매달려 조르기도 하지만 자기가 갖고 있는 소중한 물건들을 내다 팔아 더 소중한 꿈을 이루려고 한다.
『동동 김동』에서 작가는 어린이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붓질하면서도 이전 두 권의 작품집에서 보여 준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물질적으로 소외된 자리에 있는 아이들을 묘사하면서도, 감정의 과잉이나 억지로 눈물을 짜내려고 하는 감상주의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어렵지만 주어진 삶의 조건으로부터 구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동심천사주의’적인 방법으로 어설프게 ‘끌어올리지’ 않으면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동이가 그토록 소원하던 자전거를 얻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이 독자들은 통쾌한 쾌감과 삶의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임정자
1966년 하갈기에서 태어났다. 그 뒤로 꼬불꼬불 꼬부라진 길, 구비구비 굽어 돌아가는 길을 따라 걷다가 터 좋은 동화마을에서 훌륭한 선생님 만나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1998년 월간 『어린이문학』에 단편동화 「흰곰인형」을 발표한 이래 동화집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무지무지 힘이 세고 대단히 똑똑하고 아주아주 용감한 당글공주』를 냈다.
그린이 김진령
추계예술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그린 책으로는 『대장이 된 복실이』 『예솔아, 고건 몰랐지?』 『거짓말쟁이 최효실』 『우리 아빠 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