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한 상상력으로 들여다본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 이야기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우리 아이들이 마음을 기댈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부모의 관심도 예전보다 더 커진 듯 보이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제 나이에 어울리는 꿈을 꿀 여유도, 놀이도 잃어 버렸다.
이혼이나 사별, 경제적 이유 등으로 생긴 부모의 부재 때문에 어리광이나 투정을 부릴 나이에 동생을 돌보며 끼니를 걱정하는 아이들, 다니기 싫은 학원을 자꾸만 보내는 엄마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아이들, 친엄마에 대한 말 못할 그리움과 혼자라는 두려움에 심한 가슴앓이를 하는 아이들……. 이처럼 현실의 그늘 아래에서 아이들은 쪼그리고 앉아 저마다의 답답한 마음을 소리 없이 달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들의 지친 어깨와 조그만 목소리를 외면할 것인가. 『알파벳 벌레가 스멀스멀』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아이들 곁에 쪼그리고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눈 듯, 아이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동화 속 주인공들 하나하나가 생기발랄하게 살아 움직이며 속내를 털어놓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우리 아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하여!
『알파벳 벌레가 스멀스멀』에 실린 다섯 편의 동화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뉜다. 먼저 세 편의 동화는 최근 들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가족의 해체’를 다루고 있다. 높은 이혼율과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다.
언니에게 ‘또다른 엄마’가 있다는 걸 의식하기보다는 그저 자기에게 비밀을 만드는 게 야속하기만 한 「얄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속 현지나, 새아빠가 데려 온 동생의 배고픔을 챙기고 삶에 지친 엄마의 눈물을 닦아 주는 「그래서 공주님은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윤정이, 그리고 낳아 준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키워 준 아빠 엄마마저 사고로 잃은 「절대 아무 일도 안 일어난 아파트」의 민경이는 모두 주변에서 한 번쯤 만나게 되는 평범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상처 받은 ‘가족’을 이해하고, 그 ‘가족’을 끌어안는 마음 씀씀이가 어른들의 짐작보다 훨씬 깊고 세심하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이 평범한 듯 특별한 아이들은 ‘가족의 해체’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아이들의 숨겨진 강인함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어린이의 눈에 비친 어른’의 모습을 그린 나머지 두 편의 동화는 자신도 실천하지 못한 것들을 무조건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신념을 갖고 어린 시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든 길을 걷는 다카사키 아저씨를 지켜보던 「간바레! 니혼진!」의 유우키는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진실은 덮어둔 채 거짓말을 일삼는 어른들의 이중성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다카사키 아저씨를 괴롭히는 다른 어른들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용기를 키워 가는 유우키의 눈에 자국이기주의에 눈이 먼 못나고 추한 어른들의 얼굴이 슬쩍 비친다.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데 왜 굳이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알파벳 벌레가 스멀스멀」의 민재 역시 어른들에게 던져주는 바가 크다. ‘원정 출산’이나 ‘기러기 아빠’와 같이 세태를 담은 각종 신조어가 말해 주듯 어른들은 자기만의 판단 기준으로 아이의 앞날을 지레 결정지으려 한다. 집에서까지 영어로 말하라는 바람에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민재가 엄마에게 느끼는 거리감은 어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들의 불행일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의 눈에 비친 오늘을 사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내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깨닫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아이들 역시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는 가운데 얻게 된 풍부한 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오늘과 내일을 설계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
이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한 권에 담긴 다섯 편의 동화는 함께 있어 더욱 설득력을 지니면서 읽고 느끼는 재미를 더한다. 부모와 아이들의 공감을 동시에 끌어 낼 수 있는 『알파벳 벌레가 스멀스멀』로 서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지은이 유영소
서울에서 태어나 성신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1998년 MBC창작동화대상을 통해 등단한 뒤로 어린이들을 위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유럽에 사는 내 친구』 『여자는 힘이 세다』 『할머니랑 달강달강』 등이 있다.
그린이 강전희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지은 책으로 『한이네 동네 이야기』와 『어느 곰인형 이야기』가 있고, 『베짱이 할아버지』『나무마을 동만이』『할아버지 아주 어렸을 적에』『기준이네 가족일기』등 많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다.