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동시성을 갈파하며……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이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원초적 공포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시인은 그 사이에 심리적 거리를 위치시킴으로써 삶의 공간을 확보한다. 그 틈과 구멍은 도피처가 아니라, 환멸과 오역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진정한 세계와 교통할 수 있는 시인의 공간이며, 상처를 숙주로 하여 삶을 가열차게 몰아가는 내적 에너지와 저항의 정신을 키워나가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그 비밀스런 장소에서 시인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소름끼치는 삶의 이면을 개성 있는 시어로 묘사해낸다.
무시로 무너지는 멍든 하늘을/견뎌내느라 물은 퍼렇다 멍이/가실 날 없다 물은 멍을 번식시킨다/물고기의 몸에 있는 자잘한 반점도/자세히 들여다보면 멍자국이다/물을 내려다볼 때마다 멍해지는 자,/그의 몸에도 멍이 자라고 있다/멍이 멍을 알아볼 때 누구든 멍해진다/제 생애를 멍에처럼 짊어진 자들이/자주 물가에 홀로 나와 멍해진다/멍든 자는 결코 동행하는 법이 없다/제 몸속의 멍을 소멸시키려고/멍이 가득한 물속으로 뛰어드는 자도 있다/멍을 가진 자에게 멍이 가득한 물속은/몹시 평온한 관(棺)이다 죽음이 그를 소유할 때/그가 가진 멍은 비로소 소멸되는 것이다/물결은 그의 주검을 멀리,/아득히 멀리 타전해준다 --「멍」전문
시인은 고통이란 병은 모두가 앓고 있지만 또한 누구와도 공유될 수 없는 외롭고 고독한 것임을 역설하면서, 상처와 환상을 통해 성숙하고 깊은 자의식의 거울을 우리에게 비추고 있다. 그의 삶에는 멍과 피가 서려 있지만, 또한 그 멍과 피를 핥아주는 달과 나무가 공존한다. 이러한 정화와 위로를 통해, 고통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무장시키는 삶의 기제로 변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과 고통은 진정한 나를 찾는 삶의 여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동시성을 갈파해내는 시인의 상처는 현실의 생에 대한 거센 저항이면서, 진정한 생을 강렬하게 희구하는 에너지가 되어 슬픔과 고통, 죽음과 고독의 이면을 읽어낸다. 어둠의 이미지로 가득 찬 시편들에서 영혼의 정화를 발견하는 것 역시 뼈를 깎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이러한 혜안과 용기를 일깨웠던 시인의 깊은 성찰의 힘일 것이다.
자욱한 신열의 언어, 세상의 상처를 위무하는 열망의 기록
누수와 탐닉의 동시성이라니. 그 얼마나 아픈 소진이었을까. 그리고 그 얼마나 매혹적인 중독이었을까. 그의 시는 이같은 멍과 피의 힘으로 "세상의 외진 상처를 핥"고 있는 격렬한 파동이다. -- 유성호(문학평론가, 한국교원대 교수)
그의 예민한 감각은 일상에서 꽃이 피는 행위를 꽃이 제 속의 어둠을 토해내는 걸로 인식하고, 그것을 상상화해 이승과 저승을 기다란 원통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신화적 상징물로 확장시킨다. 그의 시는 신열이 남긴 흔적들 속으로 감각의 더듬이를 밀어넣고 들어가 세계를 해석하려는 열망의 기록이다. -- 박형준(시인)
자욱한 신열의 언어, 세상의 상처를 위무하는 열망의 기록
김충규의 시는 밑동에 박힌 거울로 흙 위로 빠져나온 자신의 뿌리를 바라보는 나무 같다. 자신의 비애마저 거울을 통해 기록하는 이 見者는 신열이 스치고 간 사물에게서 멍과 틈과 구멍을 발견한다. -- 박형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