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인 글과 그림으로 어린이와 어른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에릭 바튀의 신작이 나왔다. 회색 도시에 푸른 생명의 나무를 심는 숲의 요정 이야기 『실베스트르』는 식목일을 맞아 어린이들에게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의미 있는 그림책이 될 것이다.
에릭 바튀는 누구?
프랑스의 그림책 작가 에릭 바튀는 알퐁스 도데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인 『빨간 고양이 마투』(문학동네어린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알퐁스 도데 어린이 문학상은 프랑스의 저명한 아카데미 공쿠르에서 선정하는 상으로 미셸 투르니에가 심사를 맡았다. 에릭 바튀는 알퐁스 도데의 작품을 그림책으로 살려낸 『스갱 아저씨의 염소』를 1996년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 전시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같은 도서전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는 등 실력 있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에릭 바튀의 그림책에는 절제된 언어와 풍부한 은유가 가득하다. 곰곰 되씹게 하는 간결한 글과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하는 서정적인 그림은 독자의 시선을 그림책 속으로 잡아끈다. 유화의 맛을 잘 살려낸 그의 그림들은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한컷 한컷이 그대로 작품이다.
"도시는 온통 회색이었어. 나무도 없고, 풀도 없었지."
실베스트르는 숲의 숲에서 서식하는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형용사다. 씨앗을 심어 금세 나무로 자라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숲의 요정 실베스트르의 일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 어느 날 도시에 온 실베스트르는 깜짝 놀란다. 온통 회색인 도시에는 피뢰침과 안테나만이 잎이 다 떨어진 나무마냥 솟아 있을 뿐이었다. 실베스트르는 곧 자기가 할 일을 깨닫고, 밤새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씨앗을 뿌린다. 다음 날 도시가 푸른 나무로 가득 차자, 사람들은 감탄하며 실베스트에게 약속한다. 이제 나무를 심고 가꾸겠노라고.
사람들은 약속을 지켰을까? 오랜 기다림에도, 도시 어느 곳에서도 작은 싹 하나 나지 않아 크게 실망하고 있던 실베스트르. 그러던 어느 날 광장에 키 큰 전나무가 우뚝 자라 있는 것을 본다. "사람들이 약속을 지켰잖아." 실베스트르는 기뻐하며 자신의 정원으로 돌아가는데……. 정원에 심었던 전나무는 그루터기만 남아 있고, 실베스트르는 그제서야 저 멀리 도시에 우뚝 솟은 전나무 꼭대기에서 금빛 별 하나를 발견한다.
생명의 마음이 시처럼 흐르는 책
『실베스트르』가 보여 주는 생명성은 독특하다. 회색 도시를 푸르게 가꾸어 준 숲의 요정은 사람들 스스로 도시에 푸른 생명을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사람들은 요정과의 약속을 금세 잊어버린다. 어느 날 광장에 우뚝 솟은 전나무도, 도시를 장식하기 위해 사람들이 실베스트르의 정원에서 베어다가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과했다. 실베스트르는 자신의 정원에 심었던 나무 한 그루까지 사람들에게 내어준 셈이다.
이번 작품의 우리말 번역은 소설가 함정임이 맡았다. 에릭 바튀의 그림책을 늘 곁에 두고 아홉 살 난 아들과 함께 읽는다는 그는 생명의 자연, 생명의 마음이 시처럼 흐르는 책이라고 이 작품을 소개한다. 그래서 어른이든 아이든 영혼이 맑아지고 그래서 행복해지는 책이라고. 이미지를 포착하는 독특한 글쓰기로 주목받은 소설가 함정임의 탁월한 번역은 에릭 바튀의 서정적이고 은유적인 문체를 어린이들이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맛깔스럽게 살려 놓았다.
옮긴이 함정임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뽑혀 소설가가 되었다.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당신의 물고기』, 『버스, 지나가다』 등과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를 냈다. 옮긴 책으로는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